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불편한 여자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투머치 토커가 되는 것-
여자친구가 나에게 많이 하는 말들이 있다. 누군가 듣는다면 닭살 돋을 애정표현부터, 나를 사랑하기에 걱정하는 말들까지 다양하다. 이런 말들은 여느 연인관계에서나 흔히 하는 대화겠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여자친구기에 나에게 부탁하는 말들이 있다.
"보이는 메뉴 이야기 해줘"
"재밌는 거 있으면 말해줘"
"신기한 거 있으면 이야기해 줘"
주로 여행이나 축제를 갔을 때 또는 식사메뉴를 고르지 못해 거리를 헤맬 때 하는 말이다.
그런 여자친구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투머치 토커가 되는 것이다.
특이한 가게 이름을 보면 "가게 이름이 ooo이야, 웃기다"
공원에 가면 "여기에 호수가 있는데 물고기가 엄청 크고 많아"
길거리에 붙어 있는 광고 현수막을 볼 때면 "김창옥 강사가 토크콘서트를 한대"
이런 것들의 어려운 점이 있다면 평생을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들과 살아왔기에 시각장애인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때로는 미숙하다.
여자친구와 길을 걸을 때 보통은 손을 잡고 다니지만, 짐이 많은 경우에는 따로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무의식적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서 혼자 방향을 바꾸고는 한다. 비장애인들은 곧바로 나를 따라올테지만. 여자친구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때문에 "11시 방향으로 가야겠다"처럼 조금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귀찮아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대화들 덕분에 우리의 대화 주제는 끊이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여자친구의 곁에서 더 넓은 세상을 설명해 주는 투머치토커로 기꺼이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