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건 올인원

뭐든지 닦아 드립니다

by 파슈하

"미니멀리스트라면서, 그런 걸 사요?"

신혼 때만 해도 우리 집 욕실장은 참 알록달록했다. 친정이나 시댁에서 '아직 박스도 안 뜯은' 새 수건들을 한 아름 받아다 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결혼식, 누군가의 돌, 누군가의 회갑연... 솔직히 수건에 쓰여 있는 이름의 주인공이 누구신지, 무슨 사연을 갖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덕분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세안과 샤워를 해결했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쯤, 나는 그 수건들을 전부 버리고 새 수건을 구입하기로 했다. 매일 쓰는 물건이니 만큼, 두께며 재질이며 색깔까지 우리 가족의 취향대로 골라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수건을 쓸 때마다 기분이 좋았으면 했다.


미니멀라이프는 '무조건 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물건을 하나 고를 때에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수건 같은 생필품의 경우에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두고 쓸 때마다 기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용도로 활약해 주면야,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그냥저냥 쓰는 생필품'으로 보일 수도 있는 수건을 싹, 새로 마련했다. 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수건이 이번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녀석 덕분에 욕실의 물 때가 사라지고, 청소 루틴이 담백해지고, 세탁실이 텅 비어 있을 수 있다면 믿겨지시는지.





우리 집 수건의 하루는 조금 늦게 시작한다. 오후 3시쯤, 손의 물기를 닦아내는 것이 그 녀석의 첫 번째 일과다. 손을 닦은 다음에는 얼굴을, 그다음엔 샤워한 몸을 닦아낸다. 가끔 목욕용 큰 타월을 쓰는 집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여느 집과 다르지 않게 보통사이즈 세안 타월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발도 아까 그 수건으로 닦는다. 덕분에 욕실 발매트를 치울 수 있었다. 화장실은 되도록 건식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보통 때에는 발매트가 필요하지 않다. 발매트를 쓰던 시절에는 따로 세탁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청소기 돌릴 때마다 허리를 굽히는 것도 참 불편했다. 무엇보다 로봇청소기와 서로 으르렁대며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꼴을 보는 것도 참 고역이었다. 그래서 그냥 없앴다. 대신 '적당히 쓴 타월로 깨끗하게 씻은 발을 닦는 것'으로 대체했다. 간단하고 좋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살짝 축축해진 수건은 바로 거울 청소로 재출근한다. 물기 머금은 수건과 거울의 궁합이 꽤 좋은 걸 알고 계시는지? 거울을 닦고 난 뒤엔 물방울이 튄 수전과 세면대를 닦는다. 이 1분도 안 되는 짧은 습관은 물자국 없는 욕실을 만들어낸다.


이 작은 '닦는 행위'가 쌓이면, 욕실 대청소 주기가 늘어나는 기적을 낳는다. 물때가 생기기 전에 지워버리니 독한 세제와 빳빳한 솔을 들이댈 일이 잘 없다. 덕분에 이전에 썼던 에세이 <치약과 칫솔> 편에서도 밝혔듯, 다 쓴 칫솔과 치약 정도만 있으면 욕실 청소를 해결하는 것이다. 청소용품이 없으니 수납장과 변기옆은 단출하다. 무엇이 없으니 물때가 더 잘 끼지 않는다. 놀라운 선순환이다.



뭐, 욕실을 닦은 수건이 조금 찝찝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세탁기의 힘을 믿는다. 우리 집은 4 식구가 수건 10장을 돌려쓴다. 어차피 옷과 속옷도 갖고 있는 수가 적어서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빨래를 돌려야 한다. 분리세탁은 하지 않는다. 비법은 수건 색깔에 있다. '새하얀 수건'을 포기하고 어둡고 짙은 회색빛의 수건을 구매한 덕분이다. 덕분에 세탁실에는 분리세탁바구니가 없다. 어차피 매일같이 세탁을 하기 때문에, 또 분리세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세탁조 안으로 빨래를 던져 넣는다. (만약 가끔 분리세탁을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소량에 지나지 않으므로 세탁기 위쪽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단, 젖은 수건을 바로 세탁기 속에 구겨 넣으면 문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냄새가 날 수 있으니 주의. 사용한 수건은 세탁기 문쪽이나 세제통에 넓게 펴서 널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얼굴을 닦는 수건으로 발도 닦고 거울까지 닦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 있겠다. "샤워하고 발까지 닦은 수건으로 거울도 닦는다고?" 그렇다. 거꾸로만 하지 않으면 된다. 거울 닦고 다시 얼굴 닦는 것만 안 하면 된다. 순서만 잘 지킨다면 위생 걱정은 붙들어 매도된다. 이렇게 딱 한 번 쓰고 세탁하니까 크게 오염될 틈도 없다. 대신 수건 한 장에 하루를 꽉꽉 눌러 담아 쓰는 것뿐이다.


수건 한 장을 알차게 사용함으로써 청소시간을 줄였고, 세탁부담을 줄였다. 유리세정용 걸레대신에, 발매트 대신에. 이 '대신'들을 모아놓으니 커피 한 잔 더 마시고 책 한 장 더 읽을 시간이 생겼다.

keyword
이전 15화여름신발 올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