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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뇌가 한다 03

개념이란 무엇일까?

지식의 네트워크

지난 글(https://brunch.co.kr/@96d4929c76b8441/15)에서 “공부 =역량 × 인출”의 공식 중에서 ‘인출’ 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시험 상황에서 쉽게 인출할 수 있는 임시적인 기억은 해마에서 빠르게 형성되고 또한 그 때문에 쉽게 망각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해마 중심 기억의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뇌는 영리하게도 임시적인 정보를 ‘신피질’이란 안정적인 장기 기억 시스템에 저장합니다.

“공부 =역량 × 인출”의 공식에서 아직 다루지 않은, ‘역량’이라는 것은 실은 이 신피질에 안정적인 형태로 저장된 지식의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수많은 인지 심리학자, 뇌과학자들은 이 지식의 네트워크가 학습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깊은 사고력의 원천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피질에 저장된 지식의 네트워크가 공부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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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개념 충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식의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흔히 쓰는 ‘개념’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고 싶습니다. 모든 공부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개념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정작 개념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개념 공부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가 처음 회사에 입사를 한 그때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온갖 고생을 해서 들어간 회사인데, 막상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분명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업무에 대한 교육을 받긴 했는데, 막상 언제까지 일을 해오라는 오더를 받고 나니 머리가 캄캄해집니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돌아다니지만, 어떤 순서로 일을 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밤을 새워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렸지만, 상사는 눈으로 이미 욕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 없는 놈을 어떻게 사람을 만들지?" 자, 여기서 말하는 개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의 아내, 백종원, 그리고 스티브 잡스

저는 쇼핑을 싫어합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백화점에 가면 조급한 사냥꾼의 마음이 되어서, "바지, 바지를 찾자"라는 마음으로 10분 컷으로 쇼핑을 마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백화점의 구조가 마음에 잘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남성의류가 여성의류 보다 윗층인지 아랫층인지 헷갈립니다 (찾아보니 윗층이군요). 에스컬레이터와 엘레베이터의 위치도 예측하기 힘들어, 층을 몇번 돌아야 탈출이 가능해지곤 합니다. 반면 제 와이프를 보면 놀랍도록 백화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처음보는 백화점에서도 척척 길을 찾아내고, 어떤 물건이 몇층에 있을지 잘 예측합니다.

요새 논란이 많은 분이긴 하지만, 저는 백종원 씨의 요리 연구가로서의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이 분이 음식이라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보면 인지신경심리학자로서 음미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요리의 레시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개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언젠가 백종원 씨가 된장 소스로 파스타를 만드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장으로 파스타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일단 이 분은 "파스타"라는 하나의 대상을 그것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나눕니다. 일단 파스타는 면과 소스로 나뉘죠. 면은 알다시피 탄수화물이 제공하는 특유의 단맛과 혈당에 기반한 만족감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소스는 탄수화물에는 부족한 "감칠맛"이라는 요소를 담당합니다. 오리지널 레시피에선 주로 토마토가 그 역할을 맡습니다. 다시 말해 "파스타 = 탄수화물 + 감칠맛"이라고 분해가 됩니다. 이러한 식의 정보처리 방법은 지식의 유연성을 극대화 합니다. 예를 들어, "파스타 = 스파게티면 + 토마토소스"로 이해하면, 해당 정보를 변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요리 초보들의 사고 패턴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 토마토소스가 없으면 요리를 포기하죠). 하지만 토마토소스를 "감칠맛" 역할을 하는 재료 중 하나로 이해하면,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해집니다. 된장도 감칠맛을 담당하는 한식의 주연 배우죠. "감칠맛 항"에 토마토소스 대신 된장이 들어가서 안 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백종원 씨의 예를 고찰하면, "개념"이라는 것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단 개념이란 어떠한 대상(파스타)을 그것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나누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파스타 = 탄수화물 + 감칠맛"). 그리고 이 요소들 사이의 (통계적) 관계를 파악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관계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과정 모두 "개념"이라는 것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개념적 지식을 (구성요소 + 관계적 지식), 인지심리학에서는 좀 더 멋진 용어로 스키마(schema)라고 부릅니다. 둘러보면, 주위에 어느 한 분야에 전문적인 능력을 지닌 분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조직된" 개념적 지식(스키마)를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혹시 들어보셨나요?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구성 요소로 촘촘히 구성되었고, 이들 요소들 사이의 연결이 한없이 잘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발달되고 조직화된 개념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백종원 씨는 요리에 대해, 저의 아내는 백화점에 대해 잘 조직된 개념적 지식을 갖고 있죠.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신입사원이 부족했던 점 역시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일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들,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에 대한 지식이 전문성, 혹은 탁월성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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