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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호의가 둘리가 되었다.

by 몽접

나는 평소 손해 보는 삶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컴플레인을 걸지 않고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일단 듣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부탁을 하면 내가 할 수 있으면 들어주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속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극 i인 나는 그냥 나 좋자고 '네'라고 말을 하는 거다. 이걸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은 종종 부탁을 한다. 그럼 내 일정을 보고서 긍정의 답을 하곤 한다. 하지만 어떨 때는 생각을 하고 물어보는 건가 싶은 부탁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을 보고서 한숨을 짓는다. 가까운 지인은 나에게 그러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몰려온다고 적당히 끊어 내라고 조언을 주었지만 모를 리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겠지 했다.


이틀 전이었다. 우리 조의 일만 해도 너무 많아서 허리가 휘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확인하는데 눈알 빠진다. 시간도 촉박해서 밀려오는 일들을 처리하는데 옆자리 동료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갑자기 나에게 어깨를 두드리며 "저기 몽접 연구원, 나 부탁 좀" 훅 하고 들어 온 직원은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동료다. 나는 "갑자기 무슨.." 동료는 "이번에 우리 바쁜 거 알지, 자기 정도면 금방일 것 같아서. 이거 정리 좀 부탁할게"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서 "아니 저희 팀 이번에 백업으로 힘든 거 아시잖아요" 웃으며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오는 이야기는 "아니 양은 페이퍼 200이라도 자기 정도라면 순간 순삭이잖아 부탁해" 그러고는 놓고 가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을 하는데 옆자리 동료가 "그러니까 내가 평소에 잘 끊으라고 했지?" 라며 안 되겠다고 한 소리 대신 해주겠다며 자리에 일어서는 옆 동료를 나는 잡으며 "아니요 제가 이야기할게요"라고 하고 진정을 한 다음 "저기 죄송한데 이번에는 안될 것 같아요. 제가 너무 바빠서.." 돌아온 대답은 "자기 변했다. 자기 매번 해주지 않았어?. 나는 자기만 믿는데" 그렇다. 내가 둘리가 되었다.

나는 더 감정을 눌러서 "제가 시간이 된다면 다음에는 도와 드릴게요"라고 말을 하자 돌아온 대답은 "나중에는 없지. 지금이 좋지"라고 해서 나는 이제 폭발하려는 마음을 누르고 "네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자리에 와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옆자리 동료는 눈치를 알아차리고 커피를 권했고 나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호구가 되었다는 생각에 화도 났고 여러 가지 감정이 겹치니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했다. 이제는 그냥 내 일만 하자!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먹기도 힘든 하루다. 물 한 모금도 어렵다. 종교를 떠나 자신의 그릇은 자신이 만드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 나는 나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내가 나잇값을 못한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손해 보는 삶이 더 좋은 삶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엄마의 말씀이 뭐였는지는 알겠는데 왠지 그냥 싫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느 삶이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나로 시작이다. 누굴 탓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나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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