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한창 달리기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덕분에 10km를 수도 없이 뛰면서 km당 페이스도 4:40초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대회 날, 새벽같이 일어나 호기롭게 몸을 풀고 출발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무릎에 대미지가 오는 게 느껴졌다. 그전까지는 무릎이 아팠던 적이 없었으니 페이스 조절만 한다면 하프도 2시간 안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릎에 대미지가 오니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함께 달리던 동생을 먼저 보내고 혼자만에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페이스를 늦추고 암밴드도 오른쪽으로 바꿔 착용했다. 페이스를 늦추니 주변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스 사이드에서 참가자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참가자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나도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그분이 외쳤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무조건 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그래, 내 생각보다 페이스는 늦어졌지만 절대 안 걷는다, 절대 안 멈춘다.”
그럼에도 초반에 대미지가 왔던 왼쪽 무릎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15km 때쯤 페이스를 늦추니 호흡의 문제는 전혀 없었지만 왼쪽 무릎을 신경 쓰느라 오른쪽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갔는지 이번엔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린 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달리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이를 유모차에 앉히고 유모차를 밀면서 달리는 아빠였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지다. 그 아이에게 아빠는 슈퍼맨처럼 강하고 듬직한 존재일 것이다.
그 아빠를 보면서 나는 곧 결혼할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내가 지금 이 고통도 이겨내지 못한다면, 가장으로서 아내를 어떻게 지킬까?” 사실은 내가 선수도 아니고 이런 생각은 무모한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이왕 나온 거, 페이스를 떠나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참가에 의미를 두는 것보다, 정말 최선을 다하고 여자친구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생각만으로 견디다 보니 참가자들을 반기는 피니쉬 아치가 보였다.
멋지게 달려 들어오고 싶었지만 무릎때매 어기적어기적 들어오는 모습이 내가봐도 애처롭다..
막판 스퍼트를 내고 싶었지만, 무리라고 판단하고 페이스를 살짝 높여서 골인지점에 들어왔다. 도착하자마자, 앉을 곳을 찾아서 주저앉아버렸다. 함께 참가한 동생과 서로 독려하고 사진도 찍었다.
이 대회에 참가함으로 인해 얻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나름의 자랑거리? 비록 풀코스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하프도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었기에 충분히 자부심을 갖고 싶다.
두 번째는 사랑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 참가자들을 독려해 주는 응원단부터, 아이와 함께 도전하는 아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꼭 지키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의지가 약한 나는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더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인해 이겨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