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무상을 느낀다는 것
얼마 전, 친가에 들렸다. 가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문득,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집에서 나와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내일 엄마랑 같이 영화 볼까?”
“응 좋아”
참 감사하게도 아내는 우리 부모님을 나보다 더 챙기고, 우리 부모님도 눈이 불편한 며느리 걱정뿐이다.
다음 날 엄마와 지하철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내와 먼저 도착해, 개찰구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내려앉았다.
아직 부모님은 큰 병에 걸린 적은 없다.
하지만 평생을 일해오시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핸드폰 속 사진첩을 한참 내리다 보면, 오래전에 젊은 엄마, 젊은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항상 보는 얼굴이라 몰랐는데 우리 엄마, 아빠도 늙었다.
아직 소녀 같은 우리 엄마의 얼굴도 조금씩 세월이 보이고, 어린 시절 나에게는 누구보다 강했던 우리 아빠와 가끔 힘겨루기를 할 때면, 아빠의 악력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강신주 철학자는 어떤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부모님이 어제 같지 않고 작년 같지 않고, 작년 생일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적 있어요? 부모님이 무상하다는 것을 아는데, 명절에 ‘차 막혀서 빨리 가야 돼요’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사람에 무상이 보이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요”
개찰구에서 손을 흔들며 오는 엄마의 모습을 봤을 때 마음이 먹먹했던 것은, 엄마의 무상함을 나도 모르게 느꼈던 것 같다.
나와 아내 모두 30대를 달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부모님과 함께 할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을 수 있다.
앞으로 친가든, 처가든 우리에게 세상 누구보다 감사한 그분들의 무상함을 계속 느끼고 사랑해야겠다.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