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사랑이라는 단어를 면밀히 관찰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하현달이 뜨는 저녁 문득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당신 생각이 제멋대로 끓어 넘쳐서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는 맨손을 담가 적시고 그 온도에 데일 즈음, 그 붉은 자국이 남은 게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다. 그게 서러울 즈음 하현달은 떠올랐고, 그 서러움마저 넘쳐 이리저리 흘렀다.
사랑, 그 짧은 두 글자 안에 얼마나 이 무겁고 큰 마음을 가둬 놓을 수 있는지, 사랑이라는 말을 발음할 때 얼마나 마음의 떨림이 있을지, 또 목소리는 새벽에 울리는 종처럼 얼마나 가슴을 치고 달아날지, 날숨과 들숨 사이에 얼마나 또 뜨거운 입김을 뿜어야 할지. 모든 게 두렵고 아득하기만 한 저녁 밤에 우리는 서 있었다.
우리의 우주에 커다란 바람이 불었다. 별들이 흩날리는 밤에 당신은 더욱더 빛이 나고 있었다. 당신의 세계와 온전히 하나 되지 못하는 나의 세계에 무엇이 하나 반짝이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환상도 아니고, 함께 겪어야 할 고난과 탈고되지 않은 흐릿한 쾌락도 아니었다. 그러한 모진 것들 중에도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있었다. 세상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끝끝내 지켜서 결국 당신과 내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었다.
가끔 우리는 하현달을 가슴에 안고서 칠흑같은 어두운 겨울잠을 잤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지나간 계절을 살면서 지나쳤던 마음이 아무런 생각 없이 가만히 누워 길고 달콤한 잠을 잤으면 한다. 행복과 불행, 기대와 실망, 기쁨과 상처, 사랑과 미움, 이런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조금 더 살결 어린 마음으로 서로의 계절 속에 나란히 빛나고 있겠지. 하현달이 뜨는 저녁, 수없이 반짝이는 당신의 세월과 그것들을 지키는 하현달처럼 말이야.
그 저녁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빛이 밝아서가 아니라,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결까지 함께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세월이 그러했고, 우리가 나란히 서 있던 그 시간 역시 그러했다. 완전히 알지 못했으나 어렴풋이 감지된 감정들이 이따금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그 바람은 자주 질문보다도 먼저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말을 삼킨 저녁이었고, 감정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던 밤이었다. 가볍게 웃고 돌아선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신의 등 뒤에 쌓여 있던 시간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함께 걷기로 약속하지도 않았고, 함께 걷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그저 서로의 기척이 한동안 가까웠을 뿐이며, 그 시간은 어떤 이름도 갖지 않은 채 지나갔다. 그러나 무명으로 스쳐간 감정들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다는 것을 나는 그 이후의 계절들 속에서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