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기쁨

by 이지원

평온한 일상에서 기쁨을 느꼈다.

새 약을 먹은 상태라서 지금은 그저 행복하다. 구름이 덮어 하얗게 물든 하늘이 싫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좋은 일은 없었지만 한껏 미소를 지었다. 발끝에 힘이 들어가 단단하게 말렸다. 기쁨 사이에서, 어제 다녀온 정신과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얀 테이블, 네모난 갑 티슈를 사이에 두고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라는 따뜻한 말씀에 나는 근황을 쭉 늘어놓았다. 시도하려 했지만 좌절되었던 것들, 돈에 대한 강박, 우울과 불안.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검사 결과를 좀 볼게요.... 지원 씨는 속에 품고 있는 우울과 공격성이 아주 높네요. 지금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 우울이에요. 또 다중지능 중 언어 지능은 아주 높은데, 나머지 지능들은 거의 경계선에 걸쳐 있어요. 처리 속도도 아주 느리고,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네요. 이건 치료 중인 지금만 그런 거라서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요."


잠깐의 침묵 뒤에 다시 말씀이 이어졌다.


"특히 대인관계 측면에서는, 사람 사이에서 보내는 시그널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이 사람은 그저 지원 씨를 바라본 것일 뿐인데 지원 씨는 '왜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보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기억을 자꾸 잃는 것도 지원 씨가 감정을 억누르는 데 너무 익숙하다 보니 한계에 달해서 결국 잊어버리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요. 이제는 비약물적인 방법도 활용해서 치료하는 게 좋겠어요. 지금 받고 계신 심리 상담, 계속 꾸준히 받으세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말 못 할 감정을 조금씩 털어놓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라는 선생님의 충고를 마지막으로 진료는 끝이 났다. 그 덕에 좀 더 객관적으로 나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다.


'고생이 많았네.'


진료실을 나오며 마음속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았다.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한기가 누그러졌다.

우울이 심하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께서는 약을 바꿔 주셨다. 렉사프로 5mg, 아빌리파이 1mg.

새 약은 나에게 생생한 행복을 안겨 주었다. 좀 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직 먼 길을 가야 하지만,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에 이제는 무섭지 않다. 이번 약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기쁨 기록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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