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의 이름
물질은 보통 세 개의 상태를 가진다. 고체, 액체, 기체가 바로 그것이다.
물질에 따라 액체와 고체의 중간상을 가지는 것도 있긴 하다. 이런 물질은 액체에서 ‘액’과 결정에서 ‘정’자를 가져와 액정(液晶, liquid crystal)이라 부른다.
고체 결정처럼 어느 정도 방향성과 규칙성을 가지면서도, 액체처럼 움직일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닌 덕에, 얇은 전극판 사이에 액정 분자를 채워두면 전기 신호를 통해 판 사이의 물질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액정 분자를 움직여 빛의 투과와 차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액정 디스플레이, 즉 LCD이다.
여담이지만, 결정과 액정에 쓰인 ‘정(晶)’자는 날 ‘일’자 세 개가 붙은 맑을 ‘정’이다. 해가 세 번 비출 정도로 눈부신 수정(crystal)과 같은 광물이나 보석을 뜻하는 한자이다.
수정(水晶) 또한 물처럼 맑고 투명한 광물이어서 수정이라 했지만, 만약 액정상이 먼저 발견되었다면 액정의 이름이 액정이 아닌 수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액정은 물처럼 투명하지는 않다.)
본론으로 돌아가, 지구 생명의 필수요소인 ‘물’은 그 위상에 맞게 물질의 세 가지 상태인 고체, 액체, 기체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액체 상태의 물이 얼면 고체 상태인 ’얼음‘이 된다. 하지만 이런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기체로 증발해 하늘의 구름이 된 후 다시 대지로 돌아올 때, 액체 상태인 물방울로 돌아오면 ’비‘가 되고, 고체 상태인 얼음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이것을 ‘눈’이라고 부른다.
어릴 적 낭만 가득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소망하던 아이들이 자라 출퇴근의 무게운 굴레를 짊어진 직장인이 되면 걱정거리가 되어버리고 마는 ‘눈’, 바로 고체의 이름이다.
출퇴근길 교통대란을 일으키고, 나의 옷과 신발을 적시는 눈, 미끄러운 빙판길을 만들어, 엉거주‘춤’을 추게 하는 눈을 반기는 직장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밤새 내린 눈이 가져오는 다음날 새벽의 고요함과 포근함에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이 또 메마른 직장인에게 남은 한 줌의 감성이 아닐까..
아니 사실 눈 내린 후의 고요함과 포근함은 감성이 아닌 과학이다.
눈 내린 날의 고요함은 산소 하나 수소 두 개가 이루는 물 분자들이 서로 수소결합하며 만드는 모양에 기인한다. 한 때 유명했던 육각수라는 이름처럼 물 분자가 서로 수소결합을 통해 육각형 결정 모양을 이루게 된다. 이런 결정들이 다양하게 성장하다 보면 눈에는 많은 다공성 구조가 형성된다. 이런 다공성 구조는 소리를 잘 흡수하는 구조로, 음악실의 방음벽 구조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쌓인 눈의 표면도 마치 레고블록을 이리저리 쌓아둔 듯 미세하지만 거친 표면을 가지고 있어 소리를 난반사시켜 소리가 뚜렷하게 멀리 퍼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눈 내린 날의 고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고체 물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물은 특이하게도 액체 상태일 때 보다 고체 상태인 얼음일 때 밀도가 더 낮은 상태를 가지고 있다. 그 덕에 추운 겨울 강물이 얼어붙어도 밀도가 낮은 얼음은 강표면으로, 밀도가 높은 물은 강바닥 아래로 자연스레 나누어져 수중생물들이 얼음 속에 갇히지 않고 액체 물속을 유유히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연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자연의 신비이다.
그럼 이번에는 포근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가스레인지 위의 물은 가스불이라는 열에너지를 흡수해 액체 상태에서 기체 상태로 상변화를 진행한다. 즉 열을 흡수하여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것이다. 여름철 흐른 땀이 증발하면 우리 몸의 열을 빼앗아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비가 눈이 되는 것은 반대의 과정이다. 이번에는 액체가 기체가 아닌 고체로 상변화를 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열을 흡수해 기체가 되는 것과 반대로 고체가 되려면 열을 방출해야 한다. 즉, 비가 눈으로 변하면 물이 열을 방출하며 얼음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눈이 내리면 수많은 물방울이 얼음이 되며 내뱉는 잠열로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눈 내린 날의 포근함의 이유이다.
연일 계속되는 추위와 눈 소식에 지친 직장인의 남아있는 한 줌의 감성마저 파괴해 버리는 글이 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눈 덮인 알프스에서의 휴가를 꿈꾸는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