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소수로?
오늘도 우리의 부장님은 술자리에서 맥주뚜껑의 톱니바퀴가 몇 개인지 아느냐와 같은 시시콜콜한 과학 상식을 떠들어대는 중이다. 그러던 중 소주가 한 바퀴 돌 타임에 끝 자리 한 사람의 소주가 모자란다.
소주는 왜 이렇게 항상 잔이 딱딱 맞질 않는 걸까?
흔히 마시는 소주 한 병의 용량은 360ml이다. 용량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의 전통 단위인 홉/되/말 등이 튀어나오게 된다.
액체나 쌀 등의 부피를 재던 단위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믿고 있었는데 술병의 용량 표기로 버젓이 “2홉 소주”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화학 회사에서는 흔히들 쓰는 “말통”의 “말”도 바로 이 홉/되/말의 말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말통 하나의 용량은 18L이다. 홉과 되와 말은 각각 10배씩의 차이를 나타내니, 되는 1.8L, 홉은 180mL이다. 그러니 2홉 소주는 180mL의 두 배인 360mL가 되는 것이다.
마치 철로의 폭이 예전 로마시대 말 두 마리가 끌던 마차의 폭에서 유래한 것처럼 오래된 전통의 유산이 350mL도 400mL도 아닌 360mL라는 용량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번엔 소주잔의 용량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소주잔은 술 병만큼 규격화가 되어 있지 않은 편이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잔의 부피 자체는 60~70mL 정도라고 한다. 보통 술을 마시면 잔에 넘치지 않도록 70~80% 정도를 채워서 마시니, 한 잔에 50mL 정도가 흔히 알려진 수치이다.
여기서 피보나치킨(사람 수에 따른 치킨 주문 수의 황금 비율이라 알려진 방법으로, 피보나치수열에 따라 뒷 숫자의 사람일 때 시켜야 하는 닭의 수는 바로 그 수열의 앞자리 수이다. 예를 들어 1 1 2 3 5 8로 이어지므로, 1인 1 닭, 2인 1 닭, 3인 2 닭, 5인 3 닭, 8인 5 닭과 같은 식이다)만큼이나 적절한 조합이 나타난다.
소주 한 병 360mL를 50mL 잔수로 나누면 7잔에 근접하게 된다. 즉 소주 한 병을 마시다 보면 멤버들에게 딱 떨어지지 않고 항상 모자란다는 주당들의 불평인지 한 병을 더 시키기 위한 핑계인지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7이라는 숫자는 소주 한 병에서 따를 수 있는 ”소주잔의 수“치고는 참으로 오묘한 수이다. 바로 그가 소주, 아니 소수(Prime Number)이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소수는 1과 자기 자신 이외에는 나누어지지 않는 수를 의미한다. 즉 약수가 가장 적은 숫자인 것이다. 일곱 명이 마시지 않는 한 언제나 누군가는 술잔이 모자라게 되는 놀라운 조화가 벌어진다.
둘이 마시면 세 잔씩 마시고, 한 잔이 남게 되고, 셋이 마시면 두 잔씩 마시고, 한 잔이 남는다. 넷이 마시면 두 잔 째를 따르기에 한 잔이 모자라게 된다.
실상 소수는 유클리드 시절부터 연구되어 온 오래된 신비한 수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암호체계로 활용되고 있는 그야말로 프라임에 놓을만한 중요한 수이다. 암호에 사용되는 예는 아주 간단하다. 아주 큰 두 소수를 곱한 다음 그 해답과 두 소수 중 하나의 소수만을 공개하더라도 나머지 한 소수가 없다면 나누기로 나머지 한 소수를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머지 한 소수가 바로 암호의 열쇠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암호는 그 소수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강력해진다. 이에 미국의 모 기관에서는 아주 큰 소수를 그야말로 탑 시크릿으로 다루고 있다는 설도 들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양자컴퓨팅을 이용하면 이런 암호는 너무나 쉽게 풀려서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라는 뉴스들을 듣고 있자니, 소주잔 소수의 딜레마를 풀어낼 적절한 용량의 소주잔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술 취한 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P.S. 정작 소주(燒酒)의 ‘소’자는 ‘불사를 소’로 불로 빚어낸 순수함을 지니고 있으니, ’본디 소‘자를 쓰는 소수(素數)와 태생부터 잘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