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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리 Dec 20. 2023

코이카 해외 봉사 2년, 군대 갔다고 생각해

제1장 번역하게 될 줄 몰랐어


분노를 가라앉히고 열을 식히려 들른 카페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20대 안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그 후에 이미 이룬 일은 다시 엑스(X) 표시를 하고,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을 다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중간쯤에 시선이 머물자 ‘코이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래 이거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 중에 우선순위를 정하라면 코이카를 1순위에 둘 것 같았다. 


코이카(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국제협력단)는 대한민국의 국제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외교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ODA(공적개발원조) 기제 아래,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상협력사업을 전담한다. 다양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부분 1~2년 이상의 장기 복부 형태를 띄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한 몸을 제외하고 꼭 책임져야 하는 게 없을 때인 지금이야말로 바로 코이카에 도전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해서  한국어교원 3급 취득 과정을 수료한 상태였다. 예전에 읽었던 코이카 봉사 단원 공고를 떠올려보니 수료자도 자격이 된다고 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지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긴장된 마음을 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곧바로 코이카 해외봉사단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봉사단원 모집 공고를 찾았다. 공지 사항 게시물 날짜를 보니 1년에 몇 차례 정기적으로 모집하는 것 같았다. 마침 얼마 후에 정식 모집 기간이 있었고, 그때를 대비해서 올라온 공고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혹시 자격조건에 안 맞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시, 다행히 내 조건으로도 자격 기준이 충분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는 상태였다. 


달력을 펴고 모집 공고에 나온 일정을 파악했다. 서류 전형과 면접 등이 한 달 정도의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기 때문에, 여유를 두고 한 단계씩 준비해 나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중에 봉사단원이 된 후에 만난 동료들은 파견 전에 어느 나라를 갈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하던데, 정작 나는 국가 선정에 큰 고민이 없었다. 일단 가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국가를 최대 3지망까지 정할 수 있었는데, 어느 여행 잡지에서 본 몽골의 밤하늘이 너무 예뻤던 것이 떠올라서 1지망은 몽골로 썼다. 이후 2지망은 인도네시아를 썼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인도네시아 옆에 있는 말레이시아에 내 친한 친구가 살았기 때문이었다. 3지망 국가가 어디였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별 기대가 없었다. 합격시켜 준다면 그곳이 어디든 기꺼이 갈 용의가 있었다.


봉사활동이 끝난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도 세운 적이 없었다. 아무리 봉사활동이라고 해도 파견 기간이 2년씩이나 되는 장기 활동인 만큼, 대부분의 지원자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 마련이다. 특히 경력이 단절되어 귀국 후에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던 게 아니라, 2년 후의 미래보다는 내 눈앞에 있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미래도 미래지만 일단은 숨을 쉬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만 해도 봉사활동 자체에 대한 강한 열망보다는 대한민국 노동자로 사는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나 이러한 무심함에도 하늘이 도우셨는지 나는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2지망에 썼던 인도네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심코 떠난 인도네시아에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이토록 깊이 빠져들게 될 줄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인도네시아어를 번역하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될 줄은.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회사 뒷골목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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