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무대에 있다고 생각하니 대견하고 또 아린다
방금 소망이와 아내를 대흘리의 한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근처 토스트 가게에 와서 앉았다. 이상한 기분, 24개월이 꽉 차가는 딸아이가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한단다. 어린이집은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차에서 잠시 기도를 드렸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소망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이렇게 어린이집에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입밖으로 꺼낸 기돗말은 그 정도였지만 마음 속으론 참 많은 이야기와 바람, 또 우려를 주님께 전했다.
문득 작년의 어느 날이 기억난다. 사무실에서 한창 바쁘게 보내고 있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었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이제 더 이상 안 되겠어. 내일부터 아파트 사설 어린이집이라도 보낼래." 종일 육아의 지친 아내의 마음이 꾹꾹 눌러 담긴 메시지였다. 그때 소망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어 아내에게도 숨 돌릴 시간이 생겼다면 어쩌면 우린 여전히 서울에서 여느 가정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길은 다르게 흘렀고, 지금 제주에서 참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매일 아이가 자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파란 하늘을 함께 보고, 어떤 말을 새롭게 입에서 뗐는지도 제일 먼저 알 수 있다. 너무나 값지고 기쁜, 도시에서 누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다.
소망이와 함께 어린이집의 첫날을 보내고 있는 아내에게 막 메시지가 왔다. 소망이가 어떤 아이랑 함께 놀고 있는 사진 한장, 마음이 뭉클하다. 하루 종일 같이 있을 때는 (그야말로 지지고 볶는 가족으로서) 온갖 감정을 다 들게 하는 녀석인데 (그래서 육아 퇴근을 몹시 바라는 날들도 많은데) 불과 30분 떨어져 지금 자기만의 무대에 있다고 생각하니 대견하고 또 아린다.
이렇게 한 단계씩 거쳐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우는 게 육아인 것을. 앞으로 이런 감정들을 수없이 겪으며 아이는 자라나겠지.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집을 떠나고 싶어 하고, 별천지 같은 세상에서 재미를 느끼며 부모에게는 겨우 가끔 연락하는 청년으로 자랄게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서른줄이 되고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가질때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을 비로소 느끼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아내와 나는 노인이 되었을 테고 소망이는 남은 시간을 계산해보며 서글퍼할 지도 모른다.
육아는 참 힘들다. 그래도 우리가 가족으로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정말 후회 없이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어 간다.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그러니 어리석게 살지 말고, 소중한 것들을 맘껏 느끼고, 필요 없는 걱정하지 말고, 허황된 것 좇지 말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자. 어리석은 나는 또 한번 다짐해본다.
2023년 8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