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Jan 19. 2023

호떡은 흘려서 먹어야 제 맛이지!

날이 쌀쌀하다 못해 너무 추워서 그날은 장갑을 끼고 손을 내놓기 힘들었다. 난 수족냉증자다. 이 겨울을 이겨내려면 핫팩 두 개를 장착하고 험난한 밥벌이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날이었다. 서울에 눈이 내리고 남들은 "눈이야" 하면서 하늘을 보며 낭만을 즐기는데 난 너무 추워서 '윽' 하며 빨리 집에 갈 생각에 맘이 바빴다.


난 참 겨울을 살기에 불편한 사람. 잘 넘어지기도 한다. 한 번은 얼음판에서 대차게 넘어져서 옷이 찢어진 적도 있다. 다들 한 번씩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아픈 것보다 창피함이 앞서서 난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려고 하는데 이런 얼음이 너무 두터워서 한 번 더 슬라이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이고 겨우 일어섰다.


그때였다. 야간 조명에 반짝이는 '호떡'이라는 글자가 나의 눈을 끌었다. 이미 장갑에 옷에 형편없고 넘어진 내 자존심은 무너지고 갑자기 배가 고픈 건 아니고 짜증이 밀려왔다. 당이 필요했다.


줄이 길게 선 것도 아니고 그래 가보자 해서 갔더니 이런 그날은 뭘 해도 안 되는 날이었다.

알고 보니 거기에 선 사람들이 다들 기본은 4개씩 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호떡집은 정말 호떡집에 불나듯이 팔고 계셨다. 난 눈치껏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너무 추운 칼바람은 나에게 속삭였다.

'그냥 집으로 가지' 하지만 난 고개를 저으며 '절대로 아니 절대로 ' 굳건히 서 있는 양발을 보며 버티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차례가 왔다.

"그래요 어떻게 드릴까?"

난 "저 그냥 하나 주세요"

그리고 난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기름이 너무 많이 둘려지는 것이다. 분명 앞사람들 할 때는 기름이 별로 없었는데 내 호떡에는 기름이 너무 많이 부어졌다. 그렇다. 앞사람들이 마지막 기름이었고 내 호떡이 시작을 알리는 기름이었다.

콸콸 쏟아지는 기름에 난 또 자동적으로 '아 먹으면 살찌겠다'라는 생각에 '먹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과 '어떻게 기다렸는데'라는 이 악마와 천사의 속삭임이 수없이 싸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여기 있어요" 하며 손에 쥐어진 호떡.


너무 뜨거워서 먹을 수 없었다. 난 조심조심 길을 가면서 먹는데 이런 흘렸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앗 뜨거워" 그렇다. 호떡에 있는 꿀들이 흘러나와 손에 흐르니 이것보다 난감함이 없었다. 이래서 엄마는 나에게 길에서 뭐 먹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도 그랬다.


잠시 어렸을 적을 회상하면 우리 때는 녹차호떡 무슨 호떡 이런 것 없이 그냥 호떡이었다. 문구점 앞에서 호떡을 팔았는데 하나에 얼마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그 호떡 먹겠다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그 추운 겨울에 놀다가 가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그 재미로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하루에 50원이 용돈이었으니 매일 먹은 건 아니었을 테고 아무튼 친구들과 그렇게 먹고 나면 집에 가서 엄마에게 자랑을 했는데 엄마는 주전부리는 거리에서 먹고 다니지 말고 그 자리에서 먹거나 포장을 해서 집에서 먹으라고 하셨다. 흘리고 다니고 먹는 게 아니라는 엄마의 대원칙이었다. 


난 알겠다 하고는 몰래몰래 먹고 다녔다. 그래서 하교하고 친구들과 몰래 먹을 때는 혹시 엄마가 보고 있나 해서 뒤를 볼 때가 있었지만 모르겠다, 혹시 보셨어도 말씀을 안 하시는 성격이라 아마도 따로 이야기를 하셨다면 내가 많이 먹어서 그랬을 거다.


어쨌든 그날은 뭘 해도 엉성한 날이었다. 날은 춥고 한 번 길에서 대차게 넘어지고 호떡은 종이컵에서 흐르고 일진이 꼬여도 너무 꼬인다는 생각에 우울한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원래 호떡은 흐르잖아. 잘 먹어야 안 흐르는 거 아니야' 웃기지만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니 그렇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야금야금 먹고 나니 속도 뜨뜻해지고 도착한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나에게 오랜만에 서울에서 밥을 먹자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친구는 나에게 "야 원래 호떡 이런 건 흘려야 제 맛이야" 하면서 깔깔 웃는데 난 "그렇지?" 하면서 응수하며 합리화의 끝판왕을 달리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인생에서 완벽함이란 없다. 그리고 만약 흘리지 않고 먹었다고 해도 또 난 어딘가에서 부족함을 찾았을 것이다.

호떡이 뭐라고 참.. 그날 먹은 호떡은 올해 첫 호떡이었다. 원래 저렴하게 먹고 간식인 음식이 요즘 몸값이 너무 올라서 사 먹기가 쉽지가 않다.

오죽했으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옆에다 쓰셨을까 싶어서 사람들은 "우리 직장인 보다 많이 버네"라는 이야기를 그날 들었다. 그렇다. 월급 25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호떡을 먹어도 달지 않았을 사람들과 달게 먹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그날의 일진에 대해서 생각했을 사람들 아무튼 그날 호떡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 호떡은 흘러야 제맛이다. 그래야 좀 인간적이지.

작가의 이전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곳이 직장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