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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정신(26)

전남일보 김동수의 나눔톡톡 제 26화

by 김동수

연대는 함께하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 공통의 목표와 어려움을 나누며 협력하는 집단적 행위다. 정치·경제·사회·인도적 이슈 앞에서 개인이 아닌 ‘우리’로 맞서는 힘, 그것이 연대의 본질이다.


우리 현대사는 연대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전 국민이 금을 모아 위기를 넘겼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이 온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또한 연대의 힘으로 권위주의를 무너뜨렸다.


이후 촛불혁명은 무능한 정권을 심판했고,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때 국회의사당으로 몰려든 시민들의 연대는 다시금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특히 1980년 5월 광주는 연대의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처절한 탄압 속에서도 시민들은 헌혈과 주먹밥, 성금과 물품으로 시민군을 도왔다.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옛 광주적십자병원 앞에는 수많은 시민이 줄을 서며 팔을 걷어붙였다. 생명을 살리려는 헌혈 행렬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준 숭고한 연대의 모습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제11호인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2020년 광주시 매입 이후 활용 방안을 두고 표류했으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배경지로 알려지며 올해 한 달간 임시 개방돼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필자 역시 그곳에서 ‘일일 명예 해설사’가 되어 방문객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적십자사가 제작한 영상 ‘5·18 헌혈로 이룬 연대’를 상영한 바 있다. 이후 헌혈 릴레이, 시민 강좌, 오월어머니집 역사교육을 이어오며 시민들이 보여준 나눔과 연대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연대는 국경을 넘어선다. 기후 위기, 전쟁, 재난 같은 전 지구적 문제 앞에서 인류는 더 이상 홀로 설 수 없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해는 인류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 거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해답은 바로 연대의 정신이다.


그렇기에 옛 광주적십자병원의 활용은 시대정신을 계승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최근 광주시는 이곳을 1층은 생명·나눔 공간, 2·3층은 AI 헬스케어 실증센터로 조성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위원회는 “적십자병원과 AI를 연결 짓는 전달력이 부족하다”며 재논의하기로 했다.


이는 시민들이 더 직접적으로 연대의 정신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을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이에 필자는 이곳에 연대의 정신을 확산하는 ‘나눔문화센터’ 설립을 제안한다.


우선 교육·연구 공간을 마련해 5·18 시민정신과 관련된 스토리를 발굴하고 학술 연구와 시민교육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또한 체험 학습 공간에서는 헌혈이나 주먹밥 만들기, ESG 봉사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시민들이 직접 나눔과 연대를 경험하도록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모금·캠페인 공간에서는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조성된 기부금으로 유공자 후손 돕기나 장학사업을 펼칠 수 있다.


결국 이 같은 프로그램이 얼마나 폭넓게 확산되느냐에 따라 이곳은 단순한 역사 공간을 넘어 5·18 시민정신을 계승하는 핵심 거점이자, 광주를 ‘나눔문화도시’로 도약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1859년 이탈리아 솔페리노 전투에서 마을 부녀자들의 인도주의 활동이 오늘날 범세계적 적십자 운동으로 확산된 것처럼, 1980년 5월 광주시민의 연대 또한 인류적 가치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럴 때 옛 적십자병원은 역사의 흔적을 넘어,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는 연대의 성지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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