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낫게 해 줄 거라 믿던 약이 한순간 독이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by 쉐리


이 글을 쓰기에 앞서 항우울제나 신경정신과 계열의 약이 나쁘고 해롭다는 의미로 오인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필자는 우울감을 느끼는 당신들께서 꼭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조기에 방문하여 적절한 도움과 치료를 받기를 지극히 희망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신경정신과에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약물 처방을 받았다면, 약을 옳은 방법으로 복용하는 것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는 누구보다 약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 약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하루에 얼마 이상 복용하면 안 되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기반으로 적절한 정도의 약을 처방해줍니다.


의사는 절대 환자가 약에 중독되거나 오용 혹은 남용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약을 처방받았다면, 그때부터는 환자의 몫입니다. 의사가 제시한 안정적인 길을 차분하게 따라가면 됩니다.


당연히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그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은 의사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이 사실을 간과하기 시작했을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의사와의 상의 없이 복용 중이던 약을 갑자기 끊는다면 금단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혹은 약을 과량 복용하기 시작한다면, 약은 더 이상 당신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신경정신과의 마약성 약물이 중독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마약성 약물이라 불리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오용과 남용에 따른 신체의 손상이 있을 수 있지만, 약물의 효과와 안전성을 인정받아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약물은 철저하게 법적인 규제를 받습니다. 의사가 처방하고 제시한 수준에서는 중독을 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했을 때, 약물 중독으로 또 다른 병을 얻게 됩니다. 신경정신과에서 처방해주는 향정신성의약품 정도로는 마약처럼 극적인 효과를 얻을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순간의 안정과 평온을 위해 개인의 마음대로 약물을 과량 복용하게 됩니다. 그렇게 복용하고 나면, 그 순간이 괜찮을 거란 그릇된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신경정신과 약물의 과량 복용은 대부분 의식 저하로 이어집니다. 의식이 저하되면, 더욱 쉽게 잠들 수 있고 복잡하고 암울한 생각을 덜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요동치는 감정이 차분해지고 몰려오는 몽롱함에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에 안도감 또한 느낀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그 상태가 유지되길 바라며 과량 복용은 지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좀 더 먹는다면, 더 안정적인 심리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약의 개수가 쉬이 늘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의 본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중독이든 상관없이 치료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하기만 할 뿐입니다.


중독을 경험해보지 않으셨어도 당신께서도 중독의 결과가 어떨지 눈에 훤히 보이실 테지요.


절대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으며 이미 중독된 사람의 뇌는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은 상태로 손상됩니다.


병을 이겨내기 위해 용기를 내어 병원에 갔고 약을 먹었습니다. 허나, 다른 병이 생기게 되었고 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 역시 또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충동적인 약물 복용을 막기 위해 충동성을 낮추는 약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적극적인 자세로 치료에 응하는 것은 좋으나 늘 경계해야만 합니다. 약은 당신을 유혹하지 않으나, 당신은 자신을 스스로 유혹해 당신의 손 위에 더 많은 약을 올려놓을지 모릅니다.






지난 2월부터 나는 10가지가 되는 저녁 약을 한 개씩 한 달 간격으로 서서히 줄여왔다. 나는 단 한 번도 중독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양의 약을 오랜 기간 먹다 보면, 절대 한 번에 모든 약을 끊어낼 수 없다. 역으로 약을 먹을 때는 없었던 부작용이 나타나는 걸 직접 경험했다.


처음 순서는 당연히 졸피뎀이었다. 졸피뎀의 부작용을 겪은 적은 없었고 여전히 졸피뎀의 부작용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겪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졸피뎀을 먹는 걸 아는 가족들을 위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졸피뎀이었다.


갖가지 색과 모양이 다른 약을 보다 보면, 내가 어떤 약을 어떤 순서로 늘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달에 딱, 한 알씩 줄였다.


그 결과는 나의 주치의 선생님과 가족들이 좋아할 정도였다. 5개월의 노력 끝에 나의 저녁 약은 5개까지 줄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약을 끊을 수 있다는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그저 남들이 보았을 때, 기겁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 내가 먹는 약이 손을 가득 채우지 않는 수준 정도를 바랐다.


약이 없는 나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만 더 줄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루 정도는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일상에 지쳐 쓰러져 얕은 잠이라도 자다가 눈떴을 때, 끔찍한 금단 현상이 찾아오지 않는 삶.


어쩌다 저녁 약이 없는 순간에 맞닥뜨려도 걱정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의연하게 남들처럼 지나갈 수 있는 삶.


내가 바란 건 그저 조금의 평범함이었다.


그래서 한 알씩 이를 악물며 줄여갔지만, 그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온전히 자기 자신들의 평온함과 안녕을 바라는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내가 바라던 조금의 평범함이 아스러졌다.


처음 시작은 유독 그날따라 느껴지던 이유 없는 불안감에 남편에게 강아지 산책을 맡겼을 때였다. 들어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들어오지 않아 불안함은 불길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간의 사고로 남편은 다른 강아지에게 물렸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상대방의 태도에도 화를 꾹 누르며 참았다. 이후의 상황에서도 가해 견주의 태도에서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병은 오랜 기간 화를 참으며 눌러 담고 욱여넣다가 생겼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나는 또다시 참으며 입을 막았다. 나는 휘청이기 시작했다.


휘청이는 와중에 줄이고 있던 저녁 약에 손을 댔다. 한 움큼씩 삼키고 침대에 갇혀 생활했다. 그래도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과 강아지가 있기에 일어나야만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침대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모와 문제가 생겼다. 본인의 직업을 알면서 다른 이에게 일을 맡겼다며 섭섭하다 하셨다. 그래서 그 일을 모두 이모에게 일임했더니 이모는 본인 마음대로 내 일을 처리해버렸다.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어 이모에게 내 잘못이 아님에도, 어른이라는 이유로, 내 엄마의 언니라는 이유로 굽실거리며 사과했다. 그리고 일임했던 일을 도로 되돌려 놓았다.


내 잘못도 아닌 걸 내 잘못인 척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이모가 원래 본인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걸까. 이모는 내가 깐깐하게 굴 줄 몰랐다며, 나를 위했더니 그걸 몰라준다며 날 비난했다.


가족이라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의 가족이기에 존중하고 따르려 했다. 하지만, 엄마, 엄마의 아들, 엄마의 남편(내 아빠이기도 하지만.)까지 날 힘들게 하더니, 이제는 엄마의 언니가 날 괴롭게 만들었다.

불만을 토로하는 나에게 엄마는 참으라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내가 해왔던 게 참는 거였다. 그리고 난 지독한 병을 얻었다. 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엄마였지만, 참으라는 그 말이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날 넘어뜨렸다.


분명 엄마의 잘못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기적이게도 엄마와 이어지는 사람들의 연속된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핸드폰과 나의 일상을 꺼버렸다.


핸드폰은 전원 버튼으로 간단히 꺼졌지만, 나의 일상은 그리 간단히 꺼질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약을 늘렸다. 줄이기 위해 모아놓았던 약들을 먹고도 부족해서 3일 치의 약을 단번에 삼키기도 했다.


5개월을 노력해 줄인 약보다 더 많은 약을 먹게 된 데에는 5일조차 걸리지 않았다. 차마 붙어있는 숨을 떼버리지 못하는 나는 약물에 중독되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약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밤이 되면 손 위에 약들을 털어놓는다. 이미 한 번에 삼키기 버겁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끝없는 부족함을 느끼며 약이 떨어져 가는 게 무섭지만, 며칠 분량을 하루에 삼킨다.


하지만, 이 상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이 일을 고백하면, 내가 다시 위험하다고 생각할 가족이 날 통제할 것이 분명하다. 내 약을 감추고 집안의 상비약과 흉기가 될 물건들을 숨길 것이다. 그렇게 해도 진정하지 못하는 날 보면, 강제 입원이라도 시킬 걸 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금 가족에게 신뢰를 잃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약을 먹을 수 없다. 나는 지금 늘어난 약보다 가족이 이 사실을 알게 될 상황이 더 두렵다.


분명,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다. 날 낫게 해 줄 거라 굳게 믿었다. 믿지 않았으면,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믿음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약을 먹다 힘든 상황을 마주치면 약에 더 빠져든다. 한 번 시작된 과용은 독이 되어 나의 삶을 지배한다. 내가 지금 삼키는 것이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먹지 않으면 무섭다.


한 알만 덜 먹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다. 그런데도 난 그 한 알을 덜어내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더 약 기운을 빌리기 위해, 그래야만 내일의 내가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아 말이다.


스스로 약물 중독임을 인지하고 있고 이 상태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는 상태인 것을 밝히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부디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

치료를 위해서만 약을 먹고 욕심을 채우려 약을 먹는 사람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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