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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03. 2022

전교 1등의 저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이 가슴에 남다.

우연히 신촌을 가게 되었다. 정말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신촌행. 그날은 지인과 밥 약속이 있어서 갔다.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서성이는데 붕어빵을 팔고 있는 자리에서 음악소리가 났다. 라디오 음악이었다. 겨울도 지났고 봄이 지나가는 시간에 붕어빵을 파는 게 신기해서 난 시간도 때울 겸 붕어빵을 사려고 갔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얼마나 드릴까요?"

난 "얼마씩인가요?"

"3개 천 원요"

난"네 천 원요"

그렇게 돈을 내고 돌아서려는데, "너 고등학교 3학년 6반"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내 뒤에는 붕어빵을 굽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렇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 옆 짝 전교 1등 친구였다.

난 반가워서 "어머 무슨 일이냐?"

반가운 마음에 "여기서 일했던 거야?"라고 난 웃었고 친구는 "응"

그렇다, 친구는 전교 일등에 유명한 철학과를 수시로 붙어서 학교에서 제일 먼저 대학을 입학하고 수능 성적과 상관없이 대학을 간 친구였다. 남들은 수능을 봐야 해서 힘들어했는데 이 친구는 그런 힘을 쏟을 필요가 없어서 늘 학교에서 음악을 듣거나 다른 잡생각을 많이 했다.


신기한 건 같은 기숙사였는데 늘 밤에는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는 늘 잤다. 깨어있는 시간이라고는 누구나 일어 나있을 수밖에 없는 수학 시간이었다. 난 문과였는데 이 친구도 문과였다. 그런데 이과 친구들보다 수학을 더 잘했다. 난 그게 신기해서 "너 이과 가지 왜 문과 지원했어?"라고 물으니 "서태지가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랬다, 이 친구는 서태지의 오랜 팬이었다.


그렇게 만난 친구와 난 수다를 떨며 "여기서 오래 일했니?" 친구는"한 2년 정도?"

난 "그랬구나, 난 신촌에는 잘 안 와서"

친구는 "내가 붕어빵을 판다고 말들이 많지"

난 "전혀 모르겠는데 그리고 나 여고 동창회 안 나가"

친구는"난 한 번 갔는데 내가 전교 1등인데 왜 붕어빵 파냐고 뭐라고 하더라"

난 "다 자기 사정이라는 게 있는 거지"


친구는"남편 때문이야, 남편이 다쳤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붕어빵이더라고. 그래서 붕어빵 파는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 그래서 본격적으로 해서 여기서 장사해. 자주 놀러 와"

난 "그래"

난"철학과는 재미있었니?"

친구는"글쎄.. 생각하기 나름이지, 나 사회학도 복수 전공했어"

난"그랬구나.."

어느덧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친구는 "너 그때 나 담배 피우고 술도 마셨는데 왜 모른 척했어?"

난 "각자의 삶이잖아. 어차피 내가 말린다고 그렇게 안 살 거도 아니었고"

친구는 "그때 좀 말려주지, 그랬음 나 붕어빵 안 팔고 있을지도 몰라"

난"왜?"


친구는" 내 팔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꼬였어. 전교 1등 때부터 꼬였다고, 전교 1등이라고 술 담배 다 눈감아준 그때부터 꼬였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사는 거야. 공평하지 않니?"

너무 시니컬한 친구에게 "그렇게 생각 마, 붕어빵 맛있어"


친구는"고맙다, 말이라도"

난 "아니야, 담에 오면 많이 살게 나 붕어빵 엄청 좋아해"

친구는 "그래"

그렇게 돌아서는데 잊히지 않는다,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친구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학교 옥상에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문제아가 아니라 전교 1등이 담배를 피운다는 이야기였다.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문제로 하지 않았다. 그냥 딱 한 번 담배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때 누군가 "담배는 기호식품이지"라는 말로 마무리가 된 거다. 친구가 철학과를 들어가고 다들 제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팔자 폈다고 부러워했다.


난 친구가 붕어빵을 판다고 팔자가 꼬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인생이 있다.

그리고 인생에 답은 없다. 다만 친구의 말이 계속 귀에 남았다.


"나 전교 1등일 때 인생이 꼬였어"

그랬던 것 같다. 1등이라고 친구는 정말 편하게 살았다. 학교가 그랬다. 그래서 친구는 그게 싫으면서도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맘에 술도 담배도 했나? 모르겠다. 친구의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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