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없으면 결과는 있을 수 없다.

성과주의에 빠진 사람들.

by 쉐리


당신께서는 분명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던 적도, 기대했던 것보다 나쁜 결과를 얻었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들은 다양한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과정을 겪고 무수한 노력을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스레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결과들도 존재하고 죽도록 노력해서 얻는 결과들도 존재합니다. 전자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적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시작했던 뒤집기부터 시작해서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던 순간들이 속할 것입니다. 후자는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이 속할 것입니다.


자연스레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었던 결과들에 대해 당신께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얻었던 결과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잔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기는 평균적으로 4개월에서 5개월 사이에 뒤집기에 성공한다고 합니다. 뒤집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 등 온몸의 근육이 강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아기가 아무리 성장을 한다고 하여도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의 근육이 강해지는 게 가능할까요? 뒤집기를 하기 위해서 아기는 무수한 노력을 해왔을 겁니다. 하루아침에 서프라이즈로 뒤집기가 가능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본능적으로 수도 없이,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가 한 노력을 알아주기보다는 뒤집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부모는 신기해하고 기뻐합니다. 대부분 부모는 평균적으로 알려진 아기의 발달 과정만을 믿고 아이가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남들도 그래 왔고 자신 역시 그래 왔으니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기가 한 가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발달 과정들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기는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노력을 해왔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발버둥 쳐왔습니다. 그랬기에 지금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후에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다시금 우리에게 노력하길 강요합니다. 교육이 끝난 후에 우리에게는 금전적 독립을 해야 한다는 규칙에 따라, 남들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취업하기 위해 또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금 노력하여 취업한 직장에서도 다시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노력을 하지만, 노력의 과정은 무시당한 채 성공과 실패, 단 두 가지로 평가를 받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고 이는 취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노력을 강요합니다. 인생의 출발선에서부터 시작된 노력을 평생 강요하며 성공하지 않은 인생은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성공의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지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틀에 박혀버린 사회는 노력을 강요하고 그 노력의 결과가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을 때,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각자가 추구하는 것이 다른 것뿐이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모두 똑같은 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안타까운 일은 당신께 제일 먼저 노력을 강요한 사람은 당신의 부모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당신께서 알아야 할 사실은 당신의 부모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노력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노력하는 과정을 알아주지 않고 뛰어난 결과만을 바라는 부모의 밑에서 자란다면, 당신께서는 성과주의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한 노력보다 당신 앞에 놓인 결과만을 보며 당신 스스로를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수상 받기 어려운 상으로 알려진 노벨상이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 중 노벨화학상을 받은 생화학자 로버트 레코프위츠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천재로 알려진 아인슈타인 역시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혀 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우리가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무수한 실패를 겪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주주들에 밀려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초의 아이폰을 세계에 발표하는 날까지도 완벽한 iOS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단상 밑에 여러 개의 아이폰을 넣어두고 바꿔가면서 발표를 했습니다.


세상에 실패한 적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령 그게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 인사나 위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실패를 경험으로, 발판으로 하여 다시금 일어나길 반복했고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정과 실패 없이 성공을 바랄 수 없다는 많은 예시가 세상에 존재합니다. 당신께서 원하는 것을 얻고 당신께서 성공이라 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과 실패가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당신께 성공만을 강요한다고 해서 당신께서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소중한 과정을 무시하는 순간, 당신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상위 1%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에 만들어진 성과와 결과 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는 무수한 실패가 존재할 것이고 그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당신께서 더욱 빛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나는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면, 실패할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면, 나의 삶은 그래야만 했다. 항상 엄마와 아빠의 속을 뒤집어 놓고 제대로 공부조차 하지 않는 나의 형제를 보며 나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속을 상하게 하는 나쁜 자식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그다지 착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았다.


그렇게 내가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공부하는 것 자체는 나에게 힘들지 않았다. 물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미성년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한 적도 있다. 그게 내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버팀목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바라는 착하고 공부 잘하는 자식으로, 자랑하기 좋은 인형으로 컸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고등학교 때는 전교 순위에 들었고 교무실의 선생님들이 모두 나를 알 정도였다. 그때 함께 언급했듯 나는 ‘대학만 잘 가면,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마법에 걸려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입을 준비하면서 화려한 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항상 좋은 결과만을 받아왔다. 여기에서 항상 문제가 발생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받아오는 상장인 결과는 좋아했지만, 그 과정은 쓸데없는 시간으로 치부해버렸다. 교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공부 대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 가면서 나를 비난했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며 공부를 안 한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엄마와 아빠는 분명히 내가 상을 받아올 때마다 좋아했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공부 외에 다른 것들을 하는 시간은 모두 쓸모없는 것들로 여겼다. 분명히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인데, 엄마와 아빠는 공부를 제외한 과정을 싫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 아빠의 행동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엄마와 아빠의 비난을 그저 감수해야만 했다. 왜냐면, 당장은 비난받았을지라도 내가 상을 받아온다면, 다시금 나를 칭찬해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는 지극히 성과주의적인 사람이 되었다. 내가 노력하는 모든 모습을 감춰야만 했다.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면, 엄마와 아빠의 비난은 더욱 거세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 죽으라 노력하고 있지만, 노력하지 않는 척 연기하는 게 나에게 더욱 도움이 되었다. 그래야 비난받더라도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괜찮지 않았다. 나는 지극히 좋은 결과만 바라는 엄마, 아빠 밑에서 보냈다. 그리고 당연히 과정은 자연스럽게 숨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든 좋은 결과만 보여주면 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아빠는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고 혼내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혼란은 다시 시작되었다. 분명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는 노력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혼내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노력하는 과정을 숨기게 되었는데 왜 노력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게 된 거다.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의 반복이었다. 대학만 가면 당연히 끝나겠지 싶었던 엄마, 아빠의 분노는 대학교에 올라와서도 계속되었다. 나는 노력하는 과정을 겪었지만, 끝까지 엄마와 아빠는 결과만을 보고 평가했다. 그 상황에서 버티고 버티다 결국에 나는 무너져버렸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학점으로 나의 과정들은 비참하게 무시당했기에 나는 더 이상 잘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내가 비참해져만 갔다.


나는 잘하기만 해야 하는 사람으로 자랐는데, 계속 나를 향해 모자라다는 아빠의 성화를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의 삶을 포기하는 게 제일 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의 대학 생활 중 일부는 수업에 나가지 않거나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무사히 대학은 졸업했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뚫을 기세로 떨어졌다. 나는 잘해야만 하는 사람인데, 좋은 결과만을 얻어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결과주의적이고 성과주의적인 나는 모든 걸 포기하는 게 더 쉬운 사람이 되었다. 오로지 좋은 결과만을 겪고 살던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내가 성과주의적인 사람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의 성향을 알게 된 나의 연인이 내게 실패할 수도 있는 게 당연한 거라고 말해줬다. 그때야 나는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성공을 위해 단단히 쌓아놓은 받침대가 없었다. 성공만 해봤기에 실패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실패를 발판 삼아 일어나는 방법을 몰랐기에 나는 더욱 완벽하게 무너진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성과주의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무너지고 쓰러지는 걸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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