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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Sep 03. 2023

[번외] 군대에 계신 형님께

 형님! 보내지도 않을 편지를 쓰는 이유는 형님에게 하지 못한 말과 누구든 좋으니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시꺼먼 펜을 잡습니다. 글은 평소 내 생각을 정리할 때 쓰는 버릇이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말의 이치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초라한 내 문장을 아득히 헤아려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간곡히 바랄 뿐입니다.


 첫 문장을 어찌 풀어가야 할까 모르겠지만 성적부터 말하자면 장학금이 위태로운 학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일전에 내가 형님에게 공부할 목적을 모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내가 형님께로부터 조언을 얻었으나 여전히 변하지 못하고 지지부동한 까닭에 회의감에 관한 문제를 바로 직면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간호학과에 온 목적이 과연 사명을 위해서였는지.


 그래,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사명이고 나발이고 단지 형님이 부러워서 왔습니다. 참으로 멍청했지.

나는 형님이 가족의 관심을 받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학창 시절 항상 장학금을 받는 것도, 간호학과에 입학한 것도 모두 형님이 부러웠던 탓이었습니다. 나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줄곧 같은 선상에서 이겨보려 안간힘을 썼던 겁니다.

 

 내가 간호학과에 입학하고 다닌 몇 주 동안은 교회 어른들로부터 꽤나 인기가 있었습니다. 두 형제 모두 큰 사명을 가지고 이 길을 걷는다고. 해서 좋았습니다. 당신과 내가 동등한 관심을 받는다니!


 그런데 그게 전부이더이다. 더 이상의 찬사는커녕 우리 두 형제를 향한 시선은 점점 식어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학업에 점점 묻혀 갈 뿐이었습니다.


 1학년의 2학기가 시작될 때 나는 동기들에게 종종 '우리가 왜 간호학과에 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마 그들은 푸념정도로 생각했겠지만 내 숨은 뜻은 이 학과에 내가 남아있을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답을 찾는다면 맹목적이기만 했던 나의 존재가 서글피 사라질까 두려워 알면서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3학년이 됐을 때 당당히 직면했습니다. 처음에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 많이 괴로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이것들은 단순한 나의 체면일 뿐 진정 문제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더 해야 하나. 나는 과연 무엇이 되나 이것이 진정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기 시작해서 나아가 내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방황이 시작됐습니다. 


 한동안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나와 이곳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야기하고 끊어내고자 말입니다. 3개월을 그리 지내고 나니 남는 것은 허무함 뿐이었습니다.


 형님과 같은 것을 찾을수록 드는 생각이 있더이다. 나의 생명을 누군가에게 나눠 주는 것. 그래 내가 할 일은 그것이었고 시작은 열등감이었으나 지금부터는 오로지 나의 시선으로 흘러간다는 것. 교과서에서부터 죽어가는 환자들을 향해 살리고 싶은 욕구를 느낀 순간부터 나는 신의 큰 뜻을 거스르는 반역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철저히 느꼈습니다.


 이제 형님의 고뇌를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내가 지성인으로서 우뚝 솟지 못할지언정 죽어가는 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맘 편히 자지 않기도 결심했을 때 우린 같으면서도 다른 의료인이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꿈꾸게 됐습니다. 그래, 나는 그리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운 날 고생 많으십시오. 해가 구름보다 높이 뜬 날 다시 보길 바랍니다.


                                                                                                                  -2016.07.09 아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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