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죽음은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날 것의 기분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때론 먹먹함이라고도 하고 때로는 부적응함이라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나는 상실감을 경험한다.
지방 병원의 현실은 간호사가 인턴이 되고 레지던트가 되어 나의 환자 나의 사람을 돌본다. 이런 돌바닥 같은 병원에도 주치의는 있기 마련이다만, 그들은 나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탓인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지식 끝에 숨이 도달한 사람들을 아뢰지 않고서야 구태여 자신이 맡은 환자의 안위를 먼저 묻는 경우는 드물다.
자살예방센터로부터 돌아온 병동은 해맑기 그지없었다. 지난날, 내 손으로부터 저 멀리 보낸 환자들이 과연 같은 침상에 누워 있었는지 내 기억에서조차 갸우뚱할 정도로 이곳은 평화로웠다. 경로당에 간호사 한 명쯤 있다면 아마 지금과 똑같은 풍경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럴수록 나는 이곳을 경계했다.
이곳 역시 병원이었고 떠난 이는 분명 존재했다. 죽음의 먹구름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린 의사보다 사전 연명치료 중단 동의서(DNR 동의서)를 먼저 찾았고, 그들의 울부짖음이 짙어질 때 진통제 몇 개로 달랬다. 그렇게 해서도 되지 않는다면 그때가 돼서야 카톡으로 이들의 주치의를 수소문했다. 그러면 몇 시간 뒤 귀찮음이 다분히 느껴지는 카톡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진작 했어야 할 내 생각 속 처방과 극히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다 똑똑해지고 예리해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간호학 서적을 다시 들고 다니며 밤 근무 간 가능한 많은 양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내 돈을 들여서 참고서 몇 권을 사다 공부했고, 필요하면 기초 의학서적을 뒤적여 보며 내게 하등 필요 없을 것 같은 의사 술기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그래, 지식에 목매달았다. 야심한 시각 환자 상태가 위급해도 겨우 전화받을까 말까 한 환경에서, 겨우 응급실 당직의 하나 있는 병원에서, 찰나에 순간을 넘기고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대기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항상 느낄 때 결코 나태해지려야 나태해질 수 없었다. 기숙사에서 병동까지 1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걸으며 구역감이 스미는 매일은 나를 절박하게 만들었다. 나는 환자를 잃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는 나의 무능함과 무지함으로 인해 환자를 잃는 결과로 나 스스로가 좌절감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학부시절 그저 성적에만 연연한 날들이 참으로 후회스러웠다. 아니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고교시절 전부를 갈아 넣어 의학에 진출했어야 했다. 간호사로서 메꾸려야 메꿔지지 않는 지식의 농도 앞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럴수록 비 온 뒤 굳어버린 단단한 지식의 땅을 뙤약볕 같은 상황 속에서 파헤쳐보려고 안간힘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