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중증 우울증 환자의 삶.
중증 우울증 환자의 삶을 당신의 삶에 비교해서 설명해보려 합니다. 당신은 큰 실의에 빠져서 침대에만 누워있게 됩니다. 당신께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람과는 연락하지 않고 핸드폰 하기, 용변을 위한 화장실 갔다 오기, 직접 제조하지 않은 음료나 물 마시기가 전부입니다. 당신이 중증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틀에서 사흘 정도는 이 생활이 나름 할 만하다고 혹은 편안하다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생활을 한 달 동안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배는 고프지만, 먹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되려 음식물 냄새가 나면, 속이 울렁거립니다. 또한, 귓가에는 이명이 계속 울리며 한 번씩 크고 깊은 소리가 귓속을 때려 박습니다. 정신을 놓고 있다가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강력한 소리가 갑자기 귓속을 울리니 말이죠. 그래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시간에 맞춰 약을 먹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만 간신히 제대로 잘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 자려고 하면,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만약 왔다고 해도 선잠 정도입니다.
핸드폰을 보는 건 점점 지루해지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잡다한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누워만 있어야 하지? 그러나, 당신은 일어날 힘과 마음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바라 왔던 나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사회적인 책임감들이 당신의 뒤를 엄습합니다.
당신께서 학생이라면 공부와 학업에 대한 고민을, 당신께서 사회인이라면 직장과 돈에 대한 고민을 어느 순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누워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게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전부이니 말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해도 당신의 어깨 위에는 무언가 큰 짐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 큰 짐은 무기력증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결국 다시 눕게 됩니다. 우울감과 불면증을 위해서 먹었던 약이 당신을 나른하게 만들며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가 되고 싶던 사람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발버둥 쳐봅니다.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다시 화장실에 다녀와 눕는 것뿐입니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전쟁이 펼쳐집니다. 일어나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몸과 마음이 벌이는 전쟁입니다. 아무것도 못 한다는 당신의 한계를 느끼고 당신은 다시 핸드폰을 잡습니다. SNS나 유튜브에서 당신의 우울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콘텐츠를 찾아 당신은 잠이 찾아오지 않는 밤을 새우길 수 없이 반복합니다.
당신은 씻지도 못해서 머리도 간지럽고 옷도 찝찝할 테지만, 왜인지 그조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 연락도 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은 당신께 연락해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연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당신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당신의 이런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어서 결국에는 메시지 앱 연락 알림을 끄거나 삭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가 오는 게 싫어 핸드폰의 모든 알림을 꺼놓습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낍니다.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수록 전화번호를 바꿔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정도면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일어날 법도 하지만, 여전히 당신의 몸과 마음은 그럴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일주일 넘게 공복으로 있었던 당신은 큰 힘을 내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식탁 위에 앉았습니다. 생각보다 음식 냄새가 역하지 않아서 먹을 맛이 납니다. 그렇게 세 젓가락 정도 먹었을 즈음, 더는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식은 잔뜩 남았지만, 더는 눈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당신께서는 장염에 시달리게 됩니다. 먹은 거라고는 배달 음식 세 젓가락에 당분 음료 조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당신의 장은 이 모든 걸 받아내주지 못합니다. 단순히 위염으로 끝날지, 위경련이 올지, 위염이 올지, 장염이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안 그래도 힘든 몸에 속 쓰림, 복통, 설사를 동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당 충전을 위해 먹었던 음료 역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계속 누워서만 지내던 당신께는 또 두통이 찾아옵니다. 두통약을 겨우 찾아 먹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곳이 엉망입니다. 집안 온 바닥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 식탁에는 먹다가 제대로 치우지 못한 배달 음식, 환기 한 번 시켜주지 않아 가구와 가전 곳곳에 내려앉은 먼지, 물때와 곰팡이가 핀 화장실과 변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면한 채 다시 침대로 올라옵니다.
하지만, 침대 역시 엉망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안 감은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과 두피와 몸의 각질들이 침대 구석구석에 놓여 있습니다. 불안함에 뜯은 손톱 조각들과 살점들, 손톱을 뜯다가 난 핏자국도 침대 시트와 베개에 묻어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진절머리 나는 상황을 피하고자 이불속으로 숨어듭니다. 생각을 해보니 병원에 가야 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고 숨어있고만 싶은데, 지금 이런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데,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약을 탈 수 없으니 병원에 가야만 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불속에서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싫어서 울고 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제일 싫은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당신, 본인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는 지키고 싶은 마음에 이제 주변의 모든 것들에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나를 이렇게 키운 부모님, 나를 뭉개던 친구들, 내가 설 자리 하나 없는 사회 등 당신이 가진 모든 환경을 비난하고 또 비난합니다.
차마, 당신께서 자기 자신만큼은 지키고자 나는 아프다는 이유로 이런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당신마저 당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세상에 당신의 편이 하나도 없을 걸 알기에 말입니다.
당신께서는 실제로 겪어본 일이 아니라 설마 이렇게까지 될까 싶으신가요? 하지만, 중증 우울증 환자 중 많은 사람이 이런 생활을 합니다. 실제 필자인 내가 겪은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묘사이자 일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안 아픈 곳이 없게 됩니다. 쓰지 않았던 근육들은 퇴화하고 근육들이 퇴화하면서 관절에 무리가 가서 관절통을 겪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단한 움직임에도 쥐가 오거나 담에 걸리기 쉽습니다. 항상 누워있기 때문에 두통은 기본이며,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음식물을 제대로 소화할 수조차 없습니다. 제때 씻지 않으니 청결에도 좋지 않고 특히 치아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가벼운 환기조차 하지 못하고 먼지 속에 살다 보면, 비염이 와서 만성으로 자리를 잡기도 합니다.
이러한 질병들 역시 필자인 내가 경험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 시도 후 3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일어났다가 또 무너질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워 침대 위에서만 지냈습니다. 그나마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의 보살핌이었고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들의 기다림이었습니다. 당신께서 우울증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가 겪은 상황 속에서 ‘내’가 될 수도 있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들’ 중의 한 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우울증이 심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 심해에 빠진 거 같다고 얘기한다. 다른 누군가는 벼랑 끝에 몰린 거 같아서 누군가 ‘톡’하고 치면, 그 아래로 떨어져 버릴 것 같다고 얘기한다. 나의 경우에는 내 삶이라는 땅이 송두리째 흔들려 과거에 걸어온 길은 남아있지만, 더는 앞으로 나아갈 길은 없다고 느낀다. 과거에 갇혀있는 기분으로 산다. 앞으로 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갇혀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침대라는 작은 공간에 가둬 사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은 너무나 잘 살고 있다. 자신들의 과오를 잊은 채, 자신들의 잘못을 지나쳐 너무도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상처받은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선택했던 미래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며 결혼하는 것을 꿈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을 겪으며 그 누구보다도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싶었다.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도 남들의 눈에,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내 최대 목표였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모르게 눈길이 가는 사람이었나 보다. 누군가에겐 표적이 되고 누군가에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들에겐 공부도 잘하는데 교우 관계도, 성격도 좋고 학교에서 대회만 열었다 하면, 상장을 휩쓸어 오는 재능 있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평범하기만 하면 안 됐다. 내가 대학에 가기 위해 중요했던 부분 중 하나인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동아리도 들었고 생활기록부를 채우면서 내신과 정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던 평범함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내 할 일만 했을 뿐인데,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은 나를 알고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정수기에 물을 뜨러 복도에 나온 나와 단둘이 장난을 치는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게 힘들었다. 그저 평범하게 남들에게 묻혀서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었는데, 난 그게 되지 않았다. 그건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있는 듯, 없는 듯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그게 잘 안 되었던 건지 모르겠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며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친구들은 같이 담배를 피우러 가자고 했다. 강의실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애들을 피해 혼자서만 교양 과목을 들을 정도였다. 난 항상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높은 기대에 나는 취업 앞에서 절망했다. 그리고 우울증은 점점 심해지며 대인기피증 역시 심해졌다. 날 보던 당시 내 애인은 내게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 빛나는 동아줄을 덥석 잡았다. 누구보다 평범하고 싶었던 내가, 누구보다 평범하지 못해서 사회생활을 잘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는 항상 잡음이 발생했다. 매사 조심하며 노력하고 베풀어도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프리랜서로 살겠다는 나에게 당연히 엄마와 아빠는 나의 앞날을 비난했다. 그때 이미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 없이, 그저 부모님의 집에서만 살았을 뿐인데도 날 비난했다. 이미 나는 부모님의 경제적 틀 안에서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 비난은 퍽 거칠고 차갑고 매서웠다. 그래서 내게는 지금 나의 앞길이 보이지 않는 땅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