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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Jul 15. 2023

사망시각 00시 34분

간호사는 대개 슬프지 않습니다.

 오후 8시, 느지막이 회진 온 과장님을 발견하고 뒤따라 나선다. 물어보기 전에 알아서 환자 상태를 공식 외우듯 읊는다. 듣는 듯 마는 듯 한 그의 무표정인 얼굴 너머로 묘한 입꼬리가 보이는 듯했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있는 병실로 들어간다.

 입장과 동시에 인퓨전 펌프가 울린다. 초연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기계를 향한다. 경고 알람이 표시하는 에러를 확인하고 재빠르게 해결한다. 곧이어 트레이를 들고 들어오는 선생님을 향해 들어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문이 닫힌다. 그리고 다시 침묵.


 30분 전에 모르핀 용량을 5배가량 증량했다. 덕분에 짐승처럼 울부짖던 비명소리가 그치고 평안을 되찾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죽음의 과정에서 느끼는 통증의 의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10ml도 안 되는 약물 때문에 필연적으로 누릴 수밖에 없는 공포와 통증 그리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인간성을 박탈당한 모습은 꼭 이런 모습일 것이다.


 과장님은 세포 하나하나까지 부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환자와 지속적으로 투여되는 이뇨제를 10초 정도 아무 말 없이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 모니터 상에 혈압을 확인하고 내게 묻는다.

- 도파민이 몇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했죠?

- 데이 때 소변량이 zero여서 라식스 10cc 증량하고 도파민 5cc 증량했습니다. 현재 BP 70에 40입니다.

 심드렁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는다. 곧이어 아주 간결하고 자극적인 단어만 사용하면서 보호자에게 설명한다.

- 여기서 더 이상 약물을 쓰는 건 의미가 없고, 관을 꽂아서 복수를 빼도 더 좋아진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오늘내일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환자 분은 계속 힘드실 거고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보호자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한다.

- 선생님 알아서 해주세요.

대답과 동시에 우리는 병실에서 나온다. 그리고 보호자에게 그랬듯 나에게도 짧고 간결하게 지시한다.

- 라식스 중단, 도파 하프.

 나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병실로 들어간다. 이뇨제가 연결된 기계를 치우고 혈압을 턱걸이하듯 간신히 올려주던 도파민 용량을 반으로 줄인다. 그리고 내 행동에 대한 설명을 한다. 보호자는 말없이 끄덕인다. 곧장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무표정인 얼굴로 기록한다.


주치의 회진함. 

환자 컨디션 확인함. 

약물에 의한 환자 호전 가능성 없음 설명함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설명함

중단 시 사망 가능성 설명함

보호자 동의함

라식스 dc, 도파 절반으로 감량함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적었다. 세 명이서 나눈 몇 마디가 만든 기록이었다. 저것들 중에 한 음절이라도 환자의 의중 따윈 없었다. 오히려 자기의 죽음이 결정되는 순간에도 환자는 약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이 진실은 나에게 아무 자극으로도 다가오지 않았다. 


 앞으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내일 중으로 누군가는 비통해할 것이고 나는 상황에 맞춰 여기저기 연락할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드라마에서 나오는 기적은 없었다. 내 예상대로 자정이 조금 넘어 보호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나와 남편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나는 '드디어'라는 생각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환자에게 갔다. 사타구니에 동맥을 찾아 손가락을 눌렀다. 고무찰흙을 누르는 듯한 기분 나쁜 촉감 끝에 생동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숨은 쉬지 않았다. 산소포화도, 혈압, 체온 무엇 하나 측정되지 않았다. 동공은 풀려 있었고 빛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사망했다.


 모니터에 심장리듬이 완전히 수평일 때 사망선고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고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왔다. 내내 무표정으로 가득했던 병실에서 괴랄한 울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록을 할 뿐이었다.


 모니터를 확인하러 들어갔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보호자들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온갖 약물과 고통에 젖어있다 죽은 환자를 바라보며 저마다 비통한 얼굴로 누구는 먼저 울던 이를 따라 울고, 누구는 좌절한 모습으로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슬픔 따위 없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모니터의 수평선처럼 내 감정도 일직선을 유지했다.


 사망선고가 끝나고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보호자가 있다며 미적거리는 보호자들을 향해 나는 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시체 치워.'

 나는 보호자 대표를 찾아 시신부패나 추후 염습때문이라도 병실에 오래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재촉했다. 때마침 운구 담당자가 도착했다. 일단 영안실로 옮긴 뒤 보시라고 설명했고 실려나가는 고인 뒤로 끌려나가듯이 줄지어 퇴장했다. 나가는 사람들 마다 마치 '매정한 놈' 한 마디 할 것만 같은 눈길로 쳐다봤다. 시장 바닥 같던 병동이 조용해지고 새벽은 평화를 되찾았다.


 누군가 경험하는 일생일대 감정의 폭풍 속에서 나 혼자 잠잠하다. 죽음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간호사로서 응당 해야 할 사명을 누구보다 방관하고 위선 하며 혐오하는지 이들은 모른다. 지난 몇 개월 간 공들여 쌓아 둔 모래성이 밀물이 된 탓에 물속으로 잠겨버린 기분이 드는데, 나란들 그 상실감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이 일을 계속하려면 죽음 앞에서 내 감정을 철저히 외면하고 일차원적인 자극에 둔감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둔감해져야 한다고 해서 끌려나가는 유가족들을 멈춰 세워놓고는, '하나의 죽음 앞에 호들갑 떨지 마시라' 하고 솔직하게 말할 자신도 없었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결국 이들은 의료인으로서 내가 윤리적 의무를 다 할 것이라는 경험에 빗대여 나를 신뢰했을 것이고 또한 나처럼 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슬픔에서 철저히 빠져나와 나의 감정을 죽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행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토록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모든 시간을 지켜내야만 했다. 


'내가 당신네들의 죽음이란 사건 앞에 결코 태연하지 않으며 당장이라도 휘몰아칠 것 같은 내 감정을 애써 참작시키고 있기 때문에 방어행동으로 비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무언의 변명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명, 또다시 한 명. 그렇게 한 명씩 사망할 때마다 내 인간성에 모르핀 같은 무엇인가가 증량된다. 그렇게 나의 인간성 한 부분이 또 하나 죽는다.


 나는 이번에도 좋은 간호사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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