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누구도 짓밟을 수 없다.

나의 꿈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이다.

by 쉐리


“넌 꿈이 뭐니?”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매년 들어왔던 질문입니다. 그리고 학창시절엔, 매 학년 장래희망란에 되고 싶은 직업을 적어왔습니다. 꿈이 없다고 하여 공란으로 놔둘 수 없이, 무엇이라도 적어야 했습니다.

꿈과 장래희망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의 삶을 괴롭게 만드는 건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사실 꿈과 장래희망은 단순히 직업이 아닙니다. 직업이라는 명사로 끝날 수 없는 문장이 되어야 하며, 꿈을 이루고 나면 새로운 꿈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기적이게도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꿈을 강요하고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을 강요합니다.


아직 장래를 정하지 못한 어린아이에게는 “넌 왜 하고 싶은 게 없니?”, “네가 잘하는 거 하면 되잖아.”, “그동안 그런 것도 생각 안 하고 도대체 뭐했어?” 등 무수히 상처 되는 말들을 내뱉습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 놓고 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던 것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아이는 꿈이 있는 아이와 비교 선상에 놓입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이상한 아이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렇다고 꿈이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할까요? 꿈이 있는 아이도 그렇게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꿈에 대한 현실성에 대해 평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건 여자(혹은 남자)나 하는 일이야.”, “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너 성적 가지고는 절대 그 과 못 가.”, “너 그거 배우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는 있어?” 등 마침내 꿈을 가지게 되었지만,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내 글을 읽고 계신 분이시라면, 분명 이러한 상황들과 마주한 적이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만약, 당신께서 위와 같은 상황과 마주한 적이 전혀 없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만 하면서 살아왔다면, 우울증과는 거리가 멀 거라고 감히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삶은 내가, 그리고 모두가 부러워할 삶이기에 말입니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대부분 꿈을 가졌든, 가지지 못했든 우리가 마주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되게 부정적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꿈에 가장 많은 간섭과 개입을 하려는 사람은, 당신을 제일 믿고 의지해줘야 할 부모라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꿈이 없다는 사실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입니다. 그동안 자식을 위해 살아온 세월이 고단함이 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나 때는 그저 돈 버는 게 제일이라 꿈 한 번 생각해보지 못하고(아니면 있던 꿈도 포기하고) 살았는데”, “내가 내 자식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 부모는 비워진 장래희망란을 보며 분노 혹은 허망함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거나 부모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사는 대리자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꿈이 없는 자식을 인정하기 힘들어합니다.


이 과정에서 꿈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꿈이 없더라도 자기 자신으로서 인정받아야 하는 부모에게 상처받습니다. 지금 당장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가야 할 학교, 직장에 대한 걱정이 더 클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어떻게 지금껏 하고 싶은 게 없느냐,” “지금까지 놀기 바빴지.” “네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느냐?” 등 비난하기 바쁩니다. 정말 하등 쓸모없는 비난으로 꿈이 없는 사람의 자존감을 뭉개버리기 일쑤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꿈을 찾을 수 있는 생각의 여유와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 그 직업과 자신의 성향이 맞을지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도 있다는 인정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생각하라며 꿈을 포기하게 하는 부모도 존재합니다. 자신이 생각한 인생 계획을 말하기도 전에 부모는 갖가지 이유로 그 꿈을 반대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그 직업과 자신의 자식이 어울리지 않거나 뒷바라지해주기 힘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만약, 꿈이 있는 사람이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힘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이라면 그 또한 절대 쉬울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당신은 후자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한순간 정말 원했었음에도 포기했던 꿈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당신은 다시 도전하면 될 거로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꽤 무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주변에서도 당신을 말립니다. 지금 잘하고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이번에 당신을 잡는 사람들은 당신이 부모를 포함하여 당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입니다. 지금 일과 보수가 복에 겨워 꿈을 찾을 여유도 있다고, 그러다가 돈과 직업 모두 잃으면 네 나이가 몇인 줄은 아느냐고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꿈은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꿈이 꼭 직업이 되지 않아도 되고 지금 가진 직업이 당신의 평생 직업이 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새로운 꿈을 꿀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고 다음 꿈을 꾸게 될지, 그 꿈의 중간에서 새로운 꿈을 갖게 될지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꿈을 부정하거나 망치려는 자가 있다면, 멀어지세요. 멀어지는 거로 부족하다면 도망치세요. 그 누구도 당신의 꿈을 티끌 한 점 바꿔놓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꿈을 이루는 동안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당신을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당신이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응원해주고 믿어주세요.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은 이미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고 있고 호강에 겨운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저, 남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을 이뤄내는 중입니다.






최근 책 하나를 읽었다. 그 책에 따르면,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의 내용보다 그 말에 담긴 의도에 대해서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몇 달 전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엄마가 나에게 얼마나 못되게 말했었는지 알려주었는데, 엄마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고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말을 어떻게 했든지 간에 나를 걱정하는 의도로 말한 것이기에, 엄마는 ‘나를 걱정했다,’는 것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에 나는 ‘엄마가 나를 걱정했다,’는 사실보다 엄마가 그 당시에 어떻게 상처를 줬는지를 기억한다.


과거에 엄마와 아빠에게 들은 말들을 굉장히 잘 기억하는 나에게는 그 말들이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씁쓸하다. 그게 정말 나를 위한 걱정이었을까? 나를 위한다면, 나를 걱정한다면, 적어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의 꿈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다면, 그렇게 비난하고 부정하면 안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왜 나의 꿈을, 내가 걸어갈 길을 그리도 막아섰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해금을 배우고 싶었다. 한국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 내가 스스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큰뜻 없이 그냥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당연히 아빠는 반대했다. 내가 지금 해금을 배워서 어디에 쓸 거냐는 게 이유였다. 이렇게 작은 거에서부터 시작된 반대는 꽤나 커졌다.


나 :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아빠 : 말이 좋아서 아티스트지. 남들 수발 들으면서 살고 싶다고? 그게 꿈이냐?


나 : 건축가가 되고 싶어.

아빠 : 저 현장직 남자들이 얼마나 드센 줄은 알고 하는 소리야? 현장에 가봐라. 여자가 하는 말 들은 척도 안 할 거다.

나 : 건설업자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건물 도면을 그리고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라니까?

아빠 : 여자가 지들 위에 있다고 고분고분 말 들을 거 같냐? 그 사람들 절대 여자 말 안 듣는다.


나 : 나 공대 가려고.

아빠 : 뭐 하려고?

나 : 생명공학과 가려고.

아빠 : 너 공대 가면 남자들한테 치이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겠냐? 그리고 생명공학과 나오면 도대체 어느 기업에서 취직시켜주냐?

나 : 대학원 가서 박사 학위 따야지.

아빠 : 너 대학원은 쉬운 줄 아냐? 00(사촌)이 대학원 가서 교수 때문에 고생하는 거 몰라서 하는 말이야?


내 꿈이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든 밀어붙여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자존감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내가 밀어붙이는 순간 생기게 될 갈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할 대학의 학과에 들어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내가 타인에 의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실제로 사촌이 메이크업 관련 학과를 갔을 때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아빠의 딸이 아니니 말이다.


아빠는 남들보다 일찍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평생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은 곳에서 일했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했다. 꽤 오래전 관리직이 되었어도 젊은 날의 고생은 잊히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내 딸은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일하길 바랐을 거다.


하지만, 아빠는 틀렸다. 나는 힘들더라도 온전히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걸어야 하는데, 아빠의 개입과 부정으로 나는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축하와 주목을 받던 아빠의 딸은 지금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 돼있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이제 나는 아빠와 미래에 관해 이야기 나누지 않는다. 아빠가 물어봐도 나는 대답을 회피한다. 내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걸 알면, 아빠는 또다시 내 마음을 상처 내고 자존감을 앗아갈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아빠는 아픈 나를 보며 항상 말했다.


“내 딸이 뭐가 모자라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다른 답들을 떠올린다. 내가 모자랐던 부분이 아니라 아빠가 모자랐던 부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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