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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기 Sep 20. 2024

운명의 힘

  운명은 마치 거대한 물살처럼 우리의 삶을 좌우하며 흘러간다고들 한다. 그 힘은 지구의 중력처럼 강력하여, 사람들을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기도 하고, 때론 밀어내며 갈등과 충돌을 일으킨다. 운명의 실타래는 인연이라는 형태로 서로 얽히고 설켜 있으며, 마치 인간 세계에서 사람들의 공감력이 서로를 이어주듯이, 때가 되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보이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작용해, 때로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연은 병원에서 일하며 점차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고되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긴급한 상황들 속에서 그녀의 몸과 마음은 점차 지쳐갔다. 하지만 가연은 그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아 견디며, 스스로를 다독이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의 일상에 불쑥 찾아온 운명적인 사건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 사건은 평화로운 일상 속이 아닌, 긴박한 상황 속에서 폭풍처럼 찾아왔다.

  

  그날 저녁, 가연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스타벅스 앞을 지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별다른 생각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갓길에 올랐던 그녀는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갑작스레 그녀의 시야에 한 여성이 무언가에 쫓기듯 쓰러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사람 살려요!"

여성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밤거리를 가로질러 길게 울려 퍼졌다. 가연은 망설임 없이 본능적으로 그 여성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나 이웃이 곤경에 처하면 망설임 없이 돕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쓰러진 여성 곁에 다다른 가연은 조심스럽게 부축하며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괜찮으세요?"

가연의 목소리에 여성은 힘겹게 눈을 뜨려 했으나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 여성은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가연은 이내 그가 제일그룹 회장 부인 최원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최원심은 어떤 강도의 습격을 받아 도로 쪽으로 넘어지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친 상태였다. 그녀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가연은 곧바로 최원심을 지탱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몸을 던져 그를 보호하려던 그녀 역시 작은 부상을 입었으나, 최원심의 상태가 훨씬 위중해 보였기에 자신보다는 그녀를 먼저 신경 썼다. 가연은 침착하게 119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인 나라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권유했다. 병원에 도착한 최원심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며, 가연은 보호자를 대신하여 응급실 입원 절차를 처리했다.

  의료진은 최원심의 상태를 확인한 후 뇌출혈 증상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즉시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병원장과 의료진들은 긴급히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이분이 제일그룹 회장 부인 최원심 사모님이라니어떻게 이런 일이?!"

병원장은 놀란 얼굴로 가연에게 상황을 물었고, 가연은 차분하게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그제야 모두가 최원심을 구한 사람이 다름 아닌 가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원 내에는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고, 의료진은 곧바로 최원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장시간의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이 한창 진행될 무렵, 제일그룹 정영국 회장과 그의 아들 정태주가 병원에 도착했다. 정 회장과 정태주는 어머니의 생명을 구해준 가연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특히 정태주는 가연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녀의 결단력과 용기에 경의를 표했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최원심의 상태는 여전히 위중하여 의식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다행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조치가 빨리 취해져 위험한 상황은 피했지만, 가연은 여전히 환자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정태주는 가연에게 어머니를 계속 잘 돌봐줄 것을 부탁했고, 가연은 그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가연이 이끈 최원심의 구조는 제일그룹 가족과 그녀의 운명을 엮어 놓았다. 그녀는 자신이 거대한 흐름 속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는 큰 강의 물이 흘러 협곡을 만나 부딪혀서 형성되는 거센 소용돌이를 떠올렸다거대한 흐름 속에 휘말린 소용돌이는 무서웠다느닷없이 닥친 인생 속 소용돌이는 더욱 무섭다잔잔한 호수 같았던 자신의 삶을 마구 휘젓기 때문이다그러나 가연은 자신이 만난 이 소용돌이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그 힘과 성질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소용돌이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운명을 가연은 직면한 것이다이제 그녀는 알았다이 거대한 흐름은 단순히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것이 아니라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나라병원은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그곳의 병원장인 박영심 원장은 경영 능력과 노련한 카리스마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 원장은 병원의 관리뿐 아니라 그곳에서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병원장실에서 자주 바이오메디칼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고, 자신의 권위 아래 병원이 최첨단 의료 기술을 도입하여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녀의 남편, 장한국 박사는 병원의 의사이자, 최근엔 이 프로젝트의 주요 담당자로 활동을 겸하고 있어 병원 진료업무와 겹쳐 바쁜 상황이었다. 이들 부부는 사업적인 목표를 위해 병원의 확장을 모색하면서도, 사회적 지위와 권력에 대해 강한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특실에 누워 있는 제일그룹 회장의 부인 최원심을 향해 병실 문을 살며시 연 박 원장은 중년의 날카로운 눈빛과 세련된 자세로 병실 안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환자 침대 옆에 서서 잠시 동안 침묵한 채로 최원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속삭이듯 찾아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서 일어나셔야지요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그녀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번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제일그룹 회장의 부인이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병원의 명성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녀는 이내 자신의 곁에 있던 한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일그룹 회장 부인 전담 간호사로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리고 진료카드 가져다주세요."

  한 간호사는 곧장 고개를 숙여 응답한 뒤 빠르게 병실을 나가며, 중요한 임무를 맡은 것에 대한 긴장과 책임감을 느꼈다. 박 원장은 병실의 문을 다시 조용히 닫고, 병원의 통로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발걸음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이 병원 안에서는 생명과 사투를 벌이는 여러 환자들로 인해 항상 활기가 넘쳤고,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때 최원심을 간호하던 가연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가연은 과거 학창 시절에 미의 여왕으로 뽑힐 만큼 아름다운 외모로 눈에 띄었고, 서구적인 큰 눈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가늘고 날씬한 몸매로 주변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가 돋보이는 것보다 더욱 특별한 점은 그녀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마음씨였다. 비록 신체적으로도 부상을 입었지만,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최원심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며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었다. 최원심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그녀는 정성을 다해 간호했고 환자가 의식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간호가 지속되던 어느 날, 최원심의 아들 정태주가 병문안을 오며 병실에 들어섰다. 정태주는 평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남성이었으며, 가연이 최원심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을 보고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가 병실에 들어서자, 가연은 잠시 눈을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쳤고, 정태주는 그 순간 가연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정태주는 잠시 멈칫하며 그녀를 응시하다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한가연 간호사님, 어머니를 이렇게 정성껏 돌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가연은 그의 말에 살짝 놀란 듯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정태주 씨. 저는 그저 제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녀의 진지한 대답에 정태주는 순간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져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희 어머니께서 빨리 회복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간호사님이 옆에서 돌봐주시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가연은 그의 부탁에 담담하게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어머님이 건강을 되찾으실 때까지 제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녀의 진심 어린 대답에 정태주는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다. 그는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병실 밖으로 나서며, 문득 그녀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렇게 매일같이 병문안을 오는 정태주는 어머니를 돌보는 가연을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점점 특별한 유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태주는 어머니를 병문안하러 매일같이 병원을 찾았고, 그때마다 가연과 마주치게 되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병원장 박영심은 자신의 딸 장나라와 정태주 사이의 혼담이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에, 가연이 정태주와 가까워지는 것을 내심 불쾌하게 생각했다. 딸 나라의 혼담이 박 원장에게는 단순한 결혼 이야기가 아니었다.

  병원의 안정적인 운영과 가족의 명예, 그리고 딸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합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연의 존재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되어 두 사람의 인연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여 박 원장은 점차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가연을 최원심의 전담 간호사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심했다. 그의 결정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이루어졌다. 나라와 정태주의 혼담을 지키기 위해, 가연을 최원심의 담당 간호사에서 제외하기 위해 남편 장한국 박사와 상의한 후, 다음 날부터 최원심의 담당 간호사를 교체하기로 계획을 세워 다른 간호사로 바꿨다.

  조용히 진행된 이 결정은 누구에게도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겉으로는 긴급 환자들이 증가해 인력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명목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가연과 태주 사이의 관계를 차단하려는 박 원장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가연은 평소처럼 출근해 일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근무 부서가 변경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은 그녀에게 날벼락과도 같았다. 최원심 환자의 주치 간호사로서, 가연은 매일같이 최선을 다해 환자의 팔과 다리를 마사지해 주고, 조금이라도 상태가 호전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부서로 가야 한다는 소식에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는 그 결정에 대해 사전에 아무 설명도 들은 바가 없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그날 밤, 가연은 고민 끝에 정태주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전했다.

"정태주 씨, 어머님 담당 간호사가 바뀌게 되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슬픔과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이 결정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그녀는 미안한 마음으로 이 사실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태주는 예상치 못한 소식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한 듯 물었다.

"뭐라고요? 왜 그런 일이 생겼어요?"

가연은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조심스레 답했다.

"저도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어요. 병원에서는 그저 긴급한 환자들이 많아져서 인력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만 해주셨거든요."

이 말을 들은 태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찾아가 병원 측에 직접 상황을 묻기로 결심했다. 병원에 도착한 태주는 담당 부서의 책임자와 대면했고, 긴급 환자로 인해 인력을 재배치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특별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듣고도 태주의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병원장의 결정이 너무 갑작스럽고 미심쩍었다. 그는 병원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태주는 병원을 떠나기 전 가연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말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된 거 같아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제가 알아볼 테니, 어머니를 계속 돌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연은 태주의 진심 어린 부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저 환자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을 뿐이기에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태주의 간절한 눈빛을 보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와드릴게요."

그녀의 마음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환자를 위한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


  운명의 흐름은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녀의 삶을 바꾸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최원심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고, 그녀의 손과 발은 서서히 움직임을 되찾아갔다. 병실을 방문한 가족들이 이를 지켜보며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 박영심 원장은 이런 작은 변화에도 크게 기뻐하며, 가족들에게 최원심이 머지않아 의식을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정태주는 어머니가 깨어난다면 사고의 전말을 알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처음부터 헌신적으로 간호해 온 가연을 다시 담당 간호사로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병원장에게 가연을 다시 어머니 곁으로 배치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가연이 옆에 있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저 옆에 두고 싶은 존재가 되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필요 이상으로, 가연을 그의 삶 속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고 싶은 강한 바람이었다. 정영국 회장 역시 아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 박 원장에게 부탁했다.

  가연은 VIP 병실로 다시 돌아왔고, 최원심의 회복을 위해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최원심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아갔고, 어느 날 천천히 눈을 뜨고, 서투른 발음으로 더듬거리며 처음으로 말을 시도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아직도 흐릿하고 불분명했으나, 가연의 모습은 분명히 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뇌 손상의 여파로 인해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대부분 잃어버린 상태였다.

  가연은 최원심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성 어린 노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최원심의 과거를 담은 영상 앨범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료를 모았다. 어린 시절의 사진부터 가족의 소중한 추억들이 담긴 사진을 정리하며, 가연은 앨범 속 추억들을 통해 최원심의 잃어버린 기억을 조금이라도 되찾아주려 애썼다. 가족과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그녀는 최원심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이런 가연의 헌신과 따뜻한 마음은 정태주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성실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점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고, 어머니의 회복 과정 속에서 가연의 존재가 자신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편 최원심이 회복의 기미를 보이며 어눌하게나마 말을 시작하자, 그녀는 자신을 돌보는 이가 가연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아들 정태주가 가연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 사실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녀는 자신과 가족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고, 가연처럼 평범한 배경을 가진 사람과의 인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겼다. 운명은 그들 사이에 분명한 장애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최원심은 아들이 보다 더 좋은 배경의 여인과 가정을 이루기를 바랐다.

  정태주 역시 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반대가 예고된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고, 갈등이 점점 커질 것을 예감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연을 향한 자신의 진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가연과의 미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으며, 그 어떤 반대가 있더라도 그 마음을 쉽게 놓고 싶지 않았다. 가연 역시 그와의 인연이 그저 한 순간의 지나가는 바람이 아님을 느끼며, 그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흘러 최원심의 상태가 호전되었고, 마침내 퇴원하여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집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정성껏 돌봐준 가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이 가연과 자주 함께 있는 것을 지켜보며 태주가 그녀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느 날, 어머니와 단둘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태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머니, 가연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눠보신 적 있으세요? 가연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어머니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는 걸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원심은 아들의 진지한 목소리에 잠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태주야, 나도 그 아이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지. 하지만 우리 가문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너도 알겠지만, 우리 집안에는 많은 책임이 따르잖니. 가연 간호사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 아이가 우리 가문의 며느리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난 걱정이 돼."

  태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가연이 재벌가의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연과의 미래를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병원에서 다시 마주한 가연에게 태주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가연 씨, 시간이 괜찮으시면 저와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가연은 태주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나라 병원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에서 태주와 가연은 만나기로 했다. 카페 내부는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고, 벽에는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어 조용하면서도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창밖으로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차들이 교차하는 도로가 보였지만, 그들 사이에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태주는 조심스럽게 가연을 바라보았고, 가연도 마찬가지로 그의 눈을 깊이 응시했다.

"가연 씨…"

태주가 천천히 입을 열며 먼저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과 함께 진심이 묻어 있었다.

"저는… 가연 씨를 좋아합니다. 어머니를 간호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그냥, 당신 자체가 좋아요."

  태주의 고백에 가연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묘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곧 가연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드리워졌다. 태주의 고백은 그녀에게도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지만, 현실적인 걱정들이 그녀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어머니께서 우리의 관계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가연은 조심스럽게 말하며 눈길을 피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자신이 걱정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담겨 있었다.

"태주 씨, 저도 태주 씨를 좋아하지만우리 사이에 있는 많은 장애물들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저 평범한 간호사일 뿐이고, 태주 씨는 제일그룹의 후계자이니까요."

  태주는 그녀의 말을 듣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 사이에는 단순한 감정 이상의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태주는 가연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곧 진지한 눈빛으로 가연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도 알아요, 가연 씨. 어머니의 반대가 어떤 의미인지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 우리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가연은 그의 결연한 태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태주의 진심 어린 고백과 그가 보여준 결단력은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태주의 손이 살며시 그녀의 손을 감싸쥐었고, 그 온기가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 주는 듯했다. 가연은 태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저도 태주 씨를 믿어요. 우리 함께 이겨내 봐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무언의 교감은 이전과는 달리 더욱 깊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운명이 그들을 강하게 이끌고 있으며, 그 힘은 불가항력적으로 그들의 삶을 얽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 속에서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발견하는 듯했다.

잠시 후, 태주는 깊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

가연 씨, 어머니가 많이 회복되고 계세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연 씨가 없었더라면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나아지지 못하셨을 거예요.”

가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저야말로, 태주 씨의 어머니를 돌볼 수 있어서 감사해요. 저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녀의 말 속에는 태주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여온 자신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운명은 그들을 강하게 이끌고 있었고, 그 힘은 분명했다. 그들이 직면한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은 두 사람을 서로 끌어당기며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운명의 힘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태주와 가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였으며,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겠다는 결심을 둘은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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