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조금 넘어 출근을 합니다. TV만 덩그러니 켜진 어두운 로비를 가로 지납니다. 전 근무자들은 모두 앉아서 누구는 핸드폰을 하고 누구는 컴퓨터로 미처 정리되지 않는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계를 들으며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습니다. 많은 말들이 내게로 쏟아졌지만 결론적으로 다 마무리 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이유는 불 하나 켜진 복도 밖으로 어느 누구 하나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고한 근무자들을 보내고 다음 날의 업무를 준비합니다. 자가약을 챙기고 식이를 챙기고 항생제며 갖가지 약물을 챙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인계내용과 처방을 확인합니다. 어떤 날은 밤을 꼬박 다 세도 끝나지 않는 일들이 오늘은 고작 새벽 1시가 되기도 전에 끝납니다.
전반적인 일을 마치고 라운딩을 합니다. 마흔 명 넘는 사람들이 잠에 취해 단잠을 이루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악몽과도 같은 말기 암 환자와 큰 수술 직후 올라온 환자들의 고통을 다스리려 씨름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안타깝지만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고 다행이게도 누군가는 병원을 떠나거나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렇게에 지금 있는 사람들은 마치 병원의 풍경 속 나무처럼 혹은 돌처럼 그리고 시냇물처럼 살랑이듯 그려지고 있을 뿐입니다.
8호실 문을 닫으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들은 나의 무엇을 믿고 이 밤을 평안히 보내기로 한 걸까. 풍경과도 같은 이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꺾여 있는 풀이고 깨진 돌이며 야윈 나뭇가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이들이 오늘 밤 깨어있기로 한 파수꾼에게 모든 아픔을 위임한 마음이 무엇으로부터 난 것 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병원이 항상 춥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가 반짝이는 날은 결코 없습니다. 병원은 마치 구름이 많이 낀 날 하늘이 유난히 밝게 보이거나 피부로 닿는 공기가 따듯한 날만 있을 뿐입니다.
라운딩을 끝마치면 간단한 기록을 남깁니다
Nr's round.
특이사항 없이 수면 중임
기록 속에만 멀쩡했던 사람들이 오늘은 정말로 내 머릿속에서 무사히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병동 야외 발코니로 나갑니다. 조용한 풀벌레 소리, 서늘하지만 깨끗한 밤공기가 폐 깊숙이 박히다 몸속에 피곤과 뒤섞여 나른함으로 변합니다.
떠난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몇 날 밤을, 어떤 이유가 됐든 밤 잠 이루지 못한 사람은 우리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땐 나도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나중에는 기계적인 모습으로 환자를 살피고 처리했다의 표현이 들어맞을 태도로 굴었습니다. 한 번만 더 인간적으로 대해줄 걸 싶은 후회가 문득 피어납니다. 이들의 날씨가 짓궂은 이유에 아마 나도 포함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하루가 시끄러웠던 것처럼 병원 밖 세상도 그리 썩 조용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어느 곳에서는 교통사고가 크게 났고 어떤 곳에서는 살인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 우리의 풍경은 조용할 것입니다. 고작해야 4시간이 전부이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겨울잠에서 깬 모든 생명체들이 우리가 미쳐 정해주지 못한 각자의 움직임으로 또다시 산만함에 빠뜨리겠지만,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포근한 눈에 덮여 별들처럼 그저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그런 날이니 오늘은 굳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