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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ug 23. 2022

망고빙수보다 팥빙수가 더 좋은 나이

여름만 되면 나타나는 망고빙수, 물가가 오르면서 망고빙수도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두고 보자 했더니 결국은 10만 원을 넘었다. 내가 아는 지인은 벌써 두 번을 먹었다며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난 별로 부럽지 않았다. 망고나 애플망고나 사서 먹으면 그만이지 그리 비싼 돈을 주고 먹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하는 빙수는 팥빙수이다.


물론 망고빙수를 올해 안 먹었느냐 그건 아니다, 그냥 커피숍에서 파는 망고빙수를 먹었다. 두 번 정도 가격대는 1만 원대 중반이었다. 셔벗을 해서 먹기도 했고 빙수로도 먹었고, 망고는 열대과일인데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매력이 있긴 있나 보다.

난 어렸을 때 엄마가 직접 빙수를 만들어주셨다.


때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엄마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셨다.

"딸 엄마가 돈을 쓸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한 번 사면 몇 년을 쓸지 몰라. 그런데 일단 올해는 많이 쓸 거야. 딸 생각은 어때?" 난 앞뒤 없는 이런 대화가 어색해서 "엄마 자세히 이야기해야지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라고 이야기했더니 엄마는 "그러니까 넌 올해 이 기계를 사면 맛있는걸 많이 먹고 다음 해는 못 먹을 수 있어, 그러니 고민이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난 "금액은?" 엄마는 "중고라 절반 가격" 난 고민을 하고 "그럼 그 절반 가격만큼 먹는 거니까 사는 거지, 그리고 고치면 들어가는 비용이 비싼가 알아보고 살 것 같은데?"

엄마는 "역시 우리 딸이다" 하시며 어디론가 가셨다.


그렇다, 기다려도 엄마는 안 오시고 결국은 동네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몽접아 엄마다, 이거 봐라" 난 눈이 커졌다.

"엄마 이게 그 기계야?"

엄마는 "응"

난 동생을 불렀다.

"이것 봐, 엄마가 사셨어"

여동생은 "이게 뭐야?"

엄마는 "올해 우리 집은 시원하게 보내련다" 하시면서 룰루랄라 신이 나셨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아빠는 "아 출출하네, 뭐 먹을 거 없나" 하시며 엄마에게 물어보셨다.

엄마는 "자기, 내가 뭐 사 왔거든 그런데 당신이 좀 도와줘야 해"

아빠는 "그게 뭔데?"

난 "엄마가 신기한 거 사 오셨어"

아빠는 "그래?" 하시며 고개를 갸웃하셨다. 그리고는 나온 기계는 바로 얼음을 분쇄하는 기계였다.

정말 신기했다. 사각틀에 있는 얼음을 넣으면 얼음이 슬러시가 되어서 나오는데 그 기계에서 나오는 건 얼음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웠다. 엄마는 "몽접아 냉장고에서 얼음 좀" 난 냉큼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엄마는 언제 귀신같이 삶으신 건지 팥을 내오셨다. 그렇다. 우리가 학교를 간 시간에 팥을 삶으신 거다. 그 돌돌 거리는 기계에 얼음을 갈아서 그 위에 팥을 올려 주셨다. 정말 맛있었다. 맛보기로 받은 떡을 얻어 주셨는데 그 떡은 엄마가 프라이팬에 구워서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다 엄마의 노동과 정성이다.

그날 우리는 배가 아프도록 먹었다.

아빠는 너무 찬 것을 드시면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그 문제의 알레르기가 나와서 고생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사랑받는 그 기계는 밤이 되면 늘 돌아갔다.

눈이 뜨면 난 냉장고 얼음 칸에 물을 넣고 얼음을 얼리고 동생은 하교하는 길에 또 먹을 빙수를 생각하며

학교 앞 아이스크림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여유로움을 보였다.


엄마는 팥에 설탕을 조금 넣으시긴 했지만 팥 자체만으로도 맛이 좋아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 기계는 내가 고등학교를 가서 버리셨다. 더 이상 노후가 돼서 쓸 수 없었고 우리들 입맛도 프랜차이즈가 맛이 좋아서 엄마에게 섭섭하지 않게 "그냥 버려 엄마, 또 나중에 기회 되면 먹자" 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 몇 주 전 엄마 집에 갔다.

이런 얼음 기계 등장했다. 손자 손녀를 주겠다고 사셨단다.

호기심이 많을 나이에 있는 손자 손녀를 위해서 엄마는 또 노동을 시작하시는 거다.

우리 나이 때에 먹었던 그 팥을 삶으시고는 "그때는 맛이 좋았는데 요즘은 중국산도 많고.." 하시며 말씀을 아끼셨다.


사람들은 비싼 망고빙수를 많이 사 먹는다지만 난 팥빙수를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 떡도 좋아하고, 내 나이 즈음되면 그 예전 생각에 먹었던 추억의 팥빙수가 그립다. 돈에 돈을 얹은 빙수 말고 추억과 사랑이 있는 빙수 말이다. 잊을 수 없는 팥빙수. 내 여름의 팔 할이 팥빙수였다.


추신: 망고빙수는 저도 좋아합니다. 다만 팥빙수의 추억으로 글을 쓴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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