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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하루, 산에서 시작하다.

혹시 아티스트 데이트?

by 소행성RDY

이른 아침 어둠이 겨우 걷히기 시작하는 시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을 나섰고 산의 기운에 나를 맡기고 있는 중이다.


- 여유로운 휴일 아침. 느긋하게 잠든 가족들이 행여 깰세라 연한 커피를 탄다. 어제까지만 해도 냉커피였는데 손이 나도 모르게 따뜻한 커피를 준비한다. 간사한 게 인간이라더니 본능이다.-


오래간만에 혼자 산길을 걷는 자유로움을 충분히 즐긴다.

느릿한 걸음, 가고 싶은 길을 맘대로 선택하고 내 멋대로 변경하고, 어디에나 멈출 수 있고 어디서 돌아가도 괜찮은, 모든 것이 다 그럴싸하다.


이 산에 단풍나무가 이렇게 많았었나 새삼 놀란다. 단풍구경은 멀리 갈 필요 없겠다 싶다. 눈에 익숙한 나무의 넓은 잎을 조심스레 쓰다듬다 멈칫한다. 뻣뻣해 보이기만 했던 잎의 앞쪽에 솜털 같은 잔털의 감촉이 너무 부드럽다. 역시 눈으로만 보아선 알 수 없다. 미리 속단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다시 기억해 내는 순간이다.

두 팔을 벌려도 닿지 않는 소나무를 안고 눈을 감는다. 소나무를 안고 있으면 고요해진다. 잠시 숨에 집중하는 시간.

산을 바라보고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따뜻한 커피가 제값을 한다.

흐린 날씨에 기온이 영 올라가질 않는다. 산바람은 더 차고 날카롭다. 아직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손끝은 진즉 시리다. 커피의 은은한 향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지고 추위가 살짝 가신다.


비가 오려는 건가?

이제 집에 가야 하나 보다.


짧지만 온전히 나와 놀다 간다.

문득,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의

'아티스트데이트'가 생각나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온전히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혼자 잘 노는 것으로, 나에게 기쁜 시간을 선물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린 모두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정말 집으로!!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으려나?

가서 아침밥을 맛나게 먹고

남은 휴일은 가족과 함께다.


새벽을 잘 쓰고 나면 하루를 길게 잘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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