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말 공룡보다 지혜로운가?
오늘부터 디즈니 네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밤비를 소개하겠다. 밤비는 숲에 사는 사슴 밤비 관점에서 보는 숲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영화다. 하지만 평화는 인간이 나타나자 깨진다. 오늘은 해당 내용을 통해 자연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로 묘사했는지 말하겠다.
영화는 인간이 출현하지 않고 동물만 출연한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동물 (사냥개)은 무섭고 악마 같은 존재로 나오며 동물을 괴롭히고 총은 번개 소리를 내며 동물을 놀라게 해 목숨을 앗아간다. 인간은 서서히 집을 지으며 영역을 넓히고 동물의 영역을 좁혀온다. 인간이 지나간 자리는 동물의 생명도 숲의 싱그러움도 남지 않는다.
디즈니는 인간을 출현시키지 않았기에 동물이 가진 인간의 공포를 보여준다. 인간을 본 동물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누군가 쓰러질까 봐 긴장감을 놓치지 못한다. 밤비 엄마도 총에 맞고 사망한다. 나중에는 인간이 숲 깊숙이 들어오며 불을 질러 숲이 불타 없어진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지만 무엇보다 자연을 거부하고 파괴하는 오만한 존재다.
해당 모습은 당시 산업혁명, 전쟁, 급격한 과학 발전 등으로 인간은 풍요롭고 발전된 사회를 얻지만 지구의 주민으로서 자연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는 어리석은 모습을 꼬집는다. 이런 모습은 80년 흐른 지금까지도 비슷하다. 사실 의아함을 느낀다. 이 정도면 인류는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나? 의학이나 수학, 철학 등 몇 가지는 꾸준히 연구해야 하지만 과학 발전이 아직 불충분한가. 이런 의문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에 따른 추측은 아래와 같다.
사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이 돼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 파괴를 일삼는 게 아닐까. 동물 입장에서 인간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무책임하며, 알아도 고치려 하지 않고 새로운 걸 만들고 파괴하는 신이다. 그거만큼 위험한 신이 있을까? 어떤 미래를 원하기에 멈추지 않는 걸까? 모두 함께 멸망하는 미래를 원한다면 제대로 가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멈춰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는 태도는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졌음에도 어떤 생명체 보다 바보 같은 모습이다.
지구 역사를 24시간으로 계산하면 공룡은 약 1시간 버텼고 인류 역사는 3초 정도 흘렀다. 3초 만에 지구는 병들었고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게 바뀌었다. 반대로 공룡은 아무것도 안 했기에 1시간을 버텼다. 심지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간 게 아닌 운석과 기후 변화라는 운에 따른 원인 때문에 멸망했다. 여기서 궁금하다. 지적 생명체인 인류는 똑똑한 게 맞는가? 자멸의 길을 걷고 방법을 알아도 외면하는 지적 생명체와 아무것도 안 해서 평화롭게 살아간 공룡 중 과연 누가 더 현명한가?
물론 영화와 현실이 희망 없이 암울하진 않다. 마지막에 인간 때문에 숲이 타버렸지만 동물은 무사히 탈출했다. 숲의 주민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숲은 시간이 지나 다시 재생하며 평화로운 삶을 되찾는다. 현실도 같다. 인간은 파괴하지만 자연은 회복한다.
한 가지 사례를 말하면 체르노빌이 해당한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가 폭발한다. 인류 역사 최대 규모의 원자력 사고이며 주위 모든 게 방사능으로 뒤덮인다. 사람은 물론 주변 자연도 오염한다. 인간의 실수와 발전이 자연을 파괴했다.
하지만 37년이 지난 지금 체르노빌은 자연에게 돌아왔다.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찾아왔다. 공기와 땅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으며 사람 발길이 없어 오염되지 않는다. 곰, 사슴, 여우 등 보기 힘든 동물이 공존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회복하지 못한걸 자연은 이루었다. 조건은 단 하나, 인간의 발길이 끊겨야 한다.
추가 사례를 들자면 코로나 시기가 있다. 코로나가 극심할 때 인류에겐 재앙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일상을 잃었다. 인륜을 보면 코로나는 두 번 다신 없어야 할 재앙이다. 하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어떤가? 지구 입장에서 코로나는 질병일까?
코로나 때문에 각국은 봉쇄조치가 내려지며 인류의 이동이 감소했다. 이동 감소는 교통량 감소로 이어진다. 해양, 항공, 지상 교통량이 줄어들며 동물의 분포 지역이 넓어지고 개체가 증가했다. 물론 갑자기 늘어난 개체와 서식지 이동으로 먹거리 부족이라는 부작용도 생겼다. 물론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야생 동물끼리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다.
코로나로 공장가동과 차량운행이 줄어 대기 질도 개선했다. 중국, 인도, la, 시드니, 파리는 대기오염이 최소 30% 이상 감소했고 베니스 운하 수질은 맑아졌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인류의 문명이 멈춰야 자연은 깨끗해진다. 우린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지구 입장에서 질병은 코로나가 아닌 우리다.
인간은 짧은 시간 내에 파괴하지만 자연은 긴 시간 동안 치유한다. 인간이 파괴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빠르기에 문제다. 그러니 멈춰야 하지 않을까? 산업혁명, 과학혁명은 짧은 시간 내 인간은 풍족하게 했지만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의 삶을 앗아갔다. 동물 입장에선 지난 몇 세기 동안 꾸준히 코로나를 맞이해 일상과 삶을 잃은 거와 같다. 시간이 지나 인간의 삶도 서서히 빼앗고 있으며 한순간에 모든 생명을 멸망시키는 게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3세기 동안 이루어진 빠른 발전은 시대가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진화란 서서히 이루어야 하지만 현시대는 급진화로 이루어졌고 바뀌었다. 사회는 물론이고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자연이라 생각한 생태계의 많은 부분이 인간 손에 조작된 인공 정원이다. 예시를 들면 아프리카 코끼리는 점점 상아가 작아지거나 상아 없는 코끼리가 탄생 중이다. 상아가 크면 밀렵꾼에게 사냥당하고 절단된 유전자를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코끼리 상아가 점점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것처럼 동물은 인간에게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이 안 죽인 개체만 남고 가축은 인간의 입맛에 맞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더 해보겠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같은 인간을 위협하는 대형 포유류는 시대를 거듭하며 작아지고 있다. 덩치 큰 포유류는 인간의 눈을 피하고 야생에 충분한 먹이를 얻기 적합하지 않아 작은 종이 살아남기 더 유리해서다. 몇몇 채소는 인류의 식량이 되기 위한 작물이 되었고 양과 소, 돼지, 닭 등의 가축은 인간이 더 맛있고 많고 좋은 고기와 털을 얻기 위해 진화했다. 진화 과정은 간단하다. 그런 종만 키우고 살아남게 하면 저절로 그런 종만 남는다. 털이 적고 크기가 작은 양은 교배 기회도 없이 도축하고 털과 고기가 많은 양은 꾸준히 기르며 교배시켜 후손을 만든다. 자연이 인간 영역 밖이라는 개념은 지상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생태계는 인류가 조정한 결과이며 현재진행형이다.
인간은 뭐가 되고 싶기에 모두가 살아야 할, 앞으로 태어날 후손이 살아야 할 지구라는 유일한 집을 파괴하는가. 전문가는 이젠 지구 온난화가 아닌 지구가 끓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고 과거를 후회할지, 미래를 반길지는 현재에 달렸다. 회복은 못하고 파괴만 한다면 적어도 파괴를 멈추자. 과거로 돌아가고 발전을 멈추라는 게 아니다. 파괴를 멈추고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거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의논하고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자. 그게 밤비 같은 작품이, 인간이 인간에게 말하는 교훈이자 부탁이다. 영화에서 인간이 동물의 터전을 태우지만 이젠 인간이 인간의 터를 태우고 있다. 미래의 후손과 자연이 현재의 인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생각하자.
오늘은 밤비의 첫 이야기이자 밤비에 묘사하는 인간을 소개했다. 영화를 감상하는 시각이 더 넓어지는데 도움 되길 바란다. 우리는 어떤 모습과 미래를 원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길 바라며 글 마친다. 다음에도 밤비에 관한 이야기로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