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보의 코끼리는 흑인을 상징한다.

덤보에 나오는 인종 차별 묘사, 제일 약자인 코끼리

by 김조닉

덤보는 사회의 많은 문제를 비판한다. 장애, 아동 학대, 동물 학대 등등이다. 그 중 오늘 주제는 덤보에 나오는 인종 차별이다. 제목에 나왔듯 영화에서 코끼리는 흑인을 의미한다. 이는 흑인의 남성성을 의미하는게 아닌 흑인의 당시 사회적 위치를 코끼리로 보여준다. 위 내용을 설명하겠다.


덤보의 계급사회와 차별


3.jpg 비 오는 날 일하러 나온 흑인 노동자


영화의 시대상을 먼저 설명하겠다. 과거 백인은 흑인을 사람으로 인지하지 않았다. 흑인은 짐승이라 고통과 감정이 없다 믿었고 학회는 그걸 증명하려 노력했다.(반대로 말하면 당시 백인은 짐승은 고통과 감점이 없다고 믿었다.) 간신히 사람으로 인정받아도 흑인은 백인에 비하면 열등하다고 믿었다. 즉 1940년대 흑인은 덤보에 나오는 동물과 같은 위치다. 설명은 이 정도 하고 이번엔 영화의 흑인 노동자가 일할때 부르는 노래 가사를 가져왔다.


우린 온종일 쉬지 않고 일해.
우린 읽고 쓰기 같은건 배우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잘 때 우린 죽을 힘을 다해 일해.
우린 급료를 언제 받을지 몰라.
돈을 받더라도 다 써 버리지.
근육 쑤시고 허리가 아프고 달걀과 베이컨이 필요해.
주인님은 우릴 못살게 굴고 계속 감시하지.
잠자리와 음식을 위해 일을 멈추는 일은 없지.
- 노래 song of the roustabouts 가사 중 일부 -


어떤 기분이 드는가? 영화에서 비오는날 밤 비맞으며 일하는 일꾼은 죄다 흑인이다. 흑인 노동자는 비맞으며 천막치는 고된 일 할때만 등장한다. 명심하자. 덤보는 최근이 아닌 한창 흑인차별이 있던 시절에 만든 영화다. 영화는 당시 현실을 보여준다. 덤보가 개봉한 1941년 미국은 흑인 인권운동으로 뜨거웠다. 짐 크로우 법이라는 흑백분리의 인종 차별 법으로 흑인은 인간 취급을 못 받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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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디즈니는 인종차별하는 당시 사회를 비판했다. 지금처럼 겉으로만 보여주는게 아닌 진정한 정치적 올바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까마귀 캐릭터를 백인 성우가 흑인 영어 억양을 사용하며 연기했다는 이유로 인종차별로 지적받아 인종차별 문구를 삽입했다.)


4.jpg 비오는 날 잠 자면서 쉬는 호랑이들


추가로 영화를 보면 코끼리가 대부분 일을 한다. 비 올때 일하는건 흑인 노동자와 코끼리 뿐이다. 낙타가 잠시 철골 옳기는걸 돕지만 다른 동물은 편하게 비를 피하며 잠 잔다. 영화를 보면 다른 동물이 공연하는 모습도 없다. 코끼리만 공연한다. 어째서 코끼리만 일할까? 단순히 덩치 크고 힘이 쎄니까? 그럼 하마, 코뿔소도 일해야 한다.


1.jpg 망치질 하는 흑인 노동자
2 (1).jpg 망치질 하는 코끼리


덤보에서 코끼리는 약자를 의미한다. 정확히는 흑인과 같은 존재다. 영화에서 코끼리가 가장 낮은 계급을 상징한다. 흑인은 백인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 코끼리는 동물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 때문에 둘은 힘든 노동을 하기에 제격이며 유사하다. 유전적 우월성이 오히려 사회적 위치를 낮췄다. 이 외 동물간 차별 모습은 많다. 사자와 호랑이는 편하게 마차에서 잠을 자고 마차를 얼룩말이 끄는 등 동물끼리도 계급이 나뉘고 일 거리로 차별 하는걸 보인다. 그래서 동물 중에서도 계급이 가장 낮은 코끼리가 노동, 공연을 전부 도맡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덤보의 성공은 코끼리라는 약자 그룹 중에도 제일 약자인 장애아라는 존재의 성공이니 감회가 새롭다. 인간으로 치면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 장애아가 성공해 스타가 되며 백인에게 돈과 박수갈채를 받은 격이니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식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 받게 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


동시에 디즈니는 말한다. 중요한건 상대의 위치와 모습을 통해 보는 색안경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한다고. 색과 종으로 보는게 아닌 성품과 가능성으로 세상을 보면 우린 우리가 놓쳤던 걸 깨닫고 더 성숙해질테니까. 색안경을 진리라 착각하지만 색안경은 편견이다. 색안경은 개인의 가능성을 억압해 사회 전체 분위기를 억압하는 방해물이며 진리를 늦게 발견하게 만든다. 진리란 무엇으로도 감추거나, 숨기지 못한다. 아무리 억압해도 세상에 나온다. 괴롭힘 받지만 결국 하늘을 나는 재능을 발견해 행복해질 운명을 되찾은 덤보처럼 말이다. 그러니 상대를 태생적 이유로 억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 80년전 나온 아이를 위한 만화 영화에서도 말하는 당연하고 유치한 진리를 지금 우리가 못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오늘은 덤보에 나오는 인종차별과 계급의 묘사를 간단히 설명했다. 내용이 유익하고 새로운 시각을 넓히는데 도움 되었길 바란다. 위 내용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약 80년전 모습이다.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비판한 것이며 두번 다신 위와 같은 길을 걸어선 안된다는걸 강조하며 글 마친다. 다음에도 덤보 관련 글로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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