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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Oct 22. 2023

CPR의 기록

CPR 한 지 몇 분 됐어요


 정신없는 응급실이 한순간 멈추고 모두가 수화기를 받아 든 응급의를 쳐다보았다. 정신없이 몰려드는 환자들을 처리하며 지쳤던 그의 눈이 알 수 없는 묘한 눈동자로 변했다.


 80대 남자 TA. 덤프트럭과 추돌해 전복된 차는 힘없는 노인을 인정사정없이 부러뜨리고 찢어놓았을 것이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의미 없는 CPR를 직감했다.


 도착한 환자는 생각 이상으로 처참했다. 한눈에 봐도 온몸에 뼈란 뼈들은 서로 엇갈려 있었고 얼굴 한쪽은 반쯤 갈려 나가 광대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축축한 피부는 허옇다 못해 퍼렇게 질려있었고 복부 출혈도 있는지 배는 보라색으로 부풀어 있었다. 당장 대학병원으로 보내야 했지만 그곳으로 간다고 해서 살 방도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이런 촌구석 병원으로 오고 만 것이었다.


 모두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나는 한동안 아무렇게나 그려지고 있는 심장 리듬을 보고 있다가 이내 의미 없는 기계 정보는 무시하고 오로지 오감으로 죽음이 걸어오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피냄새가 요란하게 났다. 차라리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깨어 있었더라도 코가 뭉개져서 여름 막바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피냄새를 맡을 수 없을 것이 당연해 보였다.


 모순적이게도 우리 모두는 살릴 수 없으리란 믿음 하나로 소생술을 이어갔다. 살과 뼈가 다 터져나간 노인을 살려내는 일은 우리가 가진 권능에 해당되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ROSC가 됐다. 그러나 그것은 전반전이 끝난 선수들의 휴식시간과 같은 것이었다.

 그 짧은 틈으로 응급의는 소생 불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보호자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얼굴로 조금만 더 해달라 간청했다. 두 시간 전만 하더라도 호상을 꿈꾸는 당신의 이야기가 아직 기억 속에서 아른거렸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의사와 보호자의 의견차가 점점 높은 언성으로 변하고 있을 때, 중재하려는 듯 후반전이 담담함 속에서 시작됐다. 혈액팩을 짜내는 선생님과 과열돼서 연기가 날 것 같은 루카스, 트레이와 카트에는 앰플과 주사기들이 점점 쌓여갔다. 그러나 좀처럼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심장리듬이 돌아오면 1분 채 안 돼서 다시 정지하는 야속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마치 외출하기 위해 나왔다가 집에 중요한 물건을 깜빡해 두고 나온 것처럼 영영 죽겠지 싶다가도 요행처럼 돌아왔다. 살든지 죽든지 아무튼 어떤 한쪽으로 안정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의사는 더 이상 소생 중단 필요성에 대한 설득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심하리만치 덤덤한 얼굴로 밀린 환자들을 틈틈이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심정지가 다시 발생될 때마다 의사는 모니터와 환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목을 꿰뚫은 관 안으로 에피네프린 투여를 지시했고 우리는 치우지 않고 환자 위에 그대로 둔 루카스를 다시 작동시켰다. 이젠 정말 그뿐이었다.


 말 그대로 몸 어딘가에 구멍이 났는지 혈액팩에 피는 온몸을 한 번 훑고 난 뒤 다시 나온 것처럼 질질 쏟아졌다. 그 탓에 나는 바닥에 뿌려진 피와 물에 미끄러져 온갖 것이 몸 여기저기 묻었다. 그러나 딱히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심하게 툭툭 닦아내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이후 진행된 소생술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실습시절 경험한 카데바가 떠올랐다. 그 날 봤던 카데바는 말끔히 해부되어 고귀한 자태로 누워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 환자를 잘 수습해 준다면 비슷하게나마 품위를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누른 만큼 떠오르지 못하는 가슴을 보며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오에 시작한 CPR은 저녁 6시가 돼서야 중단됐다. 하나라도 실수할까 집중하던 눈빛들이 사망선고가 선언되자마자 평온한 손길로 바뀌었다. 그리고 긴 인상을 남긴 그 자리는 불과 30분도 채 안 돼서 아무 일 없었듯 깔끔하게 치워졌다. 우리는 오늘의 일이 영웅담으로 남아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마도 일상이 죽음과 밀접한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살아있는 평범한 삶이 더 어색한 까닭에 너무 무겁지않도록 이야기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퇴근할 때즈음엔 모두가 잊은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삶이 잊혀지는 시간도 30분이  걸리지 않는 부당함을 향해 버럭하기엔 지금 당장에 몰려드는 피곤과 배고픔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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