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어촌 마을,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항상 들려오는 이 바닷가 집은 도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바다와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언제나 바다가 그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뛰놀며 조개껍질을 장난감 삼아 바다와 친구가 되어 살아갔던 그들의 모습은 도시 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도시의 아이들이 화려한 인형을 가지고 놀 때, 이곳의 아이들은 인형 대신 바다에서 주운 조개껍질이나 돌멩이로 놀았다. 바다는 단순한 수영장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었고, 하루하루가 먹고사는 일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일상이었다. 이처럼 바다가 일상이 된 삶 속에서도 어려움은 늘 가연의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곁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가연은 갯벌에서 친구들과 뛰놀다 뜻하지 않게 한 어부가 해안에서 사고로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우왕좌왕하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어부를 돕지 못했다. 겁에 질린 가연은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그녀는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차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저분이 정말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가연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한 노인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에는 의료 시설이 없어서 말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을 마칠 때가 많지. 아가야, 여기서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 참으로 힘들단다.”
노인의 말은 가연의 가슴을 아프게 울렸고, 그녀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결심이 생겨남을 느꼈다. 그 말은 가연의 마음에 무기력함을 느끼면서도 속으로 단단히 결심을 다지게 되었다.
“언젠가 반드시 의사가 되어 이렇게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존재가 되겠어.”
그날의 충격적인 경험은 그녀의 어린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함께 강한 의지를 심어주었다. 지금은 비록 힘이 없지만 언젠가는 의사가 되어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리라는 결심을 품은 채 그날의 기억을 가슴 깊이 간직했다.
어린 가연의 마음속에 깊은 의지가 새겨졌다. 그녀는 그날 이후 그 다짐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언젠가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품으며, 그날의 기억을 가슴에 새겼다. 어린 가연의 작은 결심은 그녀의 인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다.
가연은 그날의 기억을 품은 채 자라면서 마음속 다짐을 더욱 굳혔다. 그녀는 늘 바다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바다에서 일어난 그날의 일이 자꾸만 떠올랐고, 그 기억은 마치 그녀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았다. 바다의 소리, 그날의 바람,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기분까지, 모두 생생히 남아 그녀를 흔들었다.
세월이 흘러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가연은 공부에 전념했다. 힘든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된 일과 생활의 어려움이 그녀를 흔들기도 했지만, 가연은 항상 다짐했다.
"언젠가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구하겠어."
그녀는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에 몰두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때로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지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연은 한 번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가연은 속으로 다짐했다. 부모님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하며 ‘잘했어’ 칭찬 한마디조차 듣지 못해도 그녀는 그 길을 가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안은 흙수저에 먹고살기에 바빠 힘든 환경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부모님이었기에 늘 관심 밖이 되었다. 싸늘함을 피하기보다 그녀는 공부에 몰두하며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성실함은 결국 결실을 맺었으며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명문 의과대학에 당당히 합격하게 됐다.
믿기지 않는 듯 그녀는 몇 번이고 합격 통지서를 확인했다.
‘정말로 합격한 건가?’
그녀는 허벅지를 꼬집어 현실임을 확인하며 스스로에게 말했고, 실감임을 느꼈다.
"그래, 이제는 나도 할 수 있어. 더 열심히 하면 돼."
가연은 마음을 다잡는다.
가연은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의지를 불태웠다.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하자,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잘했다, 가연아. 네가 이뤄낸 성과에 부모로서 자랑스럽구나."
그 순간 가연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저 ‘잘했다’는 한 마디가 그녀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고, 그동안의 힘든 시간이 모두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그녀의 고된 삶은 계속되었다. 수업과 실습,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해야 했기에 가연의 하루는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공부와 일,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부모님께서 나에게 거는 기대에 부응해야 해. 이 길을 선택한 건 나니까.'
가연은 힘든 순간마다 스스로를 다독였고, 매일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러나 의과대학의 높은 등록금은 가연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결국 그녀는 부모님의 지원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하기 위해 간호학과로 전과하게 되었다. 간호학과에 전과한 뒤에도 그녀는 열심히 공부했고, 이론과 실습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임했다. 간호사가 되어 환자들을 직접 돌보고 보살피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대학교 졸업식 날,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가연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했다. 그 순간 그녀는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칭찬 한 마디가 오랜 시간 동안의 상처와 외로움을 덜어주는 듯했다.
“이제 드디어 부모님께 인정받은 걸까?”
그녀는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그 말이 이제야 와닿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가연은 간호사로 일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병원에 지원했다. 자신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정성스럽게 준비했고, 마침내 최종 면접까지 합격해 간호사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가연은 바닷가로 달려갔다.
“나, 드디어 해냈어! 간호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어!”
첫 출근 하루 전, 그녀는 바닷가를 찾아가 넓은 바다를 향해 외쳤다.
‘나, 해냈어요. 드디어 취업했어요!’
바다는 그녀의 목소리에 답하듯 파도를 일으켰고, 가연은 그 파도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 친구, 이제 내가 널 지켜줄게.’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날 밤바다의 파도는 춤을 추었고, 그 위에서 춤추는 파도는 노래를 부르는 듯 즐거운 소리로 들려왔다. 가연도 긴 시간 바다와 얘기하며 그동안의 설움과 힘든 시간을 잊고 파도와 춤을 췄다.
가연은‘나의 친구’ 노래를 불러본다.
“물새 우는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멀리 떠난 나의 친구를 모래 위에 그려봅니다…….”(중략)
가연이 삶의 기쁨을 잘 표현한 노래였다. 밤바다를 보며 친구가 되었고 바다를 보며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서러워 말라고 달래주는 응원의 소리였다.
바다는 가연의 마음을 달래고 가연에게 살아가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바닷가에 나와 세찬 바닷바람 맞으며 갈매기 떼를 친구 삼아 들이마시는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그래, 내일은 희망의 날이 될 거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처럼 아침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가연의 가슴은 설렜다. 바다는 파도 소리로 응답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감싸주었다. 가연은 바다를 향해 속삭였다.
“내 친구, 이제 내가 널 지켜줄 차례야.”
가연은 그렇게 다짐하며 한참 동안 파도와 함께 춤을 추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라병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첫 환자를 만나며 긴장했지만, 선배 간호사의 조언을 들으며 조금씩 익숙해졌다. 매일매일 배워가는 것이 있었고, 작은 성취감이 쌓일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점점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서툴지만 그래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간호 일에 적응을 해나갔다. 특히 담당 의사의 힘내라는 응원과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때는 정말 하루가 해피데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난 해낼 수 있어.'
가연은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갔다. 병원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가연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줄 만큼 성장했고, 그와 동시에 병원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가연은 나라병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간호사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환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회복을 도왔고, 동료들과 협력하여 최상의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의 헌신과 열정은 동료들과 환자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가연의 병원생활은 늘 환자들과 바쁜 가운데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치료의 손길이 절실하고 냉정한 곳이기도 했다.
하루는 중환자실에서 한 환자를 돌보게 되었을 때 그 환자는 심각한 상태였고, 가족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가연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며 최선을 다해 간호했다. 그녀의 세심한 돌봄 덕분에 환자는 점차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의 가족은 가연에게 다가와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간호사님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가연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환자분이 회복되어 저도 기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가연에게 큰 보람을 안겨주었고, 그녀의 간호사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가연은 간호사로서의 전문성을 더욱 향상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그녀는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지만, 환자들을 위해 더 나은 간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가연은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간호사들의 자기 계발과 성장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강연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고, 그들의 경험은 가연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강연이 끝난 후, 가연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우리도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봐야겠어요."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요. 우리도 간호사로서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해요."
이후 가연은 병원 내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자신의 역량을 넓혀갔다. 그녀는 후배 간호사들의 멘토로서 그들의 성장을 도왔고, 환자들에게는 더욱 세심한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연의 이러한 노력은 병원 내에서도 인정받아, 그녀는 간호부서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협력하여 병원의 간호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가연은 병원에서 열린 간호사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나도 해외에서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쌓아보고 싶어."
가연은 해외 간호사로서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어 공부에 매진하며 해외 간호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준비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가연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가연은 미국의 한 병원에 간호사로서 취업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도전은 그녀에게 큰 성장을 안겨주었고, 다양한 문화와 의료 시스템을 경험하며 그녀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가연은 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한 간호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나누며, 간호사로서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가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간호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이어갔다. 그녀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도전하며 간호사로서의 길을 끗꿋이 걸어갔다. 그녀는 바쁜 병원 일정을 소화하며 부모님과도 종종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 수애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가연은 오랜만에 어머니와 긴 대화를 나눴다.
"엄마, 나 이제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수애는 그런 가연을 바라보며 옛날 생각에 잠겼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연아, 너는 정말로 강하고 훌륭한 아이야…"
수애는 속으로 딸이 자랑스러웠고,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세월이 떠올라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가연의 인생은 바다와 함께 시작되어 바다와 함께 성장해 나갔다.
수애는 가연의 성장한 모습을 보며 과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한때 수애도 바다와 마을을 지키며 살았고, 가연의 출생은 그 당시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가연은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지만, 그런 그녀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의지와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25년 전’
고요하고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가연의 어머니, 심수애는 바다와 함께 자라며 강인한 생활력을 길렀다. 그녀는 바다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도우며 삶의 무게를 이겨냈다. 바닷가의 조용한 어촌 마을에서 가연의 어머니, 심수애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삶은 바다와 늘 함께였다. 바다를 잘 아는 수애는 강한 생활력으로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도와가며 바다와 함께 생활해 왔다. 어른이 된 후에도 수애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하고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왔다. 그 바닷가에서, 수애의 삶은 자연과 사람과의 연결 속에서 다져졌고, 그녀의 마음은 바다의 품 안에서 강해졌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자신이 쌓아온 삶의 터전을 지키며 그곳에서 가연을 낳아 길렀다.
그러나 가연의 출생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가연의 출생은 비밀스럽고 복잡한 사연을 담고 있었다. 가연의 아버지, 한청연은 사실 가연의 친부가 아니었다. 양부였지만 마음속에는 친 아버지보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피고 마음을 썼다. 그러나 수애에게 가연은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이었고,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어린 시절의 여름날’
수애는 한때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 해 여름, 그녀는 부모님이 계신 바닷가 마을로 잠시 휴가를 떠났다. 저녁 무렵,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하던 그녀는 낚싯대 가방을 메고 서성이는 한 젊은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바다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듯했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말 좀 묻겠소, 배를 놓쳐서 하룻밤 묵을 곳을 찾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소?”
그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애는 평소에도 남을 돕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에, 그 남자의 부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혼자 묵을 수 있는 방이 하나 있긴 한데, 하룻밤 묵으려면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그를 집으로 안내하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장한국이었고, 그는 수애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였다. 그들은 서로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금방 친해졌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고,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밤이 깊어갔다.
‘운명적인 사건’
그다음 날 어둠이 내려앉는 초저녁에 수애는 바닷가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녀는 밤바다의 고요함과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방향으로 달려가니, 한 사내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그는 물속에서 간절하게 손을 뻗었다. 순간 수애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바다와 함께 자랐기에 수영은 그녀에게 놀이와 같았다. 반면 장한국은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맥주병이었다. 수애는 단숨에 그를 끌어올려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장한국이었다.
“고맙소. 정말 고마워요. 내 목숨을 구해줬어요.”
장한국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날 밤, 그들은 또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날 밤의 사건은 그들에게 있어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급격히 가까워졌고, 이후에도 둘은 종종 만나며 인연을 이어갔다.
‘예상치 못한 결과’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달 후, 수애는 생리가 불규칙하다는 생각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신 진단 키트를 사용해 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임신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혼란스러워했다. 그날 밤의 일로 인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놀라움과 혼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혼자 고민하며 몇 번이고 장한국을 만나려고 했지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용기를 내어 그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한국은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는 그녀에게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낙태를 권유했다.
“아이를 지워!”
장한국은 무자비하게 말했다.
수애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이렇게 차갑게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눈물이 쏟아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를 사랑했지만, 그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른 후 수애는 자신의 임신을 깨닫고 놀라움과 혼란에 빠졌다. 그녀는 장한국을 찾아갔지만, 책임을 회피하며 아이를 지우라고 하는 이 무정한 태도에 상처받은 수애는 자신이 혼자서라도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가족의 반응’
수애는 혼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며 딸을 사랑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모든 사실을 고백했으나 부모님은 대노하며 수애를 꾸짖었었다.
“이 아이는 지우자, 아버지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할 수는 없다!”
수애의 부모님은 강하게 말하며 그녀를 다그쳤다. 그러나 수애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았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이 아이는 제 아이예요.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요.”
수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결국 수애는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기 위해 수애는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백운 선사예요. 마을에서 존경받는 스님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부모님의 반응을 살폈다. 수애의 아버지 심민국은 딸의 말을 믿었다. 존경하던 백운 선사가 자신의 손녀의 아버지라니, 충격과 함께 강한 분노가 밀려왔다.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딸의 아이에 대해 책임을 물으며 직접 백운 선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백운 선사와의 만남’
며칠 후, 심민국은 마을의 무림사로 찾아가 백운 선사와 마주 앉았다. 백운 선사는 뜻밖의 방문에 놀라며 심민국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내 진지한 분위기를 느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선사님, 제 딸이 선사님과 아이를 가졌다고 하더군요.”
심민국은 분노를 숨기지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백운 선사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나서, 차분히 답했다.
“거사님,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수애의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 저와는 아무런 혈연적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무척 중요한 일이니, 저는 그 아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백운 선사의 침착한 반응과 진심 어린 설명은 심민국의 마음을 서서히 진정시켰다. 그는 선사의 말에 의구심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백운 선사가 진심으로 자신의 손녀를 돕고자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는 아이가 자신의 혈육이 아니지만, 수애와 그 아이를 돕겠다고 말했다. 선사의 진심 어린 말에 심민국은 결국 마음을 진정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백운 선사의 격려 속에서 수애는 두려움을 덜고 아이를 키울 준비를 했다.
‘가연의 탄생’
결국 수애는 힘든 여정을 견뎌냈고, 어느 맑은 가을날 그녀의 딸, 가연이 세상에 태어났다. 갓난아이의 작은 손을 잡으며 수애는 다시 한번 자신의 결심을 되새겼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연은 수애에게는 단순한 딸 이상의 의미였다. 그녀가 겪은 모든 고난과 사랑이 함축된 존재였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어준 것이다. 수애는 아이를 보며 혼자서라도 아이를 지키고자 다짐했다. 그녀는 백운 선사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결심을 내렸고, 결국 가연을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