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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Dec 26. 2020

기숙사비와 등록금과 매달 35달러의 용돈

『키다리 아저씨』, 진 웹스터, 더스토리

   『키다리 아저씨』는 미국 작가인 진 웹스터(1876년 7월 24일 ~ 1916년 6월 11일)가 1912년 발표한 편지 형식의 소설입니다. 고아원에서 지내던 소녀가 자신이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로, 읽다보면 마음에 따뜻함과 푸근함을 주는 작품입니다.

 

작가인 진 웹스터(1876년 7월 24일 ~ 1916년 6월 11일)와 1912년 초판본 표지입니다.




"재단 이사님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인데다가, 우리 고아원에 엄청나게 많은 후원금을 내는 분이다. 성함은 말해 줄 수 없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분명히 내걸었으니까."

네게 독창성이 있다고 굳게 믿으시는지 너를 교육시켜서 작가로 키울 계획을 하시더구나. ... 기숙사비와 등록금은 대학으로 바로 지불되고, 네게는 매달 35달러의 용돈이 4년간 전달된다. 너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써야 한다. 용돈 감사하다거나 하는 말 말고.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시지는 않을테니까.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매일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쓰면 돼. 스미스씨가 요구한 보답은 그것뿐이야. 그러니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고 꼬박꼬박 편지를 보내 드리거라.

   

   주인공인 '제루사 애벗'은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고아원 일을 도우며 살고 있었는데, 고아원을 나갈 나이가 거의 되었기에 천덕꾸러기에 구박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옵니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재단 이사 가운데도 손꼽히는 부자가 그녀를 후원하겠다고 한 것 입니다. 대학을 보내 (그녀가 쓴 글을 읽었고,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작가가 되는 것을 후원하겠다고 나선 것 이지요. 본인 신분과 얼굴은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만, 대학생 하나 키우는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학비며 기숙사비며 용돈까지, 사실 친부모들도 지원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후원자는 그걸 4년 동안 꾸준히 합니다. 심지어 장학금을 받았어도 그 장학금을 포기하게 하고 학비를 보내줄 정도로 지원합니다. 장학금을 포기하게 한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이 후원자는 장학금 받으려고 애쓰느라 대학 생활을 너무 건조하게 보내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요? 작가가 되기를 원한거지, 고학생 또는 궁학생이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닐테니까요. 멋진 후원자인 것 같습니다.




   현 시대에, 4년 동안 대학 학비며 기숙사비에 용돈까지 지원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보수적으로 잡아도 1억 5천만원 정도는 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키다리 아저씨는 이걸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착하고 선해서?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선한 의도를 구현 가능하게 만든 근원적인 이유는 그가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단순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내가 선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고 여유가 있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다'. 그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돈이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첫째, 시간을 내는 것, 둘째, 돈을 쓰는 것, 셋째, 이 두가지를 같이 하는 것.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세번째 방법입니다. 돈과 시간을 쓰는 곳에 마음이 가는 법이니까요. 가장 바람직하면서 힘든게 세번째 방법입니다만, 이게 힘들다면 처음 2가지 중 하나라도 하면 됩니다. 시간을 내거나 돈을 쓰거나. 사실 이 두가지 방법 중 하나만 사용해도 마음을 표현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키다리 아저씨는 좋은 일에 세번째 방법, 즉 돈과 시간을 전부 썼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받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게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서 지원했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추가로 지원을 했고, 수시로 보내는 주인공의 편지를 읽고 적절하게 반응을 보였으니 말입니다. 이건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돈과 시간, 전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생각해보면 돈을 쓰는게 가장 쉽습니다. 돈보다는 시간이 더 문제인 경우가 의외로 많거든요)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대학에서 진짜 어려운 건 공부가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저는 반도 못 알아들어요. 아무래도 (저를 뺀) 제 또래 아이들이 과거에 다들 경험했던 일과 관련된 우스갯소리들 같은데, 전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고 그녀들의 언어를 몰라요. 그럴 땐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듭니다.


   이제 우리 주인공에게 시선을 돌려 봅니다. 위에 소개한 구절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입니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형태가 달랐기에, 달라도 너무 달랐기에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평범한 제 또래들과 일상을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공부와는 다른 애기이거든요. 아마 이 부분에 주인공도 가장 많이 좌절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이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은, 열심히 해서 이런 공백을 열심히 메꿔 나갑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부자가, 한 사람 인생을 이렇게 바꿔 놓은 겁니다. 공백을 메꿔나갈 기회와 자원을 지워해준 겁니다. 물론 그걸 이겨나가고 살아내는 것은 본인 몫입니다만, '기회와 자원'은 얻는게 쉽지 않거든요. 이 결과 우리의 주인공은 마인드를 이렇게까지 바꿉니다.


앞으로는 모두에게 착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제는 매우 행복하니까요.


   이런 변화가 100% 돈의 힘은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돈이 결정적인 역할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선한 의도를 가진 부자/자본가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많은 반론이 가능합니다. 개같이 번 돈이 선한 의도로 쓰이면 그게 정당한 거냐 등등. 하지만, 저는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에만 집중해서 이 매거진을 쓰고 있습니다. 자본가 및 부자의 윤리에 대한 글쓰기 계획은 당장은 없습니다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진행해볼까 합니다) 예전에 본, '광수생각' 만화 한 편이 떠오르네요.(저작권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돈 가지고 생색내는 사람들을 비난하기에는, 그 돈이 절실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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