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우울증 초기 신호들.
[학창 시절]
나 : 엄마, 나 요즘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어. 집중이 잘 안 돼.
엄마 : 그럼 공부하기가 쉬우면, 개나 소나 다 서울대 가게?
나 : 엄마, 나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무릎이 너무 아파.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야.
엄마 : 나도 요즘 허리가 아파서 미칠 거 같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 : 엄마, 나 학교 다니기 싫어. 자퇴하고 싶어.
엄마 : 그럼 뭐 해 먹고살게?
나 : 올해 바로 고졸 검정고시 보고 내년에 바로 수능 볼래.
엄마 :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그냥 학교나 조용히 다녀.
[성인 시절]
나 : 엄마, 대학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
엄마 : 네 오빠 봐라. 너는 네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 가서 공부하고 있잖아.
나 : 엄마, 나 휴학하고 싶어.
엄마 : 네가 휴학해서 뭐하게? 방에만 틀어박혀서 시간 축내고 있겠지.
나 : 엄마, 난 오빠가 너무 싫어. 걘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엄마 : 그래도 네 오빠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아? 태어날 때부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죽을 고비 넘기면서 태어났는데…
이 대화를 읽어보신 당신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 대화들에서 내가 원했던 대답은 ‘괜찮아?’, ‘많이 힘드니?’,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세 가지뿐입니다. 그럼 당신의 상황 속에서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떤 말들을 내뱉고 있으신가요? 정말 당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힘들다, 혹은 삶에 재미가 없다, 라는 말을 했을 때, 당신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지금까지 당신이 나의 엄마처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대했다면, 당신은 잘못된 대화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힘들다고 얘기했을 때, 상대방은 절대 당신에게 조언을 듣고 싶다고 얘기한 게 아닙니다. 조언이 필요하다면, 당신께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드니까, 조언 좀 해주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당신에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 듣고 싶어서 힘들다는 말을 꺼냈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조언과 충고는 이미 당신에게 힘들다는 말을 꺼낸 사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애정 섞인 말 한마디가 그리워서 당신께 힘들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조언이나 비난이 아니어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자신이 가야 할 길 중간에 잠시 쉬어서 위로를 얻고 싶은 마음일 뿐, 당신에게 무언가 큰마음과 성의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혹은, 당신께서는 '알아서 견뎌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시진 않으셨나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하신 안일한 생각으로, 무관심한 태도로, 혹은 어설픈 조언으로 그 사람에게 다시금 상처를 주지 않았나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당신이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여기, 아주 간단한 질문 10개가 있습니다. 흔히 인터넷에 ‘우울증 테스트’라는 단어만 쳐봐도 나오는 질문들입니다. 당신께서 이 간단한 질문들을 기억했다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다는 시그널을 보낼 때, 가볍게 물어봐 주세요.
1. 나는 요즘 자주 슬프고 우울하다.
2. 나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다.
3. 열등감을 자주 느끼며, 내 삶은 실패했다고 비교하게 된다.
4.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일이 늘었다.
5. 어떤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힘들다.
6. 감정 조절이 쉽게 되지 않는다.
7. 많은 분야에서 관심을 잃었다.
8. 식욕이 없거나 너무 많이 먹는다.
9.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다.
10. 자신 있는 분야, 공부, 취미 등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10가지의 질문 중에서 5개 이상 맞다고 대답한다면, 우울증 초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 초기는 빠르게 병원을 방문하고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면, 중증 우울증 환자보다 더 좋은 경과를 이른 시일 내에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치료 예후 역시 중증 우울증 환자보다 80~90%로 현저히 높습니다.
중요한 점은 우울 장애 발생 후 첫 12주 동안 자살 위험률이 50~70배로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울증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해야 자살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10~30대는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일 정도로 발생률이 높습니다. 이 중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하는 말의 무게가 얼마일지 가늠이 되나요? 당신의 말 한마디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생과 사의 길에 놓이게 할 수 있습니다.
필자인 나는 아동 우울증, 혹 가면 우울증을 겪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타인, 즉 부모님에 대한 배려심이었다. 내가 죽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부모님의 억장이 얼마나 무너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나이였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을 방치한 채 살아갔다. 청소년 시절 자해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져도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나는 내 약한 모습을 남에게 들키는 순간, 그것이 나의 약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순간에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친구들과 가족은 모두 내가 밝아서 좋다는 말을 해왔다.
하지만, 나의 우울증이 방치되고 있는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14층에 살던 나는 베란다 문이 열린 것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음속에서는 뛰어내려야 한다고 늘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간을 잡고 바닥을 내려봤을 때, 그 아찔한 높이에 무서움보단 희열이 찾아왔다. 정신을 차린 나는 난간에서 내려와서 울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도 같았다.
횡단보도에서 ‘쌩’하고 지나가는 차를 보면 ‘저 차에 내가 치였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면 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적어도 자살이라는 죽음보다는 사고사라는 죽음이 가족을 덜 아프게 할 것 같아서 매사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살아서 숨 쉬고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로지 침대에만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언가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내 우울증을 방치했던 어린 내가 성인이 되어 벌을 받는 중이다. 항상 자살을 생각한다. 노트북 충전기 선만 보여도 이걸 어디에 어떻게 매야 할지 생각하고 고민한다.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샤워기 부스가 얼마나 튼튼한지 확인한다. 그리고 매일 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 누워서 또다시 나의 죽음을 계획한다.
우울증을 방치한 결과, 나는 죽지 못해 사는 괴물이 되었다. 그렇다고 자살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때도 약물을 먹고 자살시도를 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약물 중독 상태로 다시 약물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리고 식칼로 나의 손목을 찌르기도 했다. 하지만, 식칼은 생각보다 무뎠고 나는 다시 또 살아남았다.
어린 시절, 분명 부모님께 상처 주기 싫어서 우울증 같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커서 엄마, 아빠한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다. 매사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식으로 말이다. 엄마는 거실에 있던 약통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리고 주방에 늘 자연스럽게 꽂혀있던 칼들도 숨겨버렸다. 내가 죽지 않길 바라서 한 행동이었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고 나도 동의했지만, 생각이 바뀌어 조용히 집에서 쉬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엄마가 나에게 이제 와서 물었다. ‘뭐가 그렇게 널 힘들게 하는 거니?’하고 말이다. 난 과거의 엄마와 아빠, 오빠가 날 힘들게 한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더는 남들을 탓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병원비를 나에게 청구하며 내가 친 사고에 책임을 지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터져버렸다. 그래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아픈 건데, 다 엄마, 아빠, 오빠 때문인 건데 그 책임을 왜 내가 져야만 하나고 말이다.
엄마는 내가 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라고 했다. 사실, 나도 우리 집에서 그 정도 병원비가 생계에 눈곱만큼도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 문제였다. 항상 내가 화내고 소리쳐야만 알아주는 엄마의 태도도 문제였다.
엄마는 항상 내게 당신의 감정을 토로하며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내가 정작 엄마의 품이 필요하여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엄마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내 힘듦을 알아주지 않았다. 한 일화로는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부터 무릎 관절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걷기조차 괴로울 정도였다. 수업시간에는 통증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잠을 잘 때도 이 통증 때문에 어떤 자세로 자도 불편했다.
이 통증을 정확히 9년을 겪고 엄마에게 화를 냈다. 내가 전부터 아프다고 아프다고 말해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돌아봐 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오빠는 아킬레스건이 안 좋아서 여러 차례 수술하고 엄마는 허리가 안 좋아서 디스크 수술을 하는 동안, 나는 죽을 거 같은 통증을 9년이나 버텼다. 내가 화를 내야만 엄마는 날 돌아봐 주었고 그제야 난 병원에 다니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수도 없는 치료와 시술, 수술을 반복했고 그 시간은 1년이 넘게 걸렸다. 병원에서도 말하길, 내가 최장기 환자라고 했다.
나와 엄마는 분명 대화를 하고 있지만, 대화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만의 이야기를 나에게 쏟아붓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당연하게 엄마의 얘기에 공감해주고 안타까워해 주고 웃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날 더는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지 말라는 말을 엄마에게 했을 때, 역시 나는 화를 내야만 했다. 엄마는 당연히 그런 적 없다고 부정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엄마는 내가 편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명확히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