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도전을 하면서 내 글이 보였다.

by 몽접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춘문예를 냈다. 대학 때 학교에서 공모하는 글을 내고 이후 글을 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확실하다. 내 글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낙심을 하고 공모전에는 공모를 하지만 신춘문예라는 곳에는 처음으로 이번에 응모를 했다. 알고 있다. 떨어진다는 걸, 그래도 공모를 한 이유는 나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고 싶었다. 글이라고 하면 작아지는 나 자신에게 절대 너는 지는 인생을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오기로 냈다. 오기로 낼 수 있는 판이 아님을 알고도 난 우체국에 들려서 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알 수 없는 차가움과 냉기를 느꼈다. 나도 알고 있는 것들이 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어 차피 너 떨어져'라고 말이다.


국문과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가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국어교육을 가라고 하셨지만 딸의 열정을 끝내는 인정 해주셔서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셨다. 그래서 나는 방학 때 가면 엄마는 누가 버린 책을 책상에 두시고 "딸 도움이 될까?"라고 물어보시고 나는 "그럼" 하고 책을 나긋하게 살펴보면 아시면서 모른 척하시는 엄마가 그냥 마음이 그랬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책이 많았다. 샤르트르라는 사람을 중학교 때 알았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유명하다는 걸 중학교 때 알았다. 읽은 건 초등학교 때인데 그때는 읽을 때 글 잘 쓰는 작가 정도만으로 알았지 문단계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삼성문고판으로 세로줄로 있는 문학책은 대단했다.

엄마는 넌지시 "몽접아 세로줄이라 읽기 힘들지?"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아니 그래도 재미있어"라고 하고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미소를 보이시며 "저기 두 번째 줄에 있는 책 저자가 샤르트르 부인이었어" 그렇다 시몬드 보부아르, 나는 "진짜?" 엄마는 "응" 하시며 그 책을 꺼내주시며 "읽어봐"라고 하셔서 초등학교 때 책을 읽으며 재미있게 접했다. 그 순간을 지금 되짚자면 글쎄, 내 인생에서 문학은 아마 나를 키운 8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감사드린다.


텔레비전이 없어서 만화를 못 본거 빼고는 불편함은 없었다. 신문을 많이 봐서 다독이 가능했고 내가 신문을 볼 때는 한문이 있어서 한문공부를 열심히 했다. 덕분에 아빠는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신문에 나온 이야기로 밥을 먹으며 찬반양론을 이끄셔서 참 재미있게 식사를 했다.


다시 신춘문예, 사실 신춘문예는 오래전부터 내고 싶었다.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는 내게 올해는 꼭 내라고 해서 그래 알았다고 흘려듣는 척했지만 내게도 그럴 용기가 있을까 싶어서 두고두고 연습을 하고 퇴고를 했던 글들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에게 절대로 울지 말고 꺾이지 말자고 다짐을 했지만 두근 거리는 마음보다는 눈물이 먼저 앞섰다.


소설가 친구는 등단을 하고도 책 요청이 없어서 몇 년은 백수로 살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 시작이라며 내게 용기를 주었지만 이미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부러워 나는 그냥 "네가 부럽다"라고 했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무엇부터가 잘못일까? 글을 가르쳐준다는 곳에 가서 배워야 했던 걸까? 아니면 내게는 없는 글에 대한 확정성에 나만 그냥 혼자 즐기는 걸까? 정말 수백 가지 이유를 생각하면서 작아지는 내 손에 글들을 옮기며 울면서 우편물을 접수했다.

사람이 살면서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기도 하지만 두 가지 세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산다면 난 꼭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고 싶다.


얼마 전 황석영 작가가 신작을 발표하셨다. 팟캐스트에 나오셔서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글을 쓸 때는 끓어오르는 열정이 20대 보다 더 독하다고 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끝까지 부여잡는 그 열정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있었고 그 후 사람들은 황석영 이제 더 이상 소설 못 쓴다고 헀지만 그 후에 쓴 작품도 100만 부가 팔리고 황석영 작가는 그때를 회상하며 "내가 코를 팍 눌렸지" 하시며 웃으셨다. 지금은 나이도 있고 안경을 써야 잘 보인다며 농담 어린 말씀을 하셨는데 언제가 자신은 살아있는 역사라고 하셨다.


언젠가 국문과 후배가 "선배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는 다면 누구일 것 같으세요?"라고 물었는데 그때 나는 "박경리, 조정래, 황석영"을 꼽았다.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편인데요"라고 해서 "장편은 뒷심을 끝까지 가져가야 하는 노력, 피나는 노력 뭐 단편도 그렇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어디 그냥 사람이니?"라고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나를 아는 지인들은 브런치에 글이 메인에 실리면 축하한다고 덕담을 많이 해주신다. 물론 좋다. 너무 좋은데 그래도 포기하지 못한 신춘문예는 내가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래서 낙담을 하면서도 나는 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친구는 떨어지면 출판사 공모전을 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것도 방법이기는 하나, 나에게는 그럴 재료도 소진이라 아직은 모르겠다.

나는 에세이와 소설 시 모두 좋은데 능력이라는 게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섞이니 아직은 자리를 못 잡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내 자리를 잡고 싶다.

에세이는 지극히 내 체험이니 쓸 때는 매우 경험에 의존해서 써서 재료를 찾기가 쉬우며 시를 쓸 때는 음악을 듣거나 메모를 해 둔 것을 보며 쓰는 경우가 많고 소설은 정말 희귀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


친구는 내게 신춘문예에서 떨어져도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수백 번은 했다.

나도 알겠다고 하고 그 뒷그림자를 두고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진정 작가란 무엇인가를 하염없이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러겠지, 네가 가능하겠니?라고.

그럼 나는 그런다. 나도 안다고 그래서 나는 소리소문 없이 낸 거라고.

그래서 그날은 아무 말없이 막걸리 한 병을 비우고 울었다.

신춘문예의 벽은 높았지만 나는 내 글에 대한 눈은 정확했다. 아직은 멀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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