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진 것뿐, 잘못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며 이유 모를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께서도 느껴봤을 불편함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인격과 각자의 성격, 개성, 취향을 가진 것일 뿐, 헌법에서 규제하는 경우를 넘어가지 않은 선에서 우리는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가 가진 갖가지 색의 인격, 성격, 개성, 취향 모두 우리가 자라나면서 겪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의 모든 삶, 구석구석을 알 수 없는 우리 모두가 굳이 다른 사람의 삶과 색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람의 방식대로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면 될 뿐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건 자기 자신조차 건드릴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사양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브랜드와 기종의 핸드폰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핸드폰은 카메라가 더 발달해 있고, 또 어떤 핸드폰은 다양한 앱을 다운로드하거나 마음대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핸드폰이어도 배터리의 수명이 달라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성격과 성향을 가졌고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신체의 에너지, 즉 배터리의 수명을 좌우합니다. 그리고 이 배터리는 충전 방식 또한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이 배터리를 사람들과 만나면서 충전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충전합니다. 이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번 아웃 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꼭 문제는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당신께서 그 삶의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 말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친구 사이에서도 많이 발생하지만, 특히 부모 자식과의 관계에서 발생했을 때, 자식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됩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성향에 따라서 아이들을 키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부모가 가진 핸드폰에 100개의 앱이 깔려있다면, 당연히 자신의 아이들도 100개의 앱이 깔려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에게 과연 100개의 앱이 깔려있을까요? 그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넘어서 200개의 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아이들은 50개조차 가지고 있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체의 에너지인 배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자신들의 기준으로 100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 100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부모로서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뭐가 문제인지 파고들려고 합니다. 때로는 자신들의 기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혼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 문제일 뿐, 혼낸다고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핸드폰의 성능과 개성, 즉, 성격과 성향에 대해 파악하지 못합니다.
사실, 당신께서도 진짜 핸드폰을 새로 샀을 때나 가전제품을 샀을 때, 사용설명서를 읽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산 것에 대한 흥분과 기대만 있을 뿐, 기존에 사용하던 것과 별반 다름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사용설명서는 펼쳐보지 않습니다. 기기에 달린 사용설명서도 읽지 않는 우리가, 사용설명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아이를 대할 때, 우리는 기존에 우리가 살던 방식과 기준으로 대합니다.
과연, 당신은 달랐다고 말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신은 사용설명서를 정독한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가진 삶의 기준과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한 번도 눈살이 찌푸려지신 적이 없으십니까? 당신께서 자녀를 키우고 계신다면, 당신의 자녀가 가진 성격과 성향에 대해 깊이 이해해보려고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바로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사용설명서가 없어서 발생합니다. 당신은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 그 사람에 대한 사용설명서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서로 다른 반응과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반응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당신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의 처음 젖먹음과 첫걸음, 첫 말을 보시며 당신을 키우신 부모가 가지고 계신 당신에 대한 사용설명서와 당신께서 스스로 만든 당신에 대한 사용설명서는 완벽하게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알고 있는 ‘당신’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다를 때 역시 갈등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어떤 부모는 당신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다시 읽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은 고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든, 당신에 대한 사용설명서의 내용을 부정하며 당신께서 가진 자신의 사용설명서를 고치려고 하는 부모도 존재합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께서는 당신에 의한 삶이 아닌 부모에 의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부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당신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더 많이 고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의 삶에서 당신에 의해 만들어진 사용설명서가 아닌, 당신의 부모를 위해 만들어진 사용설명서를 가지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경우에, 당신께서는 성장하며 ‘인지 부조화’를 겪게 됩니다. 여기서 ‘인지 부조화’란 자신이 믿고 있었던 신념이나 개념과 정반대 되고 모순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합리적인 정답 대신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과 개념에 맞추어 행동하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마음속에서 이런 ‘인지 부조화’를 겪게 되었을 때, 흔히, 이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과는 다른 것을 믿거나 우기게 됩니다. 그렇게 당신께서는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당신의 뜻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 합리적인 정답을 찾게 되는 날이 왔을 때, 당신이 겪게 될 고통은 이루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장 믿었고, 가장 의지했던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바뀌게 된 당신을 마주했을 때, 당신께서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께서는 그런 고통을 겪었을지라도, 이러한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당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임을 인정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히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사용설명서를 갖기 위해서 말입니다.
나의 사용설명서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나는 굉장히 섬세한 성격에 얇은 유리 조각 같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말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상처받길 반복하고 다른 사람이 아무 의미 없이 내뱉은 말과 작은 찌푸림에도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해야 하는 성격이다. 내가 예민하다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든 예민한 부분이 있고 어느 날은 특히 더 예민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영역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예민함’은 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과도 같다. 그 이유는 당연히 부모님의 영향이다. 나는 섬세한 성격으로 살았지만, 나의 부모님은 그 섬세함을 늘 예민함으로 치부했다. 항상 나에게 넌 뭐가 그렇게 예민하고 까칠하냐고 되물었다.
나에게 있어선 당연한 섬세함이 부모님에게는 예민함으로 받아들여졌고 나는 내가 예민하다고 받아들였다. 섬세함과 예민함은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일 수 있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서 천지 차이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민함은 늘 짜증에 섞인 말을 내뱉는 사람이다. 늘 불만에 가득 차서 투덜거리고 이로 인해 가족 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그런 성격이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섬세한 사람이 아닌 예민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온전히 내 성격을 밖으로 표출할 수 없었다. 내 성격을 숨겨야만 했다. 항상 엄마와 아빠는 나의 예민함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제기하는 문제를 늘 ‘네가 예민해서 그래.’, ‘넌 왜 그렇게 예민해?’라는 말들로 받아쳤다. 내가 제기한 문제는 엄마, 아빠에게 말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해달라고 했던 것뿐이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의 형제가 내뱉는 표현들은 항상 강했다. 강한 어조와 명령조의 말들, 때로는 격한 언어들이 오고 갔다. 그 사이에서 말 한마디에도 섬세한 나는 살아남기 위해 같이 강해져야 했고 나의 섬세함을 드러내면, 예민한 아이로 취급받았다. 늘 내가 문제였다. 엄마, 아빠는 아무런 의미 없이, 악의 없이 내뱉는 말에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내가 문제였다.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섬세할 수 없었고 항상 나의 얇은 유리 같은 정신력은 깨져버리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내가 꾸준히 다니는 신경정신과 선생님과 나의 연인 덕분이었다. 먼저, 나의 신경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은 어느 날 나와 상담하던 도중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제가 봤을 땐, 00씨는 가족들과 성향이 전혀 맞지 않아요.”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섬세한 사람이었을 뿐,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서 내가 쓸데없이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되었던 이유는 가족들이 내 성향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아서였던 거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나의 성향에 대해 잘 알아야 할 부모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짜증이 많고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인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거였다.
또 한 번은 나의 연인이 전화 통화 도중에 나와 가족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듣고 나서 나에게 한 말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내 연인은 가족들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전화를 다시 받은 나에게 말했다.
“혹시 가족들이랑 싸운 건 아니지?”
이 말을 듣고 나는 내가 가족들과 한 대화를 되돌아봤다. 가족들과 나눈 대화는 아빠가 새로 산 패딩이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한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였다. 하지만, 나의 연인은 그 대화를 듣고 싸우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분명히 나와 가족들 사이의 대화에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누구보다 섬세한 사람이었던 내가 가족들 사이에만 들어가면 바뀌었다. 나의 생존 본능이었을지,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 가족들의 의사소통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만 깨닫고 있다는 점 또한 큰 문제였다. 가족들은 아직도 당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의 정신 건강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역시 알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예민한 부분도 당연히 존재한다. 예민한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주입했던 예민한 성격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예민해 보이는 게 싫은 것뿐이다. 예민하다고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맞지도 않은 탈을 쓰고 광대 노릇을 해왔다. 나의 사용설명서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의 부모, 형제와 함께 살면서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의 사용설명서에 맞춰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 결과, 나의 사용설명서는 없어졌다. 잃어버린 것인지, 잊어버린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내 성격이 정말 어떤 성격인지 알지 못한다. 분명 속으로는 섬세하고 행여나 나의 작은 말 한마디에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며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들과 만나면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지고 상처받을 수도 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싫어하던 예민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저 그렇게 태어난 사람일 뿐인데, 나의 사용설명서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