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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Nov 11. 2021

가지가지 한다.

먹고사는 일 - 일일식단 

'가지'... 지금은 너무 좋아하는 식재료이지만 대부분의 초딩들이 그렇듯이 어릴 때는 대부분의 야채를

싫어했고 특히 이 가지 맛을 이해하지 못했다.

음식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야채들을 골라내고, 옆으로 치워버리고, 부모님의 밥그릇에 올려놓고

해가면서 밥을 먹었는데 부모님이 이런 나의 야채 편식에 대해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편식이 심했던 오빠가 반찬들의 모양이나 색, 냄새까지 따져가면서 편식을 했기 때문에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별로 없어서 많이 속상해하셨다. 그러기에 채소 빼고는 대부분 잘 먹는 내식성을

참아내시며 그저 뭐라도 먹기만 하면 좋아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가지로는 가지무침을 주로 하셨는데, 항상 밥솥에 반을 가른 가지를 넣고 밥과 함께 쪄낸 후

물렁물렁 해진 가지를 젓가락으로 살살 갈라서 갖은양념과 함께 조물조물 무쳐내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반찬이라서 자주 만드셨는데 나는 가지나물은 손도 안 대면서 그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항상 엄마 뒤를 따라다니며 가지를 찌고, 식히고, 잘라서 무치는 과정을 눈여겨보았었다.

밥상에 자주 올라오는 반찬이니 한두 번 먹어보긴 했는데, 철없던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저 가지나물의

식감은 물컹물컹한 게 죽죽 흘러내리는 '코' 같은 식감이었다. 그러니 그 가지가 갖고 있는 달큼하고 감칠맛 나는 맛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늘 밥상에서 쓰~윽 밀어놓는 반찬이었다.

내가 가지를 다시 제대로 먹기 시작한 건 결혼 후 미국에서 살림을 시작한 이후이다.



음식을 잘하지 못하는데, 이것저것 한국 반찬을 만들다 보니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몇 개 안 돼서 금세 밑천이

드러나고, 그러다 보니 안 먹어본 식재료로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보곤 했다.

마켓에서 가지 몇 개를 집어왔는데, 기존의 가지나물의 그 물컹한 식감을 싫어하기에 익히는 방법을 좀

다르게 해서 만들어보았는데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가지가 이렇게 맛있는 재료였다니...

가지를 0.5cm 정도 두께로 어슷 썰기를 해서 물과 기름을 같은양으로 넣고 5분~10분 정도 센 불에

볶아준다. 그다음에 마늘, 양파, 파, 고춧가루, 간장, 굴소스 등을 넣고 골고루 익게 잘 섞으면서

5분 정도 더 볶아주고, 불을 끈 후에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뜸을 들여주면 완성!

가지의 맛을 알게 된 후 이것저것 가지 요리를 찾아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음식점에 가서도 가지 요리가

있으면 꼭 한번 먹어보기도 하면서 무한한 가지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

그동안 먹어본 가지 요리 중에 가장 좋았던 음식들은...


1. 중국음식점의 Vegetable 메뉴에 항상 있는 중국식 Eggplant w/ brown sauce

- 두부와 함께 혹은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데 튀긴 가지에 굴소스를 베이스로 한 중화요리 소스와  마늘,

양파 등을 함께 섞어서 나온다. 돼지고기를 섞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고기 없이 먹는 게 더 좋다.


2. 인천 차이나 타운의 중식집 '곡가'(曲家)

- 몇 해 전 한국 방문 때 친구들이 데리고 가서 '어향가지'를 시켜주었는데,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다시 한국에 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3. 백종원표 가지 밥

-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너무 간단해서 한번 만들어 보았는데,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

그 물컹한 식감을 싫어하던 내 입맛을 사로잡은 물컹의 끝판왕 '가지 밥'


4. Eggplant parmesan 도 미국에 와서 처음 먹어보고 만들어본 음식이다.

- 우리의 '무'처럼 튼실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국 가지를 보며 어찌 먹을까 궁금해했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음식으로 탈바꿈을 하다니... 하면서 감탄했던  Eggplant parmesan.


초딩입맛에서 벗어나 어른 입맛  입문의 기준이 되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는데  '가지'도 어른 입맛의

대표적인 식재료라 생각한다. 비교적 늦게 가지의 세계에 입문하다 보니  가지의 이 들큼하고 부드러운

감칠맛을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아쉬울 뿐이다.

내년에는 가지 농사도 한번 도전해 볼까? ...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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