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쓸어 담을 수 없고 누군가의 상처로 남는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인다.

by 쉐리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무심결에 당신께서 하신 말씀에 분명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을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말이 가진 무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지금 당신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돌을 던져 얼마나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을 죽였는지, 한 번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말’이란 단순히 생각하면, 의사소통의 수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본다면,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타인의 마음을 전달받는 매개체입니다. 이런 ‘말’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이 상처로 우울증이나 무력감에 빠지는지 알고 계십니까?


언제부터인가 물리적 폭력만이 아닌 말로 하는 ‘언어폭력’의 실태가 낱낱이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언어폭력’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어른의 대화법], [말 그릇] 등 ‘언어’와 ‘말’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얼마나 ‘언어폭력’에 무지했고 방자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당신께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언어폭력’의 실태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언어폭력이 많은 곳은 당신께서 다닐 수밖에 없는 직장에서 일어납니다. 한국 노동연구원은 2021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근로자의 고용변동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근로자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입니다.


설문 결과 과거 직장에서 괴롭힘 피해를 입었다는 근로자는 62%에 달했습니다. 이 중 18%는 경력단절이 발생했고, 52%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고 합니다. 10명 중 7명이 괴롭힘 피해로 인해 직장을 포기하거나 옮긴 것입니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근로자 비율은 38%였는데, 이 중 경력단절 의사가 있는 근로자는 29%, 이직이나 퇴사를 하고 싶다는 응답자는 37%였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가 발생한 이후 사업장의 대처를 묻자 10곳 중 4곳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장 차원에서 주로 취한 조치는 피해자에 대한 '행위자의 사과'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하루 중 3분의 1을 할애하는 직장에서 당신이 ‘언어폭력’에 노출된다면, 당신께서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당신께서는 돈을 벌기 위해 묵묵히 일하시는 걸 선택하실 겁니까?


직장 내 괴롭힘에서 가장 많은 유형은 바로 언어폭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말 한마디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실제 유명 대기업, 공기업에서도 언어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소기업에서부터 공무원, 보육교사, 간호사, 경비원 등 수많은 직군의 사람들이 언어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택했습니다. 2021년 직장 내 괴롭힘 희생자가 최소 18명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최소’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언어폭력으로 인해 자살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어폭력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건강에 이상 신호가 생겼는지 역시 모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당신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부간의 언어폭력 역시 큰 문제입니다. 201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한규만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가정에서 겪는 부부간 폭력이 우울 증상의 발현 가능성을 높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기혼남녀 9,217명 중, 전년도에 우울 증상이 없다가 조사 시점에 우울증상이 나타난 1,003명을 분류하여 조사한 결과, 언어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언어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우울증상 발생 위험이 1.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당신께서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당신의 말을 희망의 용도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당연히 누구나 화가 나거나 욱했을 때,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분출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자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당신께서 마음의 모든 감정을 비우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당신의 그릇된 이기심이나 자격지심으로 당신이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사람을 잃고 있는 중이 아닌지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당신께 생과 사의 경계에 서서 간절히 손을 내미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꽉 잡아주길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입니다.






나는 실제로는 호칭을 부르지 않는 호적상 형제와 근 5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무시하며 살아간 적이 있다. 4년간의 자취생활과 일 년 여의 어학연수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절연은 더욱 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와서도 절연은 계속되었다. 아빠는 내게 엄마와 아빠가 없으면 세상에 단둘이 남게 되는, 피를 나눈 형제인데, 어찌 연을 끊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나는 증오를 넘어 혐오의 시선으로 나의 형제를 바라보았고 결코 단 한순간도 용서한 적이 없다. 내 꿈에 나의 형제라도 나오는 날이면, 잠에서 일어나서 왜 그를 죽이지 못했는지 괴로워해야만 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바로 ‘언어폭력’에서 시작되었다. 이 일을 상세하게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와 나의 형제, 단 둘뿐이다. 엄마는 알기를 거부했고 아빠에게 알려질까 봐 두려워했다. 마음이 약했던 나는 그런 엄마를 보고 차마 아빠에게 말하지 못했다.


사건의 시작은 2013년 9월이었다. 내가 수능을 딱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나는 나름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에서 나의 취미는 뒷조사하기였다. 그래서 친구의 블로그를 알아내고 블로그 별명을 알아내서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맨날 핸드폰만 보고 있던 형제에게 어느 날 촉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를 켰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한 인터넷 사이트의 갤러리에 나의 형제가 올린 글들은 가관을 넘어 장관이었다. 그의 추악한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관. 나의 형제는 인터넷 속에서 저속했고 비열했고 더러웠다. 살아 숨 쉬는 쓰레기가 바로 내 형제인 것을 깨달았다. 나의 형제가 쓴 글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글이다. 실제로 싸울 때면,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던 형제였다. 하지만, 싸움이 지나고 나면, 그저 평범한 형제 사이에 불과했다.


인터넷 사이트 속 형제는 악마가 분명했다. 형제는 말과 문자를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 대상은 나와 가족들이었다. 아래는 내 형제가 인터넷에 남긴 말들이다.


1. [내 여동생 중딩때부터 잘 때도 브래지어 차는데, 몇 살까지 가슴 모양 유지 가능?]

2. [여자들 잘 때도 브래지어 차고 있는 거 무슨 심리? 중3 때 가장 깊이 잠든다는 수면 후 2시간 반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슴 만져 보려고 여동생X방 갔다가 가슴 위에 손 올렸는데 브래지어 차고 있길래 X빡친 기억 있음.]

3. [내 여동생 고3인데, 컨디션 조절해야 한다고 11시에 처잠. 개인적으로 이X 제발 경기권 밖 대학 들어가서 자취하길 희망.]

[댓글 : 동생 좀 제 자취방으로 보내주셈. (사지가 묶인 채 성관계 당하는 야한 동영상 사진) 이렇게 교육 좀 시켜줘야겠어.]

4. [에바 그린 나온 몽상가들 처음 봤을 때 중3이었는데 진심 문화 컬처. 이때부터 여동생도 여자로 보이기 시작.]

5. [내 여동생X 자기소개서 써야 한다고 아이패드 사달라고 하는데 패 죽이고 싶음.]

6. [제 여동생X 취집 시켜줄 분 구함. 이 X 한 달에 카드값 70만 원 정도 씀.]

7. [내 여동생X 남자 단물만 빼먹고 XX 해주지는 않을 스타일. 애미애비한테도 돈 필요할 때만 설거지 정도 하고 생색내고 돈 받고 나서는 방 청소도 안 함.]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항상 속옷을 다 입고 방문은 열어두고 잠을 잤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불면증이 없었다. 1번 글을 쓰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2번 글에서 말했듯 직접 행동에 옮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 집은 성적으로 전혀 개방적이지 못했고 남자 형제와 속옷 얘기를 나누는 건 꿈도 못 꿨다. 잠잘 때만 속옷을 벗을 수도 있는데, 나의 형제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3번 글도 사실이다. 나는 여름방학 때부터 컨디션 조절을 핑계로 일찍 잔다고 하고 문을 잠그고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공부를 했다. 결과주의적인 엄마, 아빠의 그늘을 피해서 나는 공부를 밤새 하다가 4시가 넘으면 겨우 잠들었다.


5번 글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때 나는 부모님한테 맡겨놓은 돈이 70만 원가량 있었다. 결국, 부모님 돈으로 산 게 아니라 내 돈으로 아이패드를 산 거다.


6번 글도 사실이다. 나의 학원비 때문에 나온 돈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형제는 고3 때 나보다 더 많은 돈을 써서, 나보다 못한 대학에 가야만 했다. 내가 대입을 이유로 부모님한테 얼마나 지원을 받든지는 나의 형제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한순간에 사이버 언어폭력 피해자와 친족 간 성추행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신경정신과에 갈 수 없으니 내과에 가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어야만 살 수 있었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쿵거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건 공황 장애의 시작이었다.


물론 엄마한테 이 일을 말했지만, 엄마는 외면했다. 오히려 피해자인 나에게 왜 남의 뒤를 캐냐고 혼났다. 그리고 엄마가 나의 형제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나의 형제는 나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고 관음증 환자냐고 비난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내 핸드폰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내가 자신의 뒤를 캔 건, 관음증 환자였고 자신이 내 핸드폰을 본 건 뭐였을까?


나를 향한 언어폭력 외에도 가족을 향한 언어폭력, 여성을 향한 언어폭력의 글도 있었다.


1. [XX 집안에서 담배 피웠는데 애비 집 오는 중이라고 함. 애비 조금이라도 늦게 오는 방법 좀.]

2. [진지하게 엄마랑 성관계하는 꿈은 살면서 한 번쯤은 꾸지 않냐? 뭔가 X같으면서도 나름대로 X리던데.]

3.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식장 갔는데, 옆에 딸린 작은 방에 들어갔더니 형수님 옷 갈아입고 있었음. 생애 처음으로 여자 브래지어랑 팬티 본 거. 바로 화장실 가서 X침.]

4. [애비 차 끌고 나갔다가 과속 카메라에 찍힘. 애비가 다시는 차 안 줄지도.]


1. [지하철에 사람 많으면 개꿀인데. 밀린 척 앞에 있는 여자 엉덩이에 X 문지르는 거 가능.]

2. [여자(비하하는 음식 이름)X들 대체 복무시킬 거 찾음. 군 위안부 만드는 거.]


이 글들은 앞서 말했듯 2019년, 내가 19살이고 나의 형제가 21살일 때 쓰인 글이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엄마 때문에 강제로 화해해야만 했다. 하지만, 난 결코 한순간도 용서한 적이 없다. 그 사이 나의 형제가 군대에 다녀온 후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는 나의 형제가 군대에 다녀온 후 많이 변했다고 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 형제의 폭력 대상이 나에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으로 바뀌었다. 여행 중 묵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자는 여성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가 하면, 같이 카풀을 하게 된 특정 국가 여성들의 인종 비하와 여성 비하 글을 계속해서 써내려갔다.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래서 나는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내 형제의 만행을 알게 된 2013년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여러 곳에서 무료법률상담을 받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가족 일이니 가족끼리 잘 해결하라는 답변이었다. 이 정도로는 법으로 처벌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형제가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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