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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Feb 10. 2022
계란말이 신공
먹고사는 일- 일일식단
살림 경력이 한 해 두 해 늘어나면서 잘 만드는 음식이 늘어난다기보다는
기계처럼 익숙하게 만드는 음식이 더 많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요리에 자신이 없던 초보 주부 시절에는 잘 만들어야겠다는 긴장감이 있어서 정성도 들이고
신경을 많이 써가면서 음식을 했는데, 수십 년간 반복되는 작업? 을 계속하다 보니, 요즘에는 음식을
버릇처럼 만들고 있다. 버릇처럼 만드니 늘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맛은 매번 다르다.
음식들도 애정결핍을 느끼고 있는 걸까? 예민한 것들...
끼니마다 메뉴를 정하고 어떤 음식이 머릿속에 들어오면 그다음부터는 늘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무아지경으로 음식을 만드는데, 시작 전부터 매번 나를 긴장시키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계란말이' 다.
계란말이는 불 조절도 잘해야 하고, 계란이 익는 속도도 조절해가면서 계란을 말아야 겉과 속이
골고루 잘 익으면서 겉이 타지 않게 만들어야 하니 시작과 함께 온신경이 곤두서며 마음이 막 바빠진다.
항상 계란말이를 시작하기 전에는 '잘 만들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시작을 하면서 계란을 얇게 펴고,
타지 않게 적당한 시간에 접고, 굴리고, 2차 계란물 붓고, 또 굴리고... 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도와주는 듯, 내가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계란이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프라이팬에 알아서 잘 펴졌을 때...
새로 부운 계란물과 팬에 있는 계란이 잘 안 붙을 거 같았는데 찰떡같이 잘 붙어주었을 때...
팬에서 잘 안 떨어져서 찢어질 것 같았는데 안 찢어지고 얌전하게 잘 말아질 때...
계란을 뒤집을 때 부서질 듯 위험했는데 온전한 모습으로 잘 나왔을 때...
그냥 뭔가에 고맙다.
누군가 도와주는 것 같다.
계란말이는 예쁘지 않게 대충 만들어도 계란은 계란이니, 기본 맛은 하는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매번 잘 말아야 한다는 각오와 부담을 갖게 하는 신기한 음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노~란 계란말이를 제일 좋아하지만 가끔 변화를 주기 위해
잘게 썬 야채도 넣고, 맛살이나 김을 넣고 만들기도 한다.
긴장의 순간.
불에 달구어진 팬에 기름을 넣고, 불은 약불로 줄인다.
'잘 만들어야지' 하는 나의 다짐과 함께 '그들' 도 준비하는 게 느껴진다.
그릇에 풀어둔 계란물 중 1/3 정도만 먼저 팬에 붓고 골고루 잘 펴질 수 있도록 팬을 돌리면서
구멍이 생기지 않게 잘 만들어준다. 계란 윗면은 다 안 익어도 밑면이 익기 시작하면 팬을 움직여서
계란이 팬에서 떨어져 움직일 수 있게 조금씩 흔들어준다.
계란이 팬에서 잘 떨어져서 자유로워지면 계란 윗면이 다 익기 전에 계란 한쪽을 살짝 접은 뒤
김밥 말듯이 조금씩 접어가면서 말아준다. 젓가락으로 앞을 누르고 스패츌러로 뒤에서 말아가면서
모양을 잡고 굴린다. 불은 계속 약불을 유지해야 계란이 타지 않고 너무 딱딱해지지 않는다.
잘 말아놓은 계란을 팬의 한쪽으로 밀어놓고, 2차로, 남은 계란물의 반 정도를 또 팬에 붓는다.
다시 계란물을 얇게 펴주면서 먼저 말아놓은 계란말이를 살짝 들어서 그 밑으로 계란물이 들어가도록
밀어 넣으면서 계란이 서로 이어지도록 한다.
팬에 부어놓은 계란이 반쯤 익으면 다시 젓가락과 스패츌러를 이용해서 김밥 말듯이 살살 말아가며
모양을 만들어준다. 이쯤에서 나의 헬퍼들이 정말 열일 하는 듯...
계란을 2~3개 정도 하면 두 번 정도 나누어서 팬에 붓고 계란말이를 만들지만 계란 3~4개 정도는
3번에 나누어서 부어가며 만들 때 모양이 더 잘 나온다.
마지막으로 남은 계란물을 다 붓고 1.2차처럼 계란물을 만들어놓은 계란말이 밑으로 밀어 넣어서
이어준 다음 잘 말아서 마지막 모양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불을 중불로 올려서 만들어놓은 계란말이를 앞 뒤로 뒤집어 가면서 조금씩 더 익히고
불을 끈다. 수고했다 모두들...
계란말이처럼 만만하면서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값싼 재료로 고급 짐과 정성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반찬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 이기도 하고...
오늘도 또 한 번 말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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