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고대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고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인'들은
풍요와 안정을 얻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신에게 불태워 바치는 제사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희생하기까지,
그것을 신에게 드리는 헌신이라 여겼다.
"이 아이를 바치면 우리 가족이 잘될 거야."
"이 아이 덕분에 어려움을 피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마음속 불안과 이기심을 채우려는 행동이었다.
이 이야기는 먼 옛날의 끔찍한 일 같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 마음속 불편한 진실
부모는 불안하다.
내가 힘들어도 아이만큼은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의 시간과 마음을 꽉 채우고,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이게 정말 자녀를 위한 걸까?
사실은 내 불안과 욕심을 달래기 위해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애쓰는 만큼,
내가 희생하는 만큼,
아이도 성공해야 해."
이 마음이
겉으로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우리의 이기심일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마다 각자의 삶이 있다.
내 불안과 욕심으로 아이를 옭아매면,
아이의 숨통도 점점 조여 온다.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길이 있고,
스스로 선택하고 걸어가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편하려고,
내가 만족하려고,
내가 자랑하려고
아이를 내 마음대로 바꾸려 하지 마라.
진짜 사랑은,
놓아주는 용기
진짜 사랑은
내 욕심과 불안을 내려놓고 아이를 믿는 데서 시작된다.
조금은 놓아줘야, 아이도 숨 쉬고 자유롭게 자랄 수 있다.
내가 통제하려고 애쓸수록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더 멀어지고
둘 다 힘들어질 뿐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이건 전부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를 위해 자녀를 붙잡은 적은 없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야 할 한 사람이다.
자녀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내 마음부터 살피고
아이가 자신답게 살아가도록 한 걸음 멀리서 지켜보며,
믿고 놓아주는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