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SU May 03. 2021

보일러 고장은 삶이었다.

그림책 <삶>

"수야."

샤워하러 들어간 남편이 나를 급하게 부른다.

"왜?"

"찬물이 나와. 너무 추워."

거실로 나와 살펴보니 보일러 전원이 꺼져있다.

다용도실로 가보니 보일러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전원이 꺼져 버린 것이다.

일요일 아침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럽다.


2013년도에 이사 온 이 집은 세월의 흐름을 참 많이도 뿜어내고 있다.

여기저기 떨어지는 벽지, 틈이 점점 벌어지는 마루 바닥, 색 바랜 싱크대, 틈틈이 자기 살 곳을 찾아내고 있는 화장실의 찌든 때 이것만 봐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이곳에서 산 8년의 시간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눈물 나게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고, 날아갈 듯이 행복했던 시간도 분명 있었다.

내 기억에는 행복했던 시간보다 힘들었던 시간이 더 많이 자리 잡고 있지만..

어제 갑자기 망가진 보일러를 보면서

갑자기 내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렸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운 걸까..

망가져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 당황했던 순간에

'진짜 사람이나 물건이나 오래되면 탈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

이런 생각이 먼저 지나갔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남편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상황은 언제나 우리 곁에 상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휴일이었지만 저녁 늦게 와주신 as기사님 덕분에 우리 집 보일러는 정상작동이 되고 있다.

낡은 온수통은 색도, 센서도 이미 기능을 상실한 채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새 온수통으로 갈아입은 보일러는 따뜻한 물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인생 살면서 몸과 마음의 일부분을 도려내야 할 만큼 힘든 일을 겪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항상 여기저기서 증명해준다.

그러나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많은 일 중에 조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인생은 흘러가는 것 같다.

멈춤이 발생할 것 같던 보일러도 가동되어 잘 작동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중간중간 발생하는 멈춤에 고단해지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것을 다시 잘 다듬고 손써서 또 살아가고 있다.

일이 있어서 늦게 오게 되었다는 as기사님의 말씀에 휴일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여러 번 드렸다.


일러의 고침처럼 누군가의 손길로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것이고

나의 단단함으로 이겨낼 수도 있는 것이고

시간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앞으로 살아갈 것이고 많은 일들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평정심을 가지고 마주할 수 있기 위해 오늘도 난 노력을 해본다.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와서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면서 말이다.


삶에 대한 문득 생각이 올라올 때 읽어보면 좋은 그림책이다.

신시라 라일런트 글, 브렌던 웬젤 그림

<삶>

한 글자가 주는 묵직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그냥 일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

그냥 살아갈 것 같지만

산다는 건 늘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는 거

그리고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는 희망과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자랄 거라는 생명력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삶을 언제나 사랑스러운 파스텔 가득한 색으로 매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을 보는 이의 눈으로는 얼마든지 원하는 색을 그려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네의 인생이고 삶이니까..


보일러 고장이  삶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져버린 글쓰기

오늘도 숨 쉬고 있음을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음을 백신을 맞기 위해 대기 중이라는 남편이 별 일 없기를 여러 생각을 하면서 글을 내려본다.

작가의 이전글 손톱 먹는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