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익숙해지는 중이에요.
나는 왜 캐나다에 왔을까?
“엄마, 나 캐나다에 가서 살아보려고요.”처음 엄마에게 이 말을꺼냈을 때, 의외로 엄마는 반대하지 않으셨다.
나도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결심했고, 그렇게 한국을 떠났었다. 처음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는,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계절이었다.
노랗고 붉게 물든 나무들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낯선 나라의 푸른 하늘빛은 낯설지 않게 다정했다.
첫 낯선 나라로 향하는 길은 ‘두려움’보다 설렘’과 ‘기대감’이 컸었다. 내 앞에 펼쳐질 삶의 나날들이 찬란할 것만 같았다. 이민자로 오기 전에 나는 한 번도 캐나다에 여행을 온 적이 없었다.
그저 '이민' 하면 떠오르는 평화로운 나라, 가능성의 땅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뿐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한 지 몇 주 후, 나는 ‘신규 이민자 지원 서비스 및 언어 수업’을 통해 이곳 사회의 에티켓을 이해하고, 낯선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며, 언어 능력을 향상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고자 커뮤니티 센터를 찾았다.
내가 처음 해야 했던 일은 바로 ‘언어 배우기’, 그러니까 ESL이나 FSL 수업, 회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단지 맥도널드에서 커피 한 잔과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말문이 막혀 그대로 가게를 나와버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메뉴 번호를 말했어도 되었고, 햄버거 이름만 말해도 충분했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 한마디조차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키오스크가 있었다면 터치만으로 주문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땐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다. 지금은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기도 한다.
캐나다에서는 여러 정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정서적·사회적으로 안정된 정착을 돕기 때문에, 정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Welcome Policy'를 통해 수입이 없는 사람들에게 할인을 제공하고 있고, 각 센터마다 무료로 이용 가능한 시설이나 새 이민자(Newcomer)를 위한 커뮤니티 센터의 특정 활동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나도 캐나다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기도 했었다.
그 시작으로, ESL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정부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와 영어 레벨 테스트를 받았다.
1:1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간단한 회화를 나눈 후, 배정받은 테스트를 치르고, 결과에 맞는 레벨의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캐나다에 왔을 당시 나는 한국에서의 바쁘고 치열했던 디자이너 생활 속에서 번아웃이 온 상태였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던 시간 끝에, 조금은 숨을 고르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쉼’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 몇 개월 동안 영어를 배우고, 커뮤니티 수업에 참여하며, 캐나다의 도시 곳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속도와 리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의 기준도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말하기보다도, 그 나라의 사고방식과 일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흘렀고, '언제까지 영어 공부만 하며 살 순 없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해왔던 경력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방황과 함께 외로움이 찾아왔다. 캐나다의 겨울은 길고 깊었다. 계절이 길어진 만큼, 나의 우울감도 함께 깊어졌고
그때 다시 ‘디자이너’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툴인 어도비 프로그램. 전혀 다른 일을 새로 배우기엔, 영어의 장벽과 두려움이 컸고 무엇보다, 나는 디자인이 여전히 좋았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한국어로 만든 포트폴리오를 하나씩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고 바로 취업이 되는 건 아니었다. 캐나다에서는 현지 경력이 없어서 나는 디자인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University Settlement'라는 이민자를 돕는 센터에서 한 달에 두 번, 리플릿을 디자인해 주었고 내게 캐나다의 경력의 쌓는데 도움을 준 곳이었다. 자원봉사를 하기 전에도 이곳 센터의 매니저와 영어 인터뷰를 봐야 했다. 사실, 이 자원봉사가 이력서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중요한 한 줄이었지만, 캐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경험을 한 이후에는 이 경력을 더 이상 넣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나에게 '디자인으로 다시 돌아온 시간'이었고, 디자인을 대하는 마음의 중심을 다잡은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기회를 찾으면, 그 기회는 결국 나에게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무엇이든 시작해야, 비로소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이 있었기에 ‘언제든 다시 취업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캐나다의 잡 마켓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지 않았다.
이력서를 보내고, 인터뷰도 보았지만 항상 어딘가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회사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직업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디자인만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많은 회사들이 디자이너에게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기본, HTML, CSS, JavaScript, SNS 콘텐츠 제작, 영상 편집, 브랜딩 전략 기획까지— 마치 한 사람 안에 여러 능력이 담겨 있어야 하는 듯 보였다.
내가 쓴 글 중에 "캐나다에서 다시 디자인 공부한 이유1"
https://brunch.co.kr/@97728075db7b442/34
"캐나다에서 다시 디자인 공부한 이유2"
https://brunch.co.kr/@97728075db7b442/35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캐나다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한 건 이와 관련된 대학을 가는 길이였다. 캐나다에서 취업을 다시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스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낯선 땅에서 산다는 것은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하고, 외로움과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 또한 쉽지 않은 시간들을 견뎌냈고, 지금도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다.
삶이란, 매일 나 자신에게 건네는 믿음과 다독임, 그리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결국 삶은 자신을 찾아가는 긴 여행이고, 나는 지금 그 여정을 낯선 나라, 캐나다에서 이어가고 있다.
매일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긴장하며 살아간다. 때론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오는 날도 있다.
나는 여전히 외롭고, 마음이 복잡한 날들이 많다.
그런 감정들조차, 이곳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을 이루는 하루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한다.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