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가느다란 팔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깊고 긴 균열이 있었다. 부엌칼로 그었다. 어디까지나 보호자의 증언이었다. 그러나 그었다기에는 무식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살점이 덜렁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119 구급대원이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커다란 중식도로 여러 차례 썰었다고 했다. 이제 고작 17살 여학생이 혼자서 이랬다고? 아니, 나이를 떠나서 세상 누구한테 하라고 시킨 들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했다. 대체 나이를 스무 해도 넘기지 않은 아이가 삶에 어떤 것이 그렇게나 힘들어서 자기 손목을 토막 내다시피 했을까.
피를 너무 쏟은 탓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고를 회피하려는 것인지 몰라도 한 동안 정신을 잃고 있던 학생은 혈액팩 하나가 다 들어갈 때 즈음 돼서야 몽롱한 신음을 내며 버둥거렸다. 거무튀튀한 바닥 위로 넘친 피가 반쯤 굳은 탓에 스테이션에서 끊임없이 뽑혀 나오는 처치 바코드를 확인하러 갈 때마다 꼬까신처럼 찌국찌국하는 소리가 들렸다.
몽롱했던 신음이 또렷한 비명으로 변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짐승처럼 고통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왜 자기를 살렸냐는 말이 스며 나왔지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대꾸하지 않았다. 단지 사고에 대해서만 질문할 뿐이었다.
2차 병원 응급실에서는 할 수 있는 처치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지금 당장 권역외상센터로 보내야 했지만 우리 지역 헬기는 이미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고 출혈과 통증이 너무 심해서 대학병원까지 가는 한 시간 안에 학생이 원하는 죽음이 정말로 찾아올 수 있었다.
급한 대로 마무리되자 학생을 보며 보건소에서 잠깐 근무했을 때 일이 떠올랐다. 잠깐이지만 자살예방센터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어느 자살 고위험군 대상자의 상담을 맡았다. 그 당시 지독한 더위로 기승을 부리는 때였는데 내담자는 팔 토시를 내내 하고 있다 상담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벗었다. 내담자의 양팔에는 조폭처럼 크고 깊은 칼자국이 있었고 또 자잘한 흉터 역시 많았다.
내담자는 매번 자살시도 할 때마다 정말 죽으려 했는데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생각보다 뛰어난 덕분에 번번이 실패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20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 했지만 떨어지고 나서도 살아나면 그땐 정말 어쩌지 싶어서 그만뒀다고 한다.
다시 학생. 의료인으로 오늘 응급실에 있는 바람에 죽으려고 한 선택을 얼떨결에 막아버렸다. 삶이 고귀할지언정 최악의 선택으로 죽음을 자처한 이를 살려냈는데 내게 무슨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어질어질한 감정들이 화처럼 꽉 차 올랐다. 나의 선서와 신념을 다해 살렸는데 정작 오늘 무엇을 책임진다고 그 자리에 있었을까. 살아나서 삐걱거리는 자신의 손을 보며 이름도 모르는 우리를 향해 원망을 쏟을 텐데. 차라리 어쩌지 못할 만큼 확실히 하지 그랬어. 그럼 적어도 살리지 못했다는 좌절과 죄책감은 우리만이 짊어졌을 텐데. 아니면 조금만 더 늦게 발견 됐다면. 나의 생각은 조금만큼이라도 바뀌는 게 있었을까.
사는 게 어정쩡하면 세상에서 이도저도 아닌 취급을 받는다고 배우며 자랐다. 그런데 지금 보니 죽는 것도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맨 정신으로 자기 손목을 토막에 가까우리만치 거칠게 뭉갰는데 그래도 죽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노력해야 잘 사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혈되지 잘 되지 않아 젖어가는 붕대 뒤에 거즈와 붕대를 덧댔다. 우리 몸에 박힌 직경 몇 센티도 안 되는 동맥이 세상과 마주한다는 의미는 꼭 그런 의미일 것이다. 올곧고 확실한 것일수록 깊이 감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은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긴장감이 가득했던 응급실은 자동문이 닫히며 순식간에 평화를 되찾았다. 여기저기 뭍은 피를 닦아내며 보건소에서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가 생각났다.
죽겠다는 사람들 보는 것보다 죽어가는 사람 보는 게 더 낫겠지 싶은 마음. 감상에 젖어들 때즈음 팔에 튄 피를 '에이... 씨'하며 티슈로 닦아내고는 곧장 폐기물통에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