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직 출산휴가시작까지는 두어 달이 남아있었다. 회사에서 신혼집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약 2시간 정도 거리. 이사는 일단 진행하고, 나는 친정집에서 2달간 회사를 다니기로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가 결혼하고, 아버지는 30평대 집에서 혼자 사셨으므로 작은 방 하나 정도는 내 맘대로 쓸 수 있었다. 그 방에는 작은 신혼집에 미처 갖다 놓지 못한 책들과 겨울 옷 몇 벌, 그리고 굳이 가져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전공서적이나 일기장 같은 추억의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때 마침 친정집도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신혼집 정리로 한창 정리정돈에 재미를 붙였던 나는, 혼자 사시는데 불구하고 이사견적 6톤이 나온 아빠에게 "5톤 이사 성공하게 해 주겠다"며 <이사 전 비우기>에 돌입했다. 부엌에서 낡은 반찬통을 비워내고, 세탁하지도 걸지도 않아 먼지만 뽀얗게 쌓인 커튼도 버렸다. 짝이 맞지 않은 자투리 가구들도 전부 비워냈다.
그리고 내 방으로 돌아와 잔뜩 쌓여있던 내 책들과 시디들을 중고서점에 팔았다. 정말 아끼는 책들은 결혼하면서 모두 신혼집으로 들고 갔으므로, 남은 책들은 2년 반 동안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라딘에 110여 권, 예스 24사에 20여 권을 보냈다. 수입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게 충격이었다. 두 번의 겨울을 지나면서 입지도 찾지도 않은 패딩들은 전부 조카에게 나누어주었다. 겨울 옷 밑으로 모아두었던 예쁜 새 노트와 새 다이어리들도 한 무더기가 나와서 그것도 함께 보냈다. 갓 초등학교 졸업한 여자 조카들이었으니, 요긴하게 썼을 거라 믿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모으던 스티커들은 정이 들어서 비워내진 못했다. 대신 뚱뚱한 파일에서 빼내어 예쁜 종이상자에 모아봤더니 부피가 확 줄어서 제법 흡족했다. 그 박스는 두 번째 신혼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잘 챙겨두었다. 결혼 전, 제대로 된 옷장이나 행거 대신 구입한 싸구려 플라스틱 서랍장은 동네 카페에 나눔으로 올려 치웠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서, 일기장이 나왔다.
오... 이건 어떡하지.
나의 일기장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첫째, 초등학교에서 썼던 일기장. 초등학교 2학년 때 썼던 앞부분은 학교 숙제를 겸하는 용도의 일기장이었다. 네모난 칸에 쓰여있는 글자가 제법 반듯반듯했다. 유행가 후렴구 마냥 '재미있는/보람찬/신나는 하루였다'로 끝맺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그 일기를 읽고 있는 내가 재미있고 보람차고 신나지 않았다. 당시 외동이었던 나는 유치원 졸업 무렵 같은 단지 안의 동갑내기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엄마들끼리도 친해져서 서로의 집에도 자주 왔다 갔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2 때부터 초6 때까지 일기장 전부에 그 친구 이야기가 없는 권이 없었다. 그런데.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나와 달리 예쁘고 자신감 넘치고 공부 잘했던 그 친구는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나를 잊었다. 내 세상과 그 친구의 세상을 분리하는 게 13살 인상 최대의 고비였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성인이 돼서 엄마가 병원에 길게 입원해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병실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실 그 집 엄마가 우리 집을 은근히 깔보는 게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서 참았다는 이야기마저 들었었다. 그때의 배신감이란!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나빠서 안 되겠다. 버려.
두 번째, 그 질풍노도 중고등학생 시절의 일기장. 인생의 고뇌와 엄마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이다. 우리 엄마는 인자하고 상냥한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10개 중에 9개를 맞고 하나를 틀리면 그 틀린 것 하나에 집착하는 타입이었다. 엄마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무렵 외할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셔서 가세는 기울었고, 하나뿐인 아들(외삼촌)마저 자기 살 길을 스스로 찾아야 했으니 공부에 대한 한이 오죽했을꼬. 그런데 그게 21세기의 여중생에게 통할 리가 없다는 게 문제. 찬찬히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데 그때 걱정했던 것들은 모두 해소가 되었고, 그때 품었던 의문들은 거의 다 해소는 되었다. 나 제법 멋지게 컸잖아? 하지만 볼 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한 모습에 벌벌 떠는 과거의 내가 불쌍해서 안 되겠다. 버려.
세 번째, 대학생 시절의 일기장. 이 때는 '일기장'보다는 '다이어리'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내가 대학생을 지내던 그 시절은 그야말로 <대 다이어리 시대>였다. 다꾸라는 말이 슬슬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으니. 그래서인지 만원이 넘는, 페이지마다 일러스트가 다 다르게 들어간 다이어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이어리를 조금 쓰고 새 다이어리를 자꾸 사들였다는 게 문제다. 일러스트가 예뻐서 사서 쓰다가, 무거워서 안 되겠다, 얇은 다이어리로 바꾸어 쓰다가, 밋밋해서 안 되겠다, 다시 그림 예쁜 거 사서 쓰고... 이건 뭐 쓴 페이지보다 안 쓴 페이지가 더 많다. 2학년 때인가, 일본어 연습하겠다고 일어로 6개월간 꾸준히 썼던 게 유일하게 '성실해 보이는' 부분이었으나, 구 남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참고로 남편은 일본어 능력자. 이건 누가 보면 안 된다. 버려.
일기장을 버리는 데 있어서 고민이 안되었냐 물으면 사실 그건 또 아니다. 하지만 읽어 괴롭고, 불편하고, 들킬까 봐 불안한 것들을 굳이 갖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자문한다면 그것의 대답은 확실히 '아니요'였다. 지금까지도 들추어보지 않은 일기장인데, 앞으로도 이 종이 쪼가리들을 열어볼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가 훗날 성인이 되어 방정리를 하다가 엄마의 낡은 유품을 들춰보는 상상을 하면... 와... 목 뒤의 솜털이 바짝 섰다.
나는 과거를 비우고 그 자리에 현재와 미래를 채워 넣기로 했다. 아주 기가 막히고 반짝이는 것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