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도롱뇽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도룡용? 도룡뇽? 도롱용?
도롱뇽이닷
지금도 쓰다 보니 헷갈린다.
그러나 무엇이면 어떤가. 나는 양서류나 파충류 따위는 질색이다.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내가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왜 저 따위들과 전쟁을 벌이는 거지?
어느 날 한 무리의 지능이 높은 도롱뇽 무리가 발견되었다. 조개껍질을 까지 못해 조갯살을 먹지 못하는 도롱뇽과 진주를 품은 조개가 없어 보석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욕구가 절묘하게 만나 서로의 필요를 해결해 주며 아름다운 거래가 성사되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진주 조개가 있는 섬으로 도롱뇽을 이주시키기 시작했고, 도롱뇽의 존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도롱뇽의 활동 범위는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능이 높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도롱뇽의 쓸모는 하찮은(?) 진주 획득 따위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여 많은 곳에 사용될 수 있는 도롱뇽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은 산업화로 경제적 부흥을 일으키기 시작한 인류에게 점점 더 많은 편리와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각국 지도자와 경제 주체들은 앞 다투어 도롱뇽을 다양한 분야에 투입하기 시작했고 번식력이 뛰어난 이 양서류의 개체수는 인류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정된 자원과 생존 앞에 양보할 수 없는 두 존재의 결론이 전쟁임은 예정된 결과였다. 특이점이 넘어가자 유토피아는 순식간에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하지만 1936년도에 쓰인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스토리 때문만이 아니다. 도롱뇽을 대하고 사용하고 협력하는 국가와 개인, 기업과 학자 등 각 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 가치관, 민족관, 경제적 이해관계들이 서로 충돌하고 어우러지는 현상을 다채로운 도구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운 이 책의 백미다.
이런 인간 군상에 대한 다양한 묘사와 표현 방식은 너무 흥미롭다. 신문기사, 논평, 출판 단행본, 포고문, 재판송사자료, 학계논문, 회의록, 개인의 회고등 여러 형식의 문장을 일부 발췌하는 방법으로 부록에 삽입했다. 때문에 도롱뇽에 대한 사회 현상과 이해관자들의 입장을 다채롭게 다룰 수가 있었다. 소설이지만 아주 다양한 글쓰기 형식을 만나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이 당시의 국제정세와 세계흐름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책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식민지와 노예제처럼 도롱뇽을 지배해 가는 인간의 잔혹함, 급격한 기술발전 사회와 자본중심주의적 사고방식, 인종주의와 전체주의 등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폭력과 본성이 잘 드러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추측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이다'라고 서문에서 밝힌 만큼 당시 시대상을 잘 이야기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1936년의 도롱뇽이 2025년 오늘도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스멀스멀 가장 편리하고 순종적인 얼굴로,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인간의 실존을 장악해 가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도롱뇽이다. 100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을 꿰뚫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저자의 천재적 통찰력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반복된 어리석음과 미련함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우리의 편리하고 위대한 유토피아가 절망과 파괴의 디스토피아로 뒤 바뀌기 전에 현명한 우리의 통제와 선택이 더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음을 기억하며 만용과 오용과 교만의 생각을 경계해야겠다.
#카렐차페크
#소설
#유토피아와디스토피아의경계
#인간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