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를 주는 술이 누군가의 평화를 깬다.

술은 죄가 없다. 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by 쉐리

당신께서는 술에 취하면 어떤 행동을 주로 하고 계신가요?

일명 ‘주사’라고 하는 이 행동에서 당신은 어떤 주사를 가지고 계십니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슬픈 이유에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술자리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한 상태에 접어들곤 합니다. 또는 몸을 가누긴 하지만, 필름이 끊기는, 일명 블랙 아웃(단기기억상실) 현상을 겪기도 합니다.


술에 취하면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우는 사람도 있고 단순한 이야기와 행동에서 배꼽이 빠지게 웃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이 없던 사람이 말이 많아지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도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한 모습이 안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혹은 친구들과 어울려 마시는 술자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술에 기대어 속상함을 달래고 위로받기도 합니다. 적당히 즐기면 더나 할 리 없이 좋은 게 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꼭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 술을 마시다 보면, 시비나 싸움에 휘말리기 십상입니다. 술이 폭력성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한 이론은 다양합니다. 그중 '알코올 근시 원인론'에서 보면, 술에 취하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왜곡된다고 합니다. 술을 마실수록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신호들을 놓치게 되고 자신에게 거슬리는 행동이 확대 해석되어 과잉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술이 우리의 뇌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을 축소하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이중 ‘특성 분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특성 분노'란 만성적 분노를 겪는 성격 특성을 말합니다. 이 기질이 많으면 분노를 자극할 상황과 타인의 행동들을 찾아내려는 성향이 있어서 술을 마시면, 더 자주, 더 공격적으로, 더 많은 분노를 분출합니다.


분노는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특성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술을 마셨을 때는 그 자연스러운 분노 해소 방식을 잊고 새로 분노할 거리를 찾아 평소보다 더 많은 분노를 쏟아내는 것입니다. 이는 100명 중 3명 정도가 갖고 있는 성향이라고 합니다.


이런 특성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정신과적으로 분류하면

-파괴적 기분조절 곤란 장애, 양극성 장애 등 ‘기분장애’

-간헐적 폭발성 장애 등을 포함하는 ‘파괴적 충동 통제 및 품행장애’

-반사회성 인격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등 ‘인격장애’

-음주 사용장애 등 ‘물질 사용장애’

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분 좋자고 혹은 위로받으려고 마시는 술이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또한, 술을 마시면 인지 기능이 떨어져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혹은 못했을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누군가는 기분 좋자고 나간 술자리에서 상처받고 돌아오고 위로받자고 나간 술자리에서 되려 근심을 가지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술에 취해 실수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하실 수 있으신가요? 술에 취하면 누군가는 예민해지고 누군가는 한없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술에 힘을 빌려 당신께 손을 내민 사람에게 당신께서는 그 손을 꽉 잡아주셨나요? 아니면 술에 취했단 이유로 그 손을 내치시진 않으셨나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술을 마실수록 그 마음이 더 약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술에 취하면, 자신의 슬픔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은연중에 도움을 요청하고는 합니다. 물론, 우울증을 겪고 있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어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술을 마시지 않는 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우울한 상황에서 탈피하고자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는 술자리로 나가기도 하고 자신의 우울한 마음을 털어놓고자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술을 마시고 하는 말이 모두 취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정말 술에 용기를 빌려 당신께 최후의 수단으로 내미는 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아무리 술에 취해 있다고 해도 그 손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마음을 짓밟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신께서 분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술을 스스로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실수록 입을 여는 것보다 귀를 열어 주변의 소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심신 미약을 주장하고는 하지만, 술은 범죄의 이유도, 잘못의 빌미도 되어주지 못합니다. 술을 마시고자 선택한 건 당신이며, 조절하지 못한 것 또한 당신입니다. 술에 취했든, 취하지 않았든 모든 말과 행위의 주체는 당신이라는 걸 명심해야만 합니다.






필자인 나는 4년에 한 번 정도 만취해 친구의 도움으로 귀가를 하는 것 말고는 전혀 주사가 없다. 술에 취하면 더욱 행복한 것처럼 연기하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한창 많이 마실 때는 소주 4병을 먹고도 멀쩡히 걸어서 집에 들어갈 정도로 어느 정도 주량도 가지고 있다. 술로 단 한 번의 사고를 일으킨 적도 없고 사건에 휘말린 적도 없다. 그렇기에 성인이 되어서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


우리 집은 꽤 가부장적인 집이다. 그런 우리 집의 규칙 중 하나는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현관 앞으로 집합해 아빠께 ‘잘 다녀오셨냐,’는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 규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방에서 무언가를 하다가도, 화장실에 있다가도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시면, 인사를 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인사의 중요성을 알려준다고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금전적 권한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이 규칙은 무조건 성립해야만 했다.


내가 이 규칙을 단 한 번 어긴 적이 있다. 때는 중학교 1학년, 나는 그때 잠깐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게임이라서 아빠가 들어오셨을 때, 나는 현관 앞에 나가서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때 아빠는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당시 컴퓨터가 있던 안방으로 들어오셔서는 내게 뽀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에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술에 취한 사람에게서 나는 술 냄새를 싫어할 것이다. 나도 그 대부분의 사람에 속했고 아빠의 뽀뽀를 거절했다.


그러자 아빠는 게임 중이던 컴퓨터를 강제로 꺼버렸다. 내가 화가 나서 방을 나서려고 하자 아빠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와 프린터 겸 스캐너를 모두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거기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바닥에 놓여있던 컴퓨터 본체까지 발로 밟아버렸다. 나는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난 바닥을 보고 놀라서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빠가 이렇게까지 행동해야만 할 정도로 잘못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산산조각난 것들을 엄마가 치우고는 머리가 아프다는 아빠에게 약을 가져다 드리며 사과하라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얼마나 잘못한 건지도 모르는 일에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빠는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 후, 당연히 아빠의 돈으로 컴퓨터는 새로 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게임을 한 번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게임을 하려고 할 때마다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모든 것들이 떠오르고 그때의 감정들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잘못한 건지도 모르겠는 일에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 일이 있었던 이후, 나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고 엄마한테 연락이 오는 날이면, 일찍이 방문을 닫고 불을 끄고 침대 속으로 숨었다. 아빠가 취해 있으면, 또 어떤 트집을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이 버릇은 성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술에 취한 아빠를 잘못 건드리는 날엔 여지없이 아빠는 폭군으로 변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낮에 엄마와 함께 먹은 초밥이 문제였는지, 엄마와 나, 둘이 모두 앓아누웠다. 그리고 술에 취한 아빠가 집에 들어왔다. 나는 간신히 일어나 아빠에게 인사를 했지만,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자 아빠는 엄마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장식으로 놔둔 돌을 들어 바닥에 던지려고 하였다.


바닥이 아까웠는지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술에 만취한 아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군과도 같다. 차라리 아빠가 날 때리기라도 했다면, 신고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의 행동은 물건을 부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빠가 물건을 부술 때마다 나의 마음도 산산조각이 났다. 분명, 부서진 건 컴퓨터였는데, 왜 내 마음도 같이 부서졌는지 모르겠다.


만취한 아빠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존재였고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아니, 여전히 그런 존재이다. 나는 아빠가 만든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 1학년 2학기가 돼서야 나 겨우 다시 게임을 시작해볼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컴퓨터 게임 자체가 무서웠다. 그리고 방학 중 게임을 할 때,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그 게임이 어떤 상황이든 간에 나는 현관으로 나가서 인사를 했다. 게임의 승패 여부보다 나의 트라우마가 날 움직이게 만들었다.


화장실에 있을 때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나는 화장실 문을 조금 열고 '안녕히 다녀오셨냐'라고 크게 소리쳤다. 아빠의 ‘응’이나 '그래'란 대답이 없으면, 다시 한번 더 크게 소리쳤다. ‘응’이나 '그래'라는 대답이 있어야만 통과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순간 하루하루가 인사 잘하기 시험을 보는 것과 같았다. 만취하지 않은 아빠 역시 제대로 인사를 안 하면, 화를 내는 건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더는 부서지는 것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더는 내 마음에 부서진 것들을 더 잘게 부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래야 부서지지 않는 온전한 것들을 볼 수 있었고 더는 부서질 것 없는 내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 부서진 건 아무리 붙여보려 해도 보기 흉한 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깨지기 마련이다. 내 마음 역시 그렇다. 아무리 붙여보려고 해도 예전처럼 붙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기 흉해 부서진 상태 그래도 놔두는 게 나을 정도다.


아빠가 인사받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열심히 일하고 들어왔으니 인사받을 권리와 존경받을 정도는 당연히 있지,’일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만든 권리와 존경은 오래가지 못한다. 습관으로 잡혀버린 아빠의 귀가에 대한 인사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역겨워졌다. 누워 있다가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도 아빠가 올 시간에 울리는 도어락 소리에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는 내가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귀가한 아빠에게 인사를 하지만, 그 인사에 존경은 담겨 있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아빠의 귀가를 환영하며 달려가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아빠의 귀가를 무서워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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