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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슈하 Oct 25. 2024

성장앨범계약을 비우다

대신 최신 스마트폰으로 교체했다

나와 남편은 조금 희한한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둘 다 팥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이 사소한 것 말이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팥이 싫어서 팥빙수를 포기하는 식이다. 살면서 팥 싫어하는 사람 별로 못 봤는데 그중 하나가 남편이었... 아니, 단정하기엔 이르긴 하다. "팥 좋아하세요?"는 좋은 안부질문으로는 부적격인 탓에 실제로 내 주변사람들의 팥 선호도를 전부 물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일단 내지인 중에 팥 싫어하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또 다른 공통점은 사진 찍히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내 취향을 대학교 졸업앨범 찍을 때 명백히 확신했다. 메이크업을 받고 헤어를 손보는데 공주놀이하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 아니라 귀찮음, 번거로움, 피곤함이 느껴졌다. 학사모 사진을 찍으면서 다짐했했다. 난 웨딩촬영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남편이야 뭐. 쌍수 들고 환영했다. (신혼여행 스냅사진만 남겼다)



사정이 이러하니, 조리원 계약 무료혜택으로 하는 만삭촬영도 할 리 만무했다. 사실 무료니까 한 번 찍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무료'라는 글자 뒤로 <백일 사진과 돌 사진과 성장앨범 홍보를 건너뛰기 없이 다 들어야 함>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다. 우리 부부는 둘 다 흥정에 취약하다. 시장 가서 천 원 깎아달란 말도 못 하는 사람들인데 과연 거기서 도장 안 찍고 잘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강요나 의무는 없겠지만 어차피 기념사진 찍을 생각이 요만큼도 없는데 잠깐이라도 불편한 느낌을 갖는 게 싫었다. 바쁜 작가님들 시간 빼앗느니 그냥 사진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배 나온 시절의 사진은 한 장은 남겨놔야 할 것 같아서 제주도 놀러 갔을 때 남편이 전신사진을 찍어줬는데 아뿔싸. 입고 간 까만 원피스의 몸매 보정능력이 어찌나 뛰어나던지 배 나온 게 전혀 보이질 않았다. 신혼여행사진과 진배없는 몸매를 보여준 사진을 보고 우하하 이게 뭐야, 박장대소하고 만삭 촬영은 그냥 그대로 접었다.


우리 아기도 부부를 닮은 걸까? 입체초음파 확인하는 날에 아기는 옆얼굴 이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야 얼굴 한 번만 보자~" 입체초음파 기념촬영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선생님이 초음파 기계를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았지만 아이는 사춘기 쎄게 온 아들처럼 고개만 훽 돌릴 뿐이었다. 오호라, 너도 사진 촬영이 별로 탐탁지 않은 것이렷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과 나는 벌써 아기와의 공통점을 찾아냈다고 좋아라 했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겪어보진 않았지만, 육아 선배들의 하나같은 증언이 있었다) 아기의 모습을 그냥 흘려보낼 순 없었기에 아기 얼굴 사진만큼은 매일 남기기로 했다. 이것을 위해 출산 전 최신 스마트폰으로 교체도 했다. 매일 저녁 아기의 얼굴사진에 디데이와 날짜, 그날 아기가 먹은 것이나 컨디션을 짧게 기록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2.9MB의 사진 한 장에 전부 녹여 담아냈다. 아기가 하루종일 우는 날이면 우는 사진이 들어갔다. 웬일로 잠을 푹 잔 날이면 잠자고 있는 사진이 들어갔다. 그렇게 날 것 그대로의 진짜 성장앨범을 셀프로 만들어냈다.


100일 촬영 역시 집에서 촬영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진을 찍기 위해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했다는 것이다. 사진 찍을 때 배경으로 쓸 현수막, 가랜드 같은 소품만 빌려서 할머니와 한 컷, 할아버지와 한 컷 찍어서 부모님께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사진 촬영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울면 우는 대로, 웃으면 웃는 대로 촬영이 진행되었으니 오래 걸릴 일이 없었다. 100일 잔치 피로연은 숯불에 기름 잔뜩 튀는 고기를 너무 먹고 싶어 했던 나의 강력한 의지로 집 앞 오리고깃집에서 진행했다. 아기는 식사가 시작할 무렵 낮잠에 들기 시작하더니 식사가 끝날 무렵 일어났다. 우엥 소리도 없는 아주 부드러운 기상이었다. 효자네, 효자야. 돌림노래 같은 어른들의 한마디로 100일 잔치는 이것으로 끝.



아기가 태어나서부터 딱 1살 생일이 되기 전날까지의 사진을 매일매일 찍고 편집했다. 아이가 한 살 생일을 맞기 전까지 매일 일어났던 일들의 파편을 모으고 모아 사진 한 장 한 장에 꼭꼭 눌러 담았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매일 얼굴이 달라지는 것에 놀라워한다. 특히나 귀여웠던 어느 날과 특히나 못나게 생겼던 어느 날, 진짜 아이가 입었던 옷과 진짜 아이가 방문하고 생활했던 곳이 모두 여기에 녹아있다. 비록 사진관에서 전문가가 찍어준 것보다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뭐 어때. 엄마인 내가 만족하면 되었다.


탄생에서 1주, 탯줄탈락까지(탯줄도 사진으로 남기고 버렸다)
집으로 온 뒤의 첫 쪽쪽이, 남들과는 다른 50일 사진
이제 조금 적응되는 생활. 웃으면 웃는대로 울면 우는대로. 100일 사진은 탄생한 시간에 딱 맞춰서 촬영해보았다. 집촬영이라 가능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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