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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Oct 30. 2020

아이유와 유희열

메시지냐 형식이냐

'대화의 희열'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초대 손님을 모셔다 놓고 고정 패널들과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시즌 2까지 방영되었고 셀럽들이 주로 출연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 시즌 1에 가수 아이유가 출연했었는데, 이걸 우연히 유튜브로 보게 됐습니다.


   아이유에 대해서, 특히 그녀의 대중 음악가로서의 철학, 태도 등을 알게 돼서 좋았는데요, 특히, 스토리 덕후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유 자신은 음악 작업을 할 때 '작사가로서의 일이 항상 1순위에 있다'라고 말할 때였습니다. 노래가 가수/작사가/작곡가가 결국 듣는 이들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 들어주었으면 하는 얘기를 담아서 전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작사, 즉 노랫말이 당연히 1순위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깊이 공감했습니다.



   



   대화 도중에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멜로디와 문장의 길이가 다른 경우 어떻게 하는가'였는데요, 부분에서 아이유와 유희열의 대답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질문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면, 가사를 '대화의/희열'이라고 썼는데, 멜로디가 '딴딴딴/딴딴'으로 되어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만약 멜로디가 '딴딴/딴딴딴'으로 되어 있으면 맞지 않는데, 이럴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지요.


   아이유는 주저함 없이, 멜로디를 수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희열은 자기와는 반대라고 하면서, 본인은 가사를 수정한다고 했고요. 이 대답을 들은 김중혁 작가는 '형식미의 유희열, 메시지의 아이유'라고 정리를 했습니다.












   대중음악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멜로디가 흥행의 80% 이상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아닌가요, 누가 부르느냐가 99%일까요?). 개인적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처음부터 가사에 집중하여 심취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 초반 멜로디가 좋으면 계속 듣고 그러다가 가사도 제대로 듣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전달력/호소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도 분명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이유는 어쩌면 모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멜로디 자체도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그걸 수정하려면 위험부담이 따를 텐데, 그것을 감수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유희열은 작곡 전공자로서의 멜로디에 임하는 자세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위험부담이 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유와 동일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감히 대답해보겠습니다. '음악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라는 철학에 동의한다고나 할까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에 이야기에 더 주안점을 두겠다는 선언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다음의 공자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지요.


공자가 말하였다. “바탕이 형식을 압도하면 거칠고, 형식이 바탕을 압도하면 겉만 번드르르하다. 형식과 바탕이 어울러야 군자다.”   - 「논어」 옹야雍也편 -




   얼마 전, 브런치 '하롱하롱' 작가님의 글통해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시를 소개받았습니다. (https://brunch.co.kr/@nyshiny/27)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만 부끄럽게도 박인환 시인의 동일 제목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시를 다시 읽어봤는데요, 음, 대단하더군요, 감히 평을 없을 만큼. 가사의 힘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세월이 가면
                                            - 박인환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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