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 Aug 14. 2023

노련한 간호사로 성장할수록 마음은 강퍅해진다.

 마음은 쉬이 주는 게 아니다. 간호사로 활동할 때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교과서에서는 환자와의 라포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 라포가 가져올 정신적인 대미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성격이 두리뭉실한 편으로 환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처음 만난 환자들도 특유의 능글맞음이 특히 할머니들과 케미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업무 상 편의를 위한 행동일 뿐이지 진심으로 좋아해서 하는 행동은 아니다.


 마음이 삐뚤어지는 데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때는 신규시절, 이 사람 저 사람에 치여 심적으로 허덕이던 때였다.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능글맞은 성격이었지만 물복숭아 같은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쉽게 지치곤 했다. 


 그럴 때면 끝 방에 있었던 할머니 한 분을 찾아가곤 했다. 그분은 심부전으로 입퇴원을 반복하시던 분이었는데, 병원에서 본다는 의미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잊힐 때즈음 입원한 할머니를 다시 볼 때면 항상 반가웠다. 나는 지칠 때면 할머니를 찾아가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고는 5분 정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 돌아가곤 했다. 


 심부전 환자라서 숨이 항상 찼지만 그렇다고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으나 할머니는 유독 말씀이 없으셨다. 소극적인 성격이신 건지 아니면 워낙 점잖은 스타일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마 내가 줄곧 찾아갔던 이유도 내게 말 걸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심부전 환자답게 혈관상태가 좋지 않아 주사부위를 자주 바꿔야 했고 그럴 때면 내가 먼저 뛰쳐나갔다. 당연하지만 서로 말없는 상황 자체가 좋았고, 여기저기 혈관을 찾으며 팔을 어루만지는 것도 좋았다. 한 번에 성공한 날에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수고했단 의미로 말없이 끄덕여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사건이 있던 날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지독하게 바쁜 6월. 나는 다른 환자의 혈장 수혈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수혈은 일반 수액처럼 달아놓으면 그만이다만, 혈장 수혈은 보통 8개 정도 되는 혈장팩을 5분 간격으로 교체해야 되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때문에 나는 바쁜 상황 속에서 합법적으로 쉴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같은 방 사람들과 TV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6개 즈음 끝냈을까. 복도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완 아무런 상관없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병실 밖을 내다본 순간 끝 방 할머니 침대를 밀고 달리는 간호사들과 ambu bag을 열심히 짜며 CPR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 모습이 내가 본 마지막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결국 사망했다. 다시 입원했을 때 왠지 마지막일 거라고 예상했었고 그래서 납득하는 데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지만 슬프다거나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사망했는데 지독히 멀쩡해서 나는 감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인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평소처럼 퇴근했고 평소처럼 룸메이트 형과 함께 술을 마셨다. 한창 술기운이 올라올 때 즈음 나는 끝 방 할머니 일이 떠올라 덤덤하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무미건조하게 나오는 눈물에 형도 나도 당황했다. 불어나는 물처럼 내 눈물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통곡으로 변했다. 나는 사람 가득한 식당 안에서 '차라리 내가 스테이션에 있었더라면, 내가 CPR을 했더라면' 연신 반복하며 울었다.


 그래, 나는 너무 슬펐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감정을 나누던 사람의 죽음이 처음으로 힘겹게 다가왔다. 살려내지 못했다는 무능함을 철저히 느꼈다. 그날 나는 분명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있었지만 이미 죽은 사람 앞에서 나의 모든 행동이 부정당하는 죄책감을 느꼈다. 차라리 이 사람이 죽고 할머니가 살았더라면 덜 슬프지 않을까 하는 돼먹지 못한 심보도 같이 차올랐다.

 나눠준 감정이 함께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큰 충격이었다. 의례 겪었던 상실감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한 비통. 서로가 쌓아 올린 유대감을 오로지 나 혼자 기억하게 돼버린 비통이었다.


 그날이 너무나 큰 트라우마였는지 나는 좀처럼 마음을 쉽게 내어주는 일이 없었다. 손이 많이 가는 환자들은 종종 마음도 함께 따라갔지만 그럴 때마다 칼같이 끊어내고 내 행위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덕분인지 환자가 돌아가실 때마다 상실감은 더 큰 밀도로 내게 찾아왔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가 무산된 아쉬움과 여운정도의 감정일 뿐 슬픔은 좀처럼 내 맘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렇게 미련없이 덤덤해져 가는 간호사로 자라고 있었다.

이전 04화 지금부터 보호자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