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by 이지원

사람의 품과 손길이, 못 견디도록 그리워.

부를 이름이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 것도 꽤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입에서 머무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뱉지 못했는데, 적어도 지금의 나는 사람의 품에 기대어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몸을 반으로 가르면, 그 반쪽이 위로를 전해 줄까. 사람 한 명이 눕기에도 비좁은 침대에 꼭 닮은 사람 둘이 몸을 욱여넣고 기대어 있으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까. 아직 해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팔을 내려다보았다. 검게 탄 살갗이 싫었다. 그럼에도 반소매가 덮었던 부분만은 희게 도드라져 낯설다.


천장을 보고 다시 눕는다. 그리고 의식의 건너편에서 몇 번이나 나를 반으로 가른다. 비좁은 침대의 틈에서 새로운 내가 태어나 나를 끌어안는 상상을 한다. 허리를 안은 손, 타지 않은 팔과 온기를 생각한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았을 몸에, 내가 사랑하는 꽃과 풀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 이대로 덩굴처럼 아무렇게나 뒤얽혀 있어도 사람들은 우리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 거야. 살갗이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전부 풀과 꽃에 잡아먹히게 하고 싶어. 마음 곳곳에 남아있을 굵은 흉터마저도 숲의 일부처럼 보이게.

아무도 해치지 못하게.



새벽에는 산책이라도 할 생각으로 서늘한 땅에 발을 놓았다. 빗물을 머금은 바람이 바지 아래로 드러난 발목을 휘어잡았다. 조금 더 긴 양말을 신고 나올걸, 하는 후회를 삼킬 뿐이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긴 꼬리를 그리며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사람이 모여 있었고,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몇 개의 눈들과 마주했다. 가로등의 불빛마저도 닿지 않는 곳에 모여 선 사람들은 마치 맹수와 비슷한 눈을 하고 있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깨를 떨고, 몇 번이나 발이 꼬인 다음에야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풀과 꽃에 잡아먹히고야 말겠다고 결심한다.


달이 닿지 않는 곳만을 딛겠다고 약속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새벽의 어둠에 날것으로 던져질 만큼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입안에서 녹아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른다.


자그마한 방에 들어와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하늘과 산, 튀어나갈 듯 팽팽하게 몸을 늘린 채로 날카로운 손을 뻗어내던 나무들이 보였다. 그 아래에 자리를 잡았던 수많은 맹수들의 눈을 떠올렸다. 가슴이 짓눌려, 갈 곳을 잃은 왼손은 시트를 짓뭉개기 시작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한 번 더 반으로 가른다.

어김없이 자라난 내가 진득하게 옮겨 붙는다.

사람의 것이 분명한 숨과 체온이, 온몸에 흩뿌려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곰팡이의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