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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슈하 Sep 27. 2024

소파를 비우다

미니멀라이프의 시작

내가 미니멀라이프에 빠진 계기를 말하려면, 역시 신혼집의 역사를 아니 말할 수 없겠다.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까지 남은 기간은 단 2달. 그동안 살 집을 구해야 했다. 맛집이나 핫플을 찾아다니던 우리의 데이트는 부동산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임장과 데이트를 동시에! 당시의 나는 타이니하우스(Tiny house)에 굉장히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예산으로 구할 수 있는 집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대해 전혀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작은 집에 내 취향의 물건들을 꽉 채워놓고 살 생각에 살짝 들떠있었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읽었던 나무 위 오두막을 꾸미는 느낌도 들었달까.


물론 좋은 매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핀터레스트에서 보았던 커다랗고 밝은 스튜디오형 원룸을 꿈꾸었지만, 내가 봤던 모든 집들은 꾸역꾸역 방을 2개씩 만들어 놓았으니 어둡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부동산 사장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사는 사람의 편의보다는 그 집을 사고파는 '집주인'들이 방 개수에 집착을 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렇게 작은 방 2개와 작은 거실이 딸린 투룸 신축빌라가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다. 집을 구하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 남편이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보는 게 꿈이라고 하여, 작은 거실에 티비-티비장-소파 삼합을 채워 넣었다. 그러나 남편은 소파에서 야구를 보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으이구.(컴퓨터로 게임하면서 보는 게 더 재밌단다)



전통적이고도 유서 깊은 한국식 가구 사용법에 따라 우리 부부는 소파 위를 활용하기보다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는 편을 좀 더 선호하였는데, 거실이 작다보니 발을 쭉 뻗으면 발끝에 티비장이 닿았다. 발끝에서 이어진 시선을 위로 조금만 올리면 작은 거실에 맞춤으로 들어간 작은 티비장 위로 귀엽고 예쁜 것만으로 존재가치를 증명해 낸 나의 취향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었다. 처음에는 나만의 취향으로 채워 넣은 거실이 마음에 쏙 들었더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좀...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은 2인에서 3인이 되었다. 신혼집 전세 만료 3개월 전이었다. 아하!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라는 계시구만. 그런데 2년 새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세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마상에!! 마침 그 무렵 신혼집을 우리집 근처에 구한다는 회사 후배가 있길래 '대체 이놈의 전세가격'에 대해 한탄하려 했더니만... 잘 모르겠단다. 아니 왜? 했더니, 후배는 매매로 신혼을 시작한다고 했다. 심지어 평수부터가 우리집 두 배였으니 확실히 집값에 대해 논하기에는 좀 차이가 있었달까. 흠.




후배와 비교되는 나의 처지에 눈물이 핑 돌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작은 집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난방을 해도 금방, 냉방을 해도 금방. 청소가 쉬운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살면 곧 태어날 우리 아기는 대체 어디를 기어 다녀야 하는 것일까? 고개를 돌리면 소파, 바로 옆에 티비장. 실수로 발을 헛디뎌 중력을 증명해보기라도 한다면 어느 모서리에 부딪힌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실.


그때,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사사키 후미오의 그 유명한 텅 빈 방을 보게 되었다.


운명이었다.



"소파를 버려야겠어."



어차피 바닥에 앉아 지내는데. 소파를 치운다면 우리 아기가 기어 다닐 거실은 두 배로 넓힐 수 있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이다! (물론 '한 푼'이라고 하기엔 용달비 정도는 필요했지만 거실을 두 배 넓히는 집값에 비한다면 이 정도는 수사적 표현으로 사용했음을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 주시길 바란다)



전세난은 이사 시기를 자꾸만 늦춰놓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육아휴직 시기에 맞춰 남편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바뀌니 조금 더 넓은 도시형 주택을 신혼집과 비슷한 전세 가격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예고했던 대로 이사 간 집 거실에 소파는 들고 가지 않았다. 소파 하나 치웠을 뿐인데, 집이 대번에 넓어졌다. 사사키 후미오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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