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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Oct 15. 2015

라면을 끓이며 - 김훈

#1 사람을 움직이는 힘


김훈의 소설도 정말 좋기는 합니다만

그의 산문을 더 좋아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자전거 여행 1' 읽고는 부석사로

여행을  다녀왔을 정도입니다.

뭐랄까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그의 산문에는 있습니다.


#2 측량할 수 없는 무거움과 화려함


뭐니 뭐니 해도 김훈 하면 문장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어둡게까지 느껴지는

그 무거움에 화려함을 갖췄습니다.

정말 묘하고 읽어내려 가기가 쉽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 문장 한 줄 한 줄은

솔직히 글쓰기 싫게 만드는,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나 말 그대로 한 문장 한 문장을

갈고 닦을까요?


이 책을 읽던 중에 나도 모르게

스터디 카드를 사서 그의 문장을

하나씩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 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올 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허상은 헛됨으로써 오히려 완강할 테지만

실체는 스스로 자족하므로 완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빛은 공간에 가득 차지만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빈 것을 빈 것으로 채워가면서 명멸한다.


먼 것들은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자를

눈 멀게 한다.


인간과 인간이 연결됨으로써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해낼 수 있다.


사내의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선일 때가 많다.


그의 몸은 한평생 여름 햇볕과 소금에 절여져서

가까이 가면 햇볕 냄새가 난다. 살갗 밑에

햇볕이 늘 쌓여 있다.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는 문장도 있습니다.

네, 정말 모르겠습니다.


편차 없는 의사소통이야말로 도회지적 삶의

기본이라는 것을 그분들은 잘 알고 있었다.


#3 현실을 꾸짖다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글들이 좀 있습니다.

('세월호'라는 글이 대표적입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마음을 무겁게도

합니다만 경각심을 다시 한 번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망자들이 하필 물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히

재수 좋아서 안 죽고 살아있는 꼴이다.


이 사회의 가난이란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가난이란 차별이며 모멸이다.


#4 공부


홍명희의 임꺽정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부분은

저도 100% 동감합니다.

개인적으로 임꺽정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견해가

틀리지 않았음을 김훈 선생께서 확인시켜 주시네요.


한 마디로, 임꺽정 패거리는 살아남기 위한

'화적'들이었지 '의적'은 아니었습니다.

(홍명희가 7~10권까지의 제목을 화적 편으로

붙인 것은 정확한 네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어휴, 힘들게 읽은 책인데

감상문 쓰기는 더 힘드네요.

그래도 요즘 읽은 산문집들은 다 좋아서

읽는 보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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